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세 누가 없앴나? 대통령? 우리다"
        2007년 11월 07일 12: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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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뽀작가 박수정씨는 지금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만인보 ‘장정’을 함께 다니면서 현장 취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레디앙>은 ‘길 위에서 묻다’라는 제목으로 권영길 후보 블로그에 연재 중인 그의 글을 같이 싣기로 했다.

    보도되지 않았던 현장의 모습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생생한 숨소리를 느껴볼 수 있는 박수정씨의 글에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못 내 못 내 절대 못 내 / 부당수세 절대 못 내
    농민 고추 하나 못 사준 / 노태우 고추 잘라버려”

    크게 내지르는 구호가 아니라 가락에 맞춰 부르는 노래. 아무것도 아닌 듯 흥얼흥얼 대는 속에 ‘끝을 봐 버려’ 하는 마음이 들어있는 노래. 농민들이 지난 시절 수세 폐지 투쟁을 하면서, 고추수매 투쟁을 하면서 부른 노래이다. 정광훈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이제까지 농민들이 275번 데모를 했는데 이긴 투쟁은 딱 세 개라고 한다. 앞에 두 투쟁과 농협조합장 직선제 투쟁.

    10월 24일 저녁 7시 30분 나주시 왕곡면 농협 2층 강당에 70여 명이 모였다. 왕곡면 농민회, 여성농민회 회원들이 추수로 바쁘고 지쳤을 몸을 이끌고 농협으로 밤 마실 나왔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도 있고, 아빠 품에 안겨온 어린 아기도 있다. 양말 속으로 바짓단을 밀어 넣은 모습을 보니 일을 끝내고 미처 집에 들르지 못한 어르신이다. 일 끝내고 어디서 막걸리 한 잔 걸치셨을까, 얼굴이 옅은 노을빛으로 붉다.

    제17대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인 권영길 후보가 강당으로 들어오자 앉아있던 농민들은 “권영길! 권영길! 농민 대통령 권영길!”이라고 외쳤다. 해남에서 만나 지금까지 전남 지역을 함께 다닌다는 정광훈 대표는 그 자신이 농민이고 농민투쟁 할 때면 늘 함께 어깨 건 사람들이기에 나주 농민들과 무척 가까워보였다. 그리고 할 말도 많았다.

       
      ▲ "데모하면 나주"라고 말하는 농민들. ‘마그마’란 모자의 글자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사진=진보정치)
     

    “데모하면 ‘나주’다. 수세 없앤 게 누구였는가? 대통령도 아니고 국회원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니다. 바로 우리 농민이다. 농사만 지어도 행복한 세상이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은 농사만 지으면 빚지는 세상이다. 가장 큰 설움은 배고픈 설움이다. 두 번째 설움은 사람이 무시당하는 설움이다. 우리 세상에서 가장 무시당하는 사람이 농민이다.

    우리가 데모하면 KBS에서는 과격집단이라고 하고 MBC 틀면 폭력 집단이라고 한다. 노동자들은 투쟁하면 회사에서 모가지가 잘리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투쟁했다고 누가 ‘너 농사짓지 말아’하고 자르지 않는다. 우리는 잘릴 모가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번 11월 11일 서울에 모여서 확 바꾸자. 정말 사람이 농사만 지어도 행복한 세상에서 해남 농민과 나주농민이 날마다 잔치하자.”

    나주 농민회 정창길 회장은 “부당 수세 못 낸다고 87년 수세투쟁하면서부터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늘 다음해에는 수확해서 빚 갚고 좋은 날을 살아볼까 희망을 가져보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씁쓸히 말한다. 그 말이 가슴에 왔을까, 한 아저씨가 먼저 손뼉을 친다.

    누가 말을 하든 여기 사람들은 손뼉 치는 걸 아끼지 않았다. ‘당신 말에 내가 함께한다. 당신 걸음에 내가 발맞추리라’는 뜻일까. 달리 줄 것이 없어 마음 실은 손뼉 치는 소리라도 실컷 주고 싶은 것일까.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은 후보에게 묻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면 사표가 된다는 말을 한다. 사표가 아니라 꼭 될 거라는 자신감을 보여줘라.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농민을 위한다면서 대통령이 되고 나면 변했다. 권 후보는 변하지 말아 달라.”

    “전국농민대회 제목에 ‘농가부채’가 들어갔다. 부채 문제로 죽는 농민도 있고 심각하다. 걱정 차원에서 말한다. 한나라당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정책을 냈다. 나는 한나라당은 싫어하고 권영길을 좋아한다. 민주노동당에서 정책을 내놓으면 좋겠다. 농가부채는 농민에게 현실 문제다.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보다 먼저 대안을 내 놓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지금 우리가 있는 여기는 왕곡농협이 아니라 만한농협 왕곡지점이다. 전국에 1,300개 조합이 있는데 거의 망해간다. 우리가 정부와 싸워서 이자율을 8.5%로 낮췄다. 그런데 농민이 현재 돈을 빌려 쓸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해결도, 방안도 안 준다.”

    “농민 시위에 많이 갔는데 그때마다 권 후보가 참여하는 걸 봤다. 나는 잠바를 입었는데 권 후보는 마이를 입어서 내 잠바를 주고 싶었다. 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영희 선생님께서 쓴 『우상과 이성』을 읽고 내 인생이 바뀌었다.

    나는 지금까지 야당만 지지해 왔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세력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게 진보를 용공․좌경으로 몰아왔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하면 사회주의로 모는 경향이 있다. 국민 의식이 낮아서다. 나는 정면 돌파하고 싶다. 사회는 앞서가는 세력을 죽이고 가두고 그래왔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싶어도 기피하는 세력이 많을 것이다.”

    이리저리 사람들과 어울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고 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을 이야기 하고, 정치 견해를 밝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선명하게 자기를 밝히는 게 금지된 사회에서 살아온 탓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순간 누군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인생이 바뀐 계기를 말하는 한 농민을 보면서 참 오랜만에 고백을 듣는 기분이었다.

    아쉽지만 참여한 농민들이 한 말은 여기까지이다. 좀 더 달구고 좀 더 뜸들이면 더 많은 고백과 주장과 토로가 쏟아지련만……. 사회자가 권영길 후보를 소개한다. “이 바쁘고 중요한 시기에~”라고 앞머리를 단다. 나는 슬쩍 그 말에 혼자 속으로 토를 단다.

    이 바쁘고 중요한 시기에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는 어디에 가 있어야 하는가. 이 바쁘고 중요한 시기에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는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통령 후보도 바쁘고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고, 농민들도 추수로 한 해 가운데 가장 바쁘고 중요한 시기를 보낸다. 권영길 후보는 이 바쁘고 중요한 시기에 자신이 만날 사람은 농민이라 생각했고, 추수로 바쁜 몸이지만 농민들도 중요한 시간을 내 민주노동당 후보를 만난다. 그러니 어느 한쪽만 중요한 자기 시간을 낸 것은 아니다. 중요한 시간을 내 준 농민들이 외쳤다.

    “권영길! 권영길! 농민 대통령 권영길!”

    연세 드신 분들이 연호하는 목소리가 모두 청년이다. 글쎄, 후보가 도착하기 전에 한번쯤 연습을 해 입을 맞춰 봤을까. 먼저 시작하는 이도 늦게 불쑥 튀어나오는 이도 없이 딱딱 맞다. 아무렴 어떠랴. “농민 대통령 권영길!”에 ‘힘내라’는 마음이 담긴 것을. 권영길 후보는 “어깨가 무거워진다”고 답한다.

    “사표이야기를 하는데 따져보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나 범여권후보는 한미FTA를 찬성한다. 그들은 한미FTA 안 되면 못 산다고 한다.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쫓아내고 비정규직을 더 만들어내는 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한미FTA 되면 농민 다 죽는다. 농민, 노동자, 상인, 청년, 학생 모두 죽이는 건데 한미FTA를 찬성하는 그들에게 찍는 거야말로 죽은 표 아니겠는가. 무의미한 표 아니겠는가. 이번에는 민주노동당을 찍는 게 살리는 표이다. 농민도 살리고, 노동자도 살리는 표이다.”

    “민주노동당은 당비 만원씩, 피 묻은 돈 만원씩 내는 당원이 10만인 정당이다. 내가 대통령이 된 뒤 변하면 아마 이 당원들한테 맞아죽을 것이다. 농가부채, 농협 문제 모두 대통령 되면 정리하겠다. 우리 농민들 너무 순하다. IMF 오고 나서 정부는 공적자금으로 재벌 빚 150조를 갚아주었다.

    재벌들 빚은 국가 돈으로 갚아줘도 되고 농민들 빚은 개인 빚이어서 갚아주면 기강이 해이해진다고 안 갚아준다. 왜 농민부채는 국가 돈으로 갚아주면 안 되는가. 재벌들 빚보다 농민 빚을 먼저 갚아줘야 한다.”

    “지금 전남지역을 도는 것은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로서가 아니다.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자칭 11월 11일 백만민중대회 조직위원장으로서, 우리나라 비정규직노동자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비정규직 차별철폐 본부장을 맡았는데 그 자격으로 서 있는 거다. 세상 한번 바꿔보자고 온 거다. 한미FTA 막아내자고 온 거다.

    우리가 모이면 바뀐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우리 운동은 밀리고 밀렸다. 새로 흐름을 바꿔야 한다. 근본적으로 바꿔보자. 한미FTA 국회 비준요청이 들어왔다. 국회의원들 생각을 바뀌게 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자나 깨나 표계산만 한다.

    통상위 의원 26명 중 찬성이 25명이다. 반대는 나 한 명이다. 내가 다른 의원들에게 반대해야 한다고 하면 이거 해야 먹고 산다고 그런다. 국회의원도 한미FTA가 뭔지 제대로 모른다. 국회의원이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를 안 한다. 비준에 찬성해도 당락에 상관이 없으니 겁이 없다. 쌀 개방 때 반대 서명해 놓고 막상 투표 때는 달라졌다. 그래도 당락에 관계없더라고 한다. 당락에 관계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백만 명 모이면 세상이 뒤집어지는 거다.”

    “그럼 세상을 바꿔서 뭐할 거냐? 국가가 공부시키고 무상의료, 노후보장까지 할 수 있다는 걸 왜 생각 못 하는가. OECD 가입 국가 중 개인 돈으로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다니는 나라, 의료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나라가 딱 두 나라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이다.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실현할 거다. 그런데 한미FTA는 바로 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반대한다. 민중이 주인 되어야 한다. 이제 뭘 해야 하는가. 정말로 주인 되는 세상 만들어 무시당하고 설움당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우리가 책임지겠다 하고 일어서야 한다.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여러분이 꼭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자!”

    세상을 바꾼다는 건 무얼까. 오래전 고려시대 노비 만적은 세상을 바꾸려고 일어섰다. 물론 그 끝은 세상도 바꾸지 못하고 발목에 무거운 돌이 채워져 동지들과 더불어 저 물속으로 던져졌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 게 끝나지는 않았다. 뒤를 이어 다른 노비들이 뻔히 만적이 죽임을 당한 걸 알면서도 다시 세상을 바꾸려고 모이고 나서고 죽고 그랬다.

    그러니 그렇게 ‘세상을 바꾸자’고 나선 이들은 지금 이 시대 사람들만이 아니다. 오래전 아주 오래전부터 ‘세상을 바꾸자’는 말이 있었다. 그게 가능하냐고는 묻지 말자. 가능한가 묻고 의심하던 순정은 두려움에 떨다 주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아 저만 살고 만적과 동지들을 배반해 죽게 했다. 가지 않고는 모르는 길. 깊숙한 물속으로 빠져들던 만적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낡은 것은 구호일까, 사람일까.

    10월 24일 르뽀작가 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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