• 정동영 입시폐지 공약 반쪽짜리
        2007년 11월 08일 01: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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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영 후보가 최근 교육공약을 발표했다. 입시폐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입시경쟁이 만악의 근원이며 이는 중등교육 부문이 아니라 오직 대학입시 부문을 건드려야 풀린다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후보는 이런 발언을 수 차례 해왔으며 교육대통령을 표방해오기도 했다. 정 후보 측이 그간 보인 태도는 모처럼 기대를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교육공약은 매우 실망스럽다. 구호만 있고 알맹이가 빠진 반쪽짜리이기 때문이다.

    공약을 발표한 보도자료는 ‘저, 정동영은 대학입시를 폐지하고 선진국형 선발제도로 전환하겠습니다.’라고 시작한다. 입시폐지는 한국현대사의 숙원이며 염원이다. 그동안의 교육정책은 입시관리를 어떻게 할까에 맞춰져 있었다. 입시를 아예 폐지하겠다는 정 후보의 결단은 혁명적인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사진=뉴시스.
     

    보도자료에서 이어지는 소제목들은 이렇다.

    * 대학입시를 폐지하고 내신위주 대학생 선발
    * 수능을 고교졸업자격시험으로 전환
    * 투명한 내신평가제 강화로 내실화된 학교생활부를 반영

    그리고 본고사는 불허한다며 아래의 문장을 굵고 크게 강조해놓았다.

    * 본고사, 논술 등 대학별 ‘입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금지

    입시를 폐지하고 선발한다는 말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정동영 후보가 말하는 입시폐지는 입시폐지가 아니라 수능폐지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입시가 곧 수능은 아니다. 입시는 대학서열체제에서 일류대에 들어가기 위해 대학별 지원과 선발에 따른 경쟁이 이루어지는 제도다. 이것을 수능을 통해서 하든 내신을 통해서 하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른바 개혁세력은 내신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과대망상’을 품고 있다. 참여정부의 2008년 입시안도 내신강화안이었다. 내신강화를 통해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사교육도 사라지고, 균형발전도 된다는 꿈같은 비전이 제시됐지만, 각 지역 중상층이 조금씩 더 서울대 들어가는 것 말고는 상황은 더 악화되기만 할 것이다.

    수능이 자격고사로 전환되면 수능으로 학생들을 변별할 수가 없게 된다. 2008년 입시안의 목적도 수능의 변별력을 떨어뜨리고 대신에 내신 변별력을 강화한다는 것이었다. 정 후보의 안에서도 투명한 내신평가와 내실화된 학교생활부를 반영한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참여정부 교육정책의 버전 2.0인가?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이 교육파탄을 불렀는데 이제부턴 파탄 2.0이 펼쳐지는 것인가?

    본고사는 불허한다며 강조하고 있지만 이명박 후보의 말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명박 후보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본고사를 불허하진 않지만, 본고사가 아닌 대학별 선발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 정동영 후보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셈이다. ‘본고사를 불허하고, 본고사가 아닌 대학별 선발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

    엎어치나 메치나, 오십보 백보다. 문제의 본질은 본고사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별 선발에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에서도 본고사는 이미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대학별 선발 자율성이 주어졌다. 그러자 대학별 고사가 저절로 생겨버렸다.

    물론 정 후보는 이에 대해 논술 등 대학별 시험은 철저히 금지하겠다는 말로 받을 텐데, 그래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대학이 직접 시험보지 않고 전형요소만 바꾸는 것으로도 중등교육을 파행시킬 수 있다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정 후보가 입시폐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용기에는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알맹이는 참여정부나 이명박 후보의 정책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일제고사를 통한 점수변별이 아닌 다양한 요소로 각 대학이 인재를 선발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기왕에도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기조였고 이명박 후보도 이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입시폐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정동영 후보이니만큼 지금 배포된 보도자료 이상의 것을 준비할 것이라 믿는다. 지금의 선언에 걸 맞는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한다. 이번에 발표된 것엔 아무 내용도 없다.

    왜냐하면 대학서열체제와 평준화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능을 없애고, 내신을 강화했다가 문제되면 그것도 없애고, 특기적성을 기준으로 했다가, 인성평가 종합면접을 기준으로 했다가, 수행평가를 기준으로 했다가, 그 외 등등등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대학평준화에 대한 답이 없으면 그 정책은 공허한 ‘깡통’이다.

    정 후보의 이번 발표는 선언만 있고 내용은 빠진 반쪽짜리다. 정 후보에게 지금 필요한 건? 하루빨리 내용을 채워주는 ‘스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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