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움은 우리가 하겠만 찾아줘서 고마워"
        2007년 11월 07일 12: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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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에서 차로 30분쯤 달려가니 무안군청이다. 아침 11시가 조금 넘었다. 빨간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 할머니,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군청 한쪽 나무그늘에 앉아있다. 조끼 앞쪽에는 ‘단결투쟁’이, 조끼 뒤쪽에는 ‘태봉 골프장 결사반대’가 적혀 있다.

    권영길 후보가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고 인사를 하며 이야기 나눈다. 주민들은 2년 전부터 스스로 싸웠고 앞으로도 스스로 싸울 테지만 잠시라도 무리지어 찾아온 대통령 후보와 민주노동당이 고맙다.

    우리 스스로 싸우겠지만 잠시나마 찾아준 후보가 고맙다

    주민들이 사는 전남 무안군 청계면 태봉리에는 승달산이 있다. 한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이 승달산은 “무안에서 제일 큰 산”이다. 야생동물보호구역이며 습지가 형성되어 있고, 천연기념물도 있으며 수질1급수 태봉천이 있는 마을을, 농사짓고 살아온 100여 가구 사람들의 터전을 골프장을 짓겠다고 “승달산 줄기를 다 파분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살아온 땅을 절대 골프장으로 빼앗길 수 없다며 싸움에 나섰다. 물이며 산이며 동물이며 곡식이며 골프장 농약에 썩어문드러지게 할 수 없다며 2년 동안 싸운다. 지금은 “양파 심을 때라 바빠서 날마다 나오지는 못하고 돌아가면서 나온다”고 한다.

    벌써 아침 일찍 시위를 하고 돌아가는 줄 알았더니 11시 20분부터 집회를 시작한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군청 들어오는 양쪽 길에 나란히 한 줄로 선다. 트럭에 싣고 온 깃발을 하나씩 꺼내든다. 긴 대나무 막대 끝에 매단 천에 ‘골프장조성 결사반대’라고 적었다.

    골프장 조성 반대 투쟁을 벌이던 중 골프장 건설은 불법이라는 판결을 법원에서 내렸다. 하지만 군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청 들머리에 주민들이 걸어놓은 펼침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무안 군수는 태봉 골프장 1심 판결에 승복하고 2심 항소를 즉각 포기하라!”
    주민 대책위 배응재 씨가 마이크를 들고 “농번기라 바쁘신데 오셨다. 오전만 하고 끝내겠다. 딱 12시에 마치겠다. 다음에는 하루 종일 하자.”며 성명서를 읽는다. 그런데 그 성명서가 흔히 듣는 성명서가 아니다. 구호로 죽 이어진 성명서다.

    배응재 씨가 구호를 외치면 나머지 사람들이 맨 끝자락을 한번 크게 외친다. 대나무 기다란 깃대를 시멘트 바닥에 내리치면서. 구호를 외치다가 배응재 씨가 무안군청을 향해 일갈을 날리면 주민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옳소! 옳소!”를 외친다. 목에서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저 뱃속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구호다.

       
      ▲ 스스로 싸울 때 쟁취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농민들. 오른쪽 끝 인터뷰 중인 사람이 필자.(사진=진보정치)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들의 구호들

    구호도 어떤 건 길이가 짧고 어떤 건 길이가 길다. 자연스럽다. 아주머니, 할머니, 아저씨, 할아버지가 외친 구호는 이렇다.

    – 무안 군수는 골프장 음모를 중단하고 원상 복구하라!
    – 무안 군수는 1심 재판을 승복하고 즉시 원상 복구하라!
    – 태봉 주민 생존권을 위협하는 무안 군수는 재량권 이탈제로 군민에 심판을 각오하라!

    – 무안 군수는 태봉골프장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
    – 무안 군수는 골프장 허가를 취소하고 원상 복구하라!
    – 살기 좋고 경치 좋은 태봉 마을 파괴를 중단하라!

    – 태봉마을 주민을 죽이는 골프장 허가를 취소하라!
    – 지역 발전이라는 허구를 볼모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골프장 사업을 취소하라!
    – 우리의 생명줄인 농업용수를 오염시키고 지하수 고갈은 물론 우리의 생명 재산까지 위협받는 골프장 건설을 취소하라!

    –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산림 훼손은 물론 토사유출 자연재해를 유발시킬 골프장 사업을 취소하라!
    – 마을의 공동체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골프장 건설을 취소하라!
    – 태봉 주민은 타협도 필요 없고 보상도 필요 없다. 골프장 허가를 취소하고 원상복구 하라!

    – 맹독성 농약을 살포하는 골프장 건설을 취소하고 원상복구 하라!
    – 농민을 죽이는 농업 말살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
    – 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무시하는 골프장 건설을 취소하라!

    – 골프장 건설로 주민에게 피해를 주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업주는 각성하라!
    – 아름다운 땅 금수강산에 반환경적이고 반농업적인 무더기 골프장 건설을 참여 정부는 즉각 중단하라!
    – 쌀도 무너지고 산도 무너지고 우리의 보금자리를 빼앗아가는 골프장건설을 취소하고 원상 복구하라!

    – 자자손손 자식 낳고 살아 온 우리의 보금자리를 빼앗아 가는 골프장 건설을 취소하고 원상 복구하라!
    – 대규모 자연 환경과 생태계 파괴를 중단하라!
    – 물 좋고 산 좋고 인심 좋고 경치 좋은 전통마을 파괴를 중단하고 원상복구 하라!

    –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을 죽이는 골프장 건설을 취소하고 원상복구 하라!
    – 무안군은 군도 16호선 계획을 철회하라!
    – 창포호와 청계만을 오염시켜 수자원 고갈시키는 골프장 건설 허가를 취소하라!

    – 법에 논리를 내세워 군민을 우롱하는 무안군 관계공무원은 각성하고 각오하라!
    – 무안군은 더 이상 환경오염 어족자원 고갈하는 골프장 유치를 중단하라!

    이것이 MBC 방송에 나오는가?

    주민들이 구호를 외치는 동안 노랑나비 한 마리가 그 곁을 한참 난다. 골프장이 만들어지면 지독한 농약 냄새에 저 나비를 다시 볼 수 없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아주머니 한 분이 깃대를 들고 나한테 나가와 묻는다.
    “이것이 MBC 방송에 나오는가? 나오면 언제나 나오나 싶어서.” 괜히 아주머니께 미안해진다.

    비디오카메라도 사진기도 없이 수첩 하나 들고 혼자 남은 나는 별다른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니오”라는 내 대답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결국 싸움은 누가 대신 해 주는 것이 아니므로. 1심에서 이긴 것처럼 다시 이길 것이기에. 왜냐면 이들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싸움에 나섰기 때문이다. 배응재 씨가 마이크를 잡고 크게 외친다.

    “우리 주민은 마을만은 지키겠다는 각오로 싸워왔다. 무안군청이 골프장을 취소하고 원상복구 할 것을 요구한다. 농업말살 정책을 중단하라. 유언비어 조작하는 군수는 반성하라. 여러분 돈이 중요합니까, 생명이 중요합니까? 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골프장을 짓습니다. 우리들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골프장을 반대합니다.

    도대체 골프장을 하면 얼마나 돈을 벌기에 그렇게 지으려고 합니까. 우리는 평생 농약을 먹고 살라는 겁니까?” 그러자 어떤 할머니가 “군수 먼저 먹으라고 해.”라고 성난 목소리로 외치신다. 배응재 씨가 말을 이었다. “군청은 아주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태봉주민들을 우습게 여기지 마세요. 약자를 우습게 보면 천벌을 받아요. 태봉주민을 천대하지 말라. 무안군수는 각성을 해야 할 것이다. 군수직에서 물러나고 떠나세요. 주민들이 잘 살아야 무안군도 잘 살지 주민들 다 죽여 놓고 무엇이 발전한다는 것인가 말입니다.”

    약자 우습게 보면 천벌 받아요

    띄엄띄엄 점심 먹으러 나가는 양복 입은 군청 공무원들 몇과 찻길 건너편에 나온 경찰 두 명과 어쩌다 한 명씩 지나가는 사람과 달려가는 차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쪽에 서서 얘기를 듣는 내가 전부인 시위. 주민들 가운데 젊은 측인 배응재 씨가 쉬지 않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 하시네.’

    “마을 사람들을 이간시키면서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골프장을 건설한다. 주민세금을 거둬서 혈세를 낭비한다. 세금 걷어다가 무안군수는 엉터리 행정을 한다. 경제 활성화 얘기하면서 자연환경을 파괴한다. 왜 항소했는지 해명하라. 무안군수 한 사람 잘못 뽑아서 주민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설움 당하는지 모른다.

    바쁜 농번기에 농민들이 와서 이렇게 소리 높여야 하는가. 태봉주민들은 생존권을 위해 싸운다. 그런데 군청은 어떻게든지 거짓말을 쳐서 골프장을 짓는다. 우리 역사를 보면 잘못한 사람들 천벌 받지 않았느냐? 골프장법이 농업용수를 위협하고, 우리 생명줄을 위협한다. 왜 우리가 땅 빼앗겨가면서 농약을 먹고 살아야 하나. 그래서 주민들은 열 받는 거다. 물이 안 나온다. 그 피해를 보는데도 저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는 좋게 살았는데 이제 몇몇 사람들이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 감정은 3대가 갑니다. 그런 걸 누가 치료해 줘요. 무안군수가 치료해 줍니까? 큰일이어요, 큰일. 그렇게 좋게 살았던 마을을 풍비박산을 만들었어요. 보상도 필요 없어요.

    아니 골프장 하겠다는 사람과 뭔 타협을 해요. 돈으로나 해결하려고 하지. 그런 사람하고는 타협 못 해요. 농약이 오염이 안 되는 농약이 어디 있다요?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골프장을 만들려고 해요. 우리는 절대로 골프장을 유치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땅을 다 훼손시켰어요. 허가를 내주는 무안군수 탓이여. 악랄한 짓거리를 해요.”

    골프장 하겠다는 사람과 뭔 타협을 합니까

    들판이거나 논에 있을 사람들이 군청 앞 찻길에서 목 터져라 외친다. 골프장 건설 찬성과 반대로 나뉜 한 마을 사람들. 그 골은 아무래도 쉽게 메워지기 힘들 것이다. 왜 돈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관계가 틀어지고 마을과 자연이 망가져야 하는가?

    생태계가 흔들려야 하는가? 골프장과 돈이 생태계와 사람보다 앞서야 하는가? 왜 말도 안 되는 일이 버젓이 벌어져야 하는가? 왜 나이든 어른들이 들판을 놔두고 여기에 서 있어야 하는가? 왜 생명 평화를 얘기하면서 뒤로는 죽음을 만드는가? 도대체 어떻게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을 보려고 생명이 자라는 산에 아무렇지 않게 골프장을 지을 생각을 할까?

    “골프장을 지으면 모든 생태계가 살 수 없다. 고기가 살 수 없다. 썩어 빠진 행정을 하고 있다. 군청에서 우리한테 ‘데모해라. 데모해 봤자 골프장만 유명해진다’고 말한다. 공무원들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정확하게 약속한 12시에 시위는 끝났다. 트럭에 들었던 깃발을 돌돌 말아 차곡차곡 챙겨 넣고 집으로 논으로 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늙은 노동자의 노래’는 알아듣겠는데 나머지는 못 들어 본 처음 듣는 노래들이다. 일터에서 삶터에서 싸우지 않으면 무조건 밀리고 벼랑 밑으로 떨어지는 시절이다.

    자신을 넘어서 자연까지 책임을 지고 싸우는 태봉 주민들이다. 목포로 가는 200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골프장 조성 결사반대’ 깃발이 노랗게 붉게 나부끼는 마을이 저만치 보인다. 저기가 바로 태봉이다.

    10월 25일 르뽀작가 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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