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벗고는 살아도 목 풀칠 않고는 못사는겨"
        2007년 11월 07일 12: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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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낮 2시 30분이다. 익산시 성당면 성당농협 추곡수매장에서 수매공판을 한다. 사람들이 트럭에 나락을 싣고 왔다. 지게차에 고리를 걸 수 있게 손잡이가 만들어진 커다란 주머니 안에는 도정하지 않은 나락들이 담겼다.

       
      ▲사진=진보정치
     

    벼 수매 공판은 무게재기와 등급매기기로 이루어진다. 한 아저씨께서 권영길 후보를 잡고 말한다. “벌어먹을 거리가 없어. 그전엔 어깨만 닿아도 돈벌인데 지금은 없어.”라고.

    수매할 나락을 트럭에 싣고 온 김명묵(59세) 어르신이 수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락과 함께 트럭 위에 선 김명묵 어르신은 가지고 온 나락만큼이나 거짓 없는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올해 농사 어떠셨어요?”
    “올해…… 그런게요, 잘 졌다고 혀야 작년만 못한 게비유. 작년만 못허고, 그 올해는 비가 자주 와가지고 일조량이 작아가지고 작년만은 못해요, 농사가.”

    “전남지역은 굉장히 많이 안 좋다고 그러던데요?”
    “그 쪽은 여그만은 못 할 거여요. 그래도 여그는 좀 낫어.”
    “아래쪽이 더 많이 안 좋나요?”

    “우리가 뭐 거까진 안 가봐서 모르지만 해마다 보면 여그가 최고 잘 지는 곳이여, 이 근방이. 김제에서 강경 밑으로가 제일루 낫다고 봐야제.”
    “어르신은 몇 년 정도 농사 지어 오신 거예요?”

    “아, 뭐 촌사람이 뭐 어려서부터 농사 졌지요 뭐.”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59.”

    “아, 그러세요. 근데 갈수록 농사짓기 힘들어진다는 얘기 많이 하던데 어떠세요?”
    “힘들어지지유. 인자 뭐 나이 먹은 사람은 나이 때문에 그러지만 인자 후계자들이 와야 되는디 후계자들이 안 오잖아 일단은. 촌에 뭐 돈벌이가 돼야 후계자들이 오는디 돈벌이가 안 되니 후계자들이 올 이유가 없잖여. 우리는 늙어 죽도록까지 이 짓만 하다가 죽을랑게비유. 좀이라도 좋아지는 뭐가 있어야 하는디. 허허허.”

    “농사짓고 나면 뭐 비료값, 뭔 값 다 나가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고들 하던데요?”
    “그러지요. 옛날부터 말이 있잖여. ‘농사짓고 나면 장건건이가 달아난다’고. 옛날부터 그랬는데 시방은 더 그러지.”

    “장건건이가 달아난다는 게 뭐예요?”
    “그게 뭔고 허니, 먹네 허고 어찌고 하면 그것이 안 나온다는 거요. 그것이. 허허.”
    “외국에서 쌀 수입 되면 어떻게, 직접 타격이 있으세요?”
    “타격이 있지요. 당장 쌀 가격이 안 올라가잖아, 당장. 시방 시중에서 아마 4만 6천 원씩까지 간단게비여. 나락 40키로 한 가마에.”

    “나락으로요?”
    “응, 나락으로. 그래가지고 4만 6천 원씩 가져간다고 그러더라구. 그려도 하, 뭐 우리야 뭐 많이 주면 줄수락 좋아하지만 서로 어느 정도 손해 안 보게끔 혀야 하는디 너무 의욕이 없어지게끔 허더라 그런 거지. 의욕이 없어진다니까 진짜. 우리는 인자 그럭저럭 나이 먹고 있응께 있는 농사짓고 산다고 허지만 40대 30대는 어떻게 사냐 이거지 잉.”

       
      ▲사진=진보정치
     

    “희망이 별로 없는 건가요?”
    “그렇지. 에, 우리는 인자 뭐 한 마디로 뭐 워디 갈 디도 없구, 인자 이것이 농사 몇 마지기 있응께 그거나 부쳐먹으면서 사는 거지유.”

    “농가부채 문제가 많이 심각한가요?”
    “아유, 그럼유. 빚 있는 사람 많지유. 빚 없는 사람도 있겄지만은 빚이 많에요. 부채가. 텔레비전에서는 우리보다 더 잘 알지 뭐. 부채가 많으니까.”

    “어르신, 정치에 바라는 거 있으세요?”
    “하하하, 그건 뭐. 근데 뭐라고 해야 하는가.”

    “이제까지 살아오시면서 투표를 많이 하셨을 거 아니에요. 지도자를 여러 번 뽑아보셨을 텐데 그때마다 뽑고 나서 농민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주는…….”
    “긍께, 우리가 생각해서는 그 정도 높은 사람이면은 먹고 살만하고 하니까 국가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그렇게 좀 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거그만 올라가면은 자기 양부터 채우더라고. 어떤 사람이든 거그만 올라가면 자기 배부터 채우기 때문에……”

    옆에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민주노동당은 그렇지 않아” 하신다.
    “모르겠어유, 인자. 하여튼 올라가기만 하면 이상한 디여 거그가. 하하하”
    “왜 그럴까요?”
    “그게 권력이 그렇게 좋은 것인가. 우리가 생각해서는 그 정도 살고 허면은 확 풀고서 잘 해주고자푸드만은, 인자 그 자리 올라가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애요, 우리가 봐서는.”

    “농민 분들이 바라는 게 그렇게 큰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문요. 우리는 뭐 크게 바라는 거 뭐 있겄시유? 농민들은 인자 자식들이나 가르치구, 우리 뭐 밥이나 잘 먹구, 그건디. 농민들 타격받는 사람들도 많다고요, 시방. 빚 많은 사람들은, 빚 없어도 살둥말둥한디 부채 있는 사람들은, 농사지어서 부채 이자 주고 나믄 뭐 있시유?”

    “그런데 빚 얻지 않고는 또 농사짓기 어렵잖아요? 개인이 쓸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농사지으려고 빚내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렇죠. 부채 없이 자기 자본으로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방 젊은 사람들이 자기 돈이 얼마나 있어서……, 3~40대 사람들은 전부 일단 빚 안고서나 일단 들어가서 해 보는디. 긍게 곤란한 점이 많대요.”

    “한미FTA 때문에 농민들이 서울로 많이 시위하러 올라가고 그랬잖아요. 어르신도 올라가셨나요?”
    “그러지유. 간간이 시간 있으면 가지유.”
    “그때마다 아스팔트 농사짓는다고 그러는데 그때 서울 여의도에 서 계실 때 심정이 어떠셨어요?”
    “너무나 참 뭐라고 해야 할까. 막 다치고 막 싸우고 하는 걸 보면 참 인간이 저렇게 혀야 먹고 사는가. 그런 걸 많이 느끼죠. 이렇게 않고는 안 되는가. 자유롭게…….”

       
      ▲사진=진보정치
     

    “그렇게 외쳐도 정부가 농민의 소리를 잘 안 들어주잖아요.”
    “한 마디로 농민이 힘이 없으니까 그러죠. 힘이 없으니까.”
    “제일 중요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면서…….”
    “한 마디로, 막말로 뭐시냐 옷 안 걸치고는 살아도 목구녕에 풀칠 않고는 못 사는 거 아녀. 근데 최고 중요한 것을 너무 무관히 허더라니까.”

    “한 해 동안 씨 뿌리고 가꾸고 농사지을 때, 농민의 마음이랄까요? 어떤 마음으로 농사를 지으시나요?”
    “아, 뭐 우리야 나이 있고 헝께 뭐시냐 지긋지긋하게 큰 욕심 없고 자식이나 빚 읎이 가르치구, 그런 바람이죠 뭐. 인자 쪼끔 이문이 좀 더 나게 해 주믄 농민이 좋은 거뿐이죠 뭐.”

    “이곳에서 태어나셔서 죽 사셨나요?”
    “여기서 태어나서 현재까지 여기서 사는 거지요.”
    “고맙습니다, 어르신.”

    *장건건이 : 1. 간장, 고추장, 된장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2. 장을 재료로 하여 만든 반찬을 통틀어 이르는 말

    10월 26일 르뽀작가 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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