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없는 이한테 요구하면 뭐 하겠어요?
        2007년 11월 07일 12: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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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6일, 저녁 8시 30분. 익산 농민회 사무실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였다. 가을걷이로 정신없이 바쁜 낮을 보냈다. 봄과 여름 땀 흘린 뒤 거두어들이는 가을이 넉넉하고 흡족하면 좋으련만 당장 줄어든 수확량이나 낮은 수매량과 뒤이어 치를 계산이나 빚잔치를 생각하면 한숨이 먼저 나오는 지금이다. 그래서일까, 더러는 얼굴이 무거워 보인다. 사회자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충분하게 나누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고 말문을 연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통령 후보는 “거리에서 들판에서 공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을 가슴에 새기려고 나섰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금 우리가 밀릴 대로 밀려 있다. 97년 이후 10년 동안 밀려 벼랑 끝에 서 있다. 한미FTA와 비정규직 문제가 우리를 밀고 있다. 대반격을 선언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 한 번 더, 그러나 좀 더 확실히 모이자고 한다. 11월 11일 서울에서.

    수없이 버스 타고 서울로 모였던 사람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이 버스를 타고 서울로 모였던 사람들이다. 절박한 외침은 사람들 가슴에 가 닿을 수 없게 늘 가로막혔다. 시위를 끝내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농민들이 들었을 말은 그이들의 외침이 아니라, 진실이 아니라 늘 교통체증이었다.

    아스팔트 위에서 사람들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바람 부는 여의도에서 외롭고 외로웠다”고 전남 화순에 사는 한 농민이 말했다. 같은 날 같은 자리에 서 같은 구호를 외쳐도 그 누군가 느낀 지독한 외로움까지는 아직 우리는 모른다.

    언젠가 이런 한숨 소리를 들었다. 아나운서가 인터뷰하려고 전화 연결한 수화기 저 쪽에서 전남 장흥에 사는 40대 농민은 갈수록 어려운 농촌 현실을, 밤도망 떠나야 하는 이웃이 겪은 이야기를 전하다 천 년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이 가슴에 꽂혔다. 한숨이 모든 걸 말해준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한숨에 담긴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이런 모습도 보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더운 8월 어느 날 대학로 아스팔트 위를 걷는 일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린 할머니가 신발을 손에 들고 양말만 신은 채 힘들게 걷는 모습을. 흙과 사는 사람한테 아스팔트는 고문대가 아닐까.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무겁다

    버스를 한 번 타고 두 번 타고 세 번 타는 그 사이 무언가 달라졌을까. 늘 밑지는 장사를 하는 건 아니었을까. 버스만이 아니라 비행기까지 타고 멀리 다른 나라로 투쟁하러 가야했던 사람들. 그러고 돌아와 다시 씨를 뿌린 사람들.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으로 농사를 지었다 엎었다가도 다시 씨를 뿌렸을 사람들. 그이들에게 한 번 더 버스를 타자고 한다. 얻어맞고, 피터지고, 목숨까지 잃었던 그 자리에 다시 서자고 한다.

    턱에 손을 괴고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야기 듣는 사람. 무겁다. 무거운 건 감기는 눈꺼풀이 아니다. 이 자리에 온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괜히 내가 무거워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낮에 콤바인을 몰던 광식 씨가 담배를 피운다. 먼저 아는 척을 한 건 광식 씨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광식 씨를 처음엔 몰라봤다. 민주노동당 당원인 광식 씨한테 “대선에 나서는 당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솔직히 말해서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다들 그렇게 말하지 않나요? 단지 몇 퍼센트의 국민의 지지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찮아요? 정말 대통령이 된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잖아요. 누구든지 다, 다 당원이지만. 저도 그래요. 됐으면 좋겠지만 안 된다는 거 뻔히 다 알잖아요, 예? 근데 뭘 요구해요. 뭐 힘 있는 사람한테 요구해야지 힘없는 사람한테 요구하면 뭐하겠어요. 저는 크게 요구 없습니다.”

    힘 없는 사람한테 뭘 요구합니까

    너무 솔직한 대답에 나는 당황했다. 무슨 대답을 듣고 싶었을까, 나는. 광식 씨 말에 무언가 대꾸를 해야 할 텐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없었다. 고민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어서, 참 힘들게 속내를 비추고 있어서 나 또한 쉽게 무슨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렇고 저렇고’ 훈수를 둘 수도 없었고, ‘그래도’라고 섣불리 희망을 말할 수도 없었다. “아유, 안타깝네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랬다, 할 말을 잃고 나는 안타까웠다. 광식 씨가 말하는 ‘힘 없는 사람’은 ‘당’이고 ‘운동’이다. 진보를 외치는 운동이 들판에 선 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희망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고, 쉬이 말길을 찾지 못했다.

    “농민이 정치하는 건 안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정치가 농민을 포함해서 국민을 소외시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광식 씨는 부인하지는 않았다.

    “많이 속고 있어요.”

    소외와 속는 거. 나는 ‘소외’라고 말했고, 광식 씨는 ‘속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급자족도 못하면서

    “미국으로 쌀을 수출한다고 뉴스에 광고를 때리는데 우리나라 쌀 수출한다고, 대단하다고. 그러나 우리는 밀가루나 다른 거를 얼마나 수입하는지 그런 얘기는 않잖아요. 쌀이나 뭐 한 섬 수출하고 밀가루는 몇 십 년을 뭐 몇 만이나 수입해서 먹으면서 그 쌀 하나 수출하는 게 그게 대단해요? 자급자족도 못하면서. 만만치 않아요. 그게 다 정치적인 거죠. 정치적으로 정부에서 다 지원해서 못 하게 하는 거 아니에요? 솔직하게 말해서 그렇죠. 일반 도시민들은 ‘아, 농민들 대부분 잘 사는구나. 그런데 왜 데모할까’ 하잖아요.”

    ‘자급자족도 못하면서’. 자급자족도 못하면서 이 사회가 쌓으려고 하는 것은 무얼까. 어떤 말보다 적확한 ‘자급자족도 못하면서’. 그런데 이 말이 내 안에서 파문을 일으킨다. 자급자족도 못하는 운동, 자급자족도 못하는 나…….

    “억대 농민도 있다고 선전하기도 하던데.”
    “정부에서 강조하잖아요. 그러면 도시민들 생각할 때는 시골도 살만하고 그런데 왜 데모를 하는지 이해를 못 하잖아요. 예전에는 농민들이 데모를 하면 인정을 했단 말예요. 먹고 살기 힘드니까 데모를 하는구나. 그런데 이제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부분, 실제 속고 속이는 그런 것들을 정치에서 찾고 진실을 알려내고 싸우고 그러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농민들도 배불렀다는 거예요. 저 자체도 그래요. 제가 부채가 1억 넘는데 자가용 끌고 다니고 핸드폰 쓰고 뭐 다 해요. 하면서…… 한다는 게 안 맞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게 개인이 막 욕심나서라기보다는 사회 자체가 그런 것들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긍게.”
    “그렇게 돼가잖아요. 결국 따지면 내가 아끼고 내가 어떻게 하는 이런 문제도 있겠지만 사회 문화 전반이 자꾸 소비하게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자본주의 사회나 문화 탓도 있는 거죠.”
    “한 가구에서 통신비가 한 30만원씩 나간다고 해요. 백만 원 벌면, 150만원 벌면 통신비 가족이 한 20만원 이상 나가잖아요. 교통비만 30만원 나간다 치고. 그런데 자주 쓰게 되고. 긍게 그냥 다 한스럽죠. 한 마디로.”

    바꾸어야 할 것에는 ‘나’도 들어있다

    안쪽,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세상을 바꾸자!”라는 외침이 여러 차례 들린다. 답은 세상을 바꾸는 것밖에 없는 걸까.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근본적인 여러 곳에서 우리가 사람답게 사는 것을 다시 일구어내야 하는데 그렇죠?”
    광식 씨가 마음속에 담아두었을 이야기를 충분하게 듣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하지만 광식 씨가 고민이 많다는 건 알겠다. 당, 선거, 정치, 경제, 사회, 소비, 빚, 생활, 이상과 현실…….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세상’에는 ‘나’도 들어있다. 바꾸어야 할 건 ‘세상’이면서 ‘나’이다. 세상과 내가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사이, 세상과 싸우고 나와 싸우는 사이 광식 씨는 논과 밭에 무수한 이야기를 써 나갈 것이다.

    ‘크게 요구가 없다’고 했지만 일 끝내고 씻은 뒤 집에서 쉬지 않고 한참 떨어진 농민회까지 밤길을 더듬어 온 광식 씨 마음에는 ‘됐으면 좋겠는’ 그래서 ‘80대 20’에서 ‘95대 5’로 양극화 하는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꿈이 있으리라고 나는 덧붙인다. 한 사람 한 사람 ‘꿈’들이 모이면……. 지금 나는 어떤 꿈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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