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길이 제일 잘 했고 이명박 2등"
        2007년 11월 07일 12: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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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주최한 ‘선택 2007 한농연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가 6일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렸다.

    사회자는 "지난 대선 때 이 토론회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행사 의미를 강조했다. 이런 기준대로라면 금년 12월에 대통령이 될 사람은 권영길이나 문국현이다.

    권영길과 문국현은 행사가 시작된 오후 2시부터 다섯 시 넘어까지 자리를 지켰다. 몸값 비싼 정동영, 이명박은 자신의 연설 순서가 되었을 즈음해서야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냈고, 이인제와 심대평은 대통령이 되기 싫었던지 20분 연설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

    "농업을 아는 후보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 "한농연의 손으로 선출할 농민 대통령은?"이라는 플래카드가 무색하게도 경기장을 메우기에는 태부족인 농민들로 대회는 좀 썰렁한 편이었다. 주최 측은 "경찰 추산 5,000명이랍니다"라고 말했지만, 행사 기획안이 목표했던 20,000명의 1/10을 좀 넘지 싶었다.

       
      ▲사진=뉴시스.
     

    대선 후보가 처음 한 자리에 모인 탓인지 ENG카메라만 서른 대는 되는 듯 보였고, 사진기자에 취재기자들까지 100명은 족히 넘을 취재진의 열기가 더 뜨거웠다.

    행사장을 압도하거나 한농연 회원들의 동조를 얻은 순으로 따지자면, 이 토론회의 승자는 권영길과 이명박이었다. 권영길은 농민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애정을 유감없이 보여준 연설을 하여 가장 많은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말그대로 사자후(獅子吼)였다. 이명박이 이야기한 것은 시종일관 ‘농민 탓’으로 읽혔지만, 그의 자연스런 말투와 공격적인 논조에 농민들은 고개를 주억였다.

    권영길의 사자후

    정동영과 이인제는 평범했고, 문국현과 심대평은 눈에 띄지 못했다. 언론의 각광을 받고 있는 문국현, 도지사 3선의 심대평을 농민들은 잘 모르는 듯했고, 다른 네 사람의 열변에 비해 문, 심 두 사람의 작은 목소리는 초라하다기보다 아예 존재감이 없는 수준이었다.

    농촌에 가면 ‘농민의 아들’이 되고, 시장에서는 고생했을 적 얘기하고, 공장 가서는 젊었을 때 다녔던 공장 이야기하는 게 정치인이다. 한농연 토론회의 여섯 후보 역시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운동권 비슷한 한농연 회원들의 민심을 읽은 후보는 단연 권영길이었다.

    한농연은 김대중 정부 이후 많은 간부들이 정권에 참여하며 친여 성향을 걸었지만, 국민승리21 초기에 함께 했었고, 아직도 많은 회원들이 전농과 겹치는 조직이다. 대회장 밖에서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며 나누는 넋두리들도 전농 집회 풍경과 다르지 않은 한농연 토론회에서 권영길은 익숙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호남 만인보를 마친 직후다.

    권영길은, 사회자의 언급과는 달리 지난 대선 토론회 때 자신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국 농업은 비전이나 미래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한미FTA로 농업 숨통을 끊어 놓았는데, 무슨 비전, 무슨 미래, 무슨 정책이 있겠나. 한국 농업에게는 비전이나 미래가 아니라, 당장 살아남기 위한 비상과 긴급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내년에 대통령이 된 이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농민들이 울부짖고 있는데, 누가 그 자리에 갔습니까?" 펜싱경기장 한농연 회원 중 한 사람이 "권영길이 갔다!"고 외쳤고, 이날 여섯 후보에게 돌아간 단 하나의 화답이었다.

    권영길은 임기 중 50만의 ‘나라에서 월급받는 농민’ 양성, 농가부채 이자율 인하와 10년 유예-15년 분할 상환, 북한에 연 400만 석씩 쌀 지원 법제화 등을 공약했다. 권영길의 공약은 당연하게도 한농연의 ’13대 농정공약’과 가장 비슷했고, 이른바 ‘미래 농업’이 아닌 유일한 현실 농업 정책이었다.

    이명박, 정동영, 이인제, 문국현, 심대평의 공약은 너무 휘황찬란했다. 그리고 농업보다는 농촌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요즘 유행하는 고부가가치농, 기술농, 관광농 따위로 완전히 통일돼 있었다. 이인제의 ‘전원농촌문화공동체’, 문국현의 ‘휴양과 관광의 농촌’ 같은 건, 농민 떠나 풍광 좋아진 농촌에 놀러 가자는 말처럼 들렸다.

       
      ▲사진=뉴시스.
     

    이명박의 논리는 해괴했다. 그의 연설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어휘는 ‘여러분’이었는데, 매사에 "정부가 돈으로 지원한다고 농업이 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노력해야 합니다"라는 식이었다. 이명박이 케네디 흉내를 내는 건 아닐테니,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주체는 당연히 박정희다.

    목소리는 좋지 않았지만, 여섯 후보 중 가장 평어체에 가까운 말투를 쓴 이명박에게 한농연 회원들은 귀기울였다. 이명박은, 현실과 대화 상대방과 자신조차도 신랄히 비판함으로써 주장의 신뢰도를 높이는 설득케뮤니케이션 방법을 몸에 익히고 있는 듯했다.

    알아서 살라는 이명박

    "다 유기농하면 유기농끼리 경쟁해서 수지 못 맞춰요", "농업보조금 절반 농기계 사는데 썼는데, 그 기계 다 녹슬어 버렸고, 결국 농기계 회사만 돈 벌었잖아요"라는 말은 유기농 하지 말자거나 보조금 안 주겠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겠지만, 한농연 회원들에게는 ‘솔직하다’는 인상을 준 모양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정동영에게 가끔 야유가 퍼부어졌던 데 비해 이명박이 똑같은 말로 박수를 받은 것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대신 이명박은 ‘2차 식품 생산’이라는 대안을 계속 반복했다. 아마도 농촌에 농산물 가공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 같은데, 그 방향이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박정희 후반기부터 계속 실패한 이 정책을 성공시키기는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2차 식품 생산’의 성공의 요건은 무엇일까? "그런 거 정부가 만들어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이 만드는 겁니다. 세 배로, 네 배로 부가가치 늘리는 건 여러분이 만드는 겁니다." 이명박식 새마을운동은 ‘근면, 자조, 협동’ 중 ‘협동’을 뺀 것이었다.

    "나가라"라는 아유와 함께 연석에 선 정동영도 비슷했다. "현재 수출 농산물이 50가지다. 이것을 150가지, 200가지로 늘려달라." ‘콜드체인, 냉동유통망’을 만들어 농산물 수출 지원을 하겠다는 정동영 공약의 조건은 "파프리카처럼 경쟁력 있는 농산물을 농민 스스로 늘리는 것"이었다.

    정동영은 "머리띠 매고 반대해도 한미FTA 막을 수 없다면, 개방의 파고를 넘자고 솔직히 말하겠다"고 연설했고, 이명박은 "한미FTA는 우리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반대하기보다 이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연설했다.

    농특산물을 거론하다 ‘젖갈’을 들먹인 실수를 제외하면, 이인제의 농업 공약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농협 등 금융기관의 농가 부채를 완전 대손충당하겠다"는 이인제의 공약은 대출이 이미 이루어진 마당에 대손충당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뒤따르지만, ‘농가부채 완전탕감’이라는 오랜 숙원에는 가장 가까웠다. 농촌의 건강보험료 부과 기준을 토지 등 재산에서 소득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정책도 타당하게 느껴졌다.

    "새벽 세 시까지 직접 썼다"는 심대평의 연설 원고는 좀 어려웠다. ‘벤처 농업, 농업 클러스터, 바이오, 프로 농민, 농업 CEO’ 심대평은 "변화와 자생력이 한국 농업의 키워드"라고 주장했는데, 심대평의 키워드는 ‘영어 컴플렉스’가 아닐까 싶다.

    심대평 뿐 아니라, 많은 자치단체장들이 외자나 영어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데, 이런 현상은 심대평 등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열악한 재정자립도와 중앙 정부 지원 부족 상황에서 외국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한국 지방자치 현실이 낳은 업보다.

    갈팡지팡 문국현

    6일 한농연 토론회에 참석한 문국현은 누굴까? 혹시 여러 문국현이 있는 건 아닐까? "여러분 존경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사람 좋고 공손하게 인사한 문국현은 인터넷 뉴스 댓글에 떠도는 그 문국현이었다. 하지만 ‘개혁적’이라거나 ‘물들지 않았다’는 문국현은 딱 거기까지 만이었다.

    "한미FTA를 비준하고자 하는 목소리는 잘못된 것입니다. …중국과 FTA 하는 것은 우리 농촌을 죽이는 것입니다." 문국현은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농민 집회에서는 한미FTA도 한중FTA도 반대한 문국현의 평소 소신은 무엇이었을까?

    "한중일 경제협력체제에 이어서 간다면 저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좋아지고 그 다음에 세계적 자유무역에서 FTA를 신성장전략으로 쓰는 개방형 통상국가라고 할까요. 그리로 가는 첫 국가가 된다고 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효과도 있고 장기적으로요.

    그 다음에 우리 한국을 전 세계에서 개방형 통상국가로 가는데 먼저 미국하고 이렇게 맺으면서 EU라든가 중국, 일본하고 하면 된다고 봅니다(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2007. 4. 3)."

       
      ▲사진=레디앙 이재영 기자
     

    "어떻게 외국산 물건들이 조금 싸다고 해서 우리 농촌을 버릴 수 있습니까. 이것은 부모님 버리는 자식과 같은 짓입니다." 단 하루 전인 5일 문국현은 참여연대 주최 토론회에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입장에 대해 "과잉반응이다. 다른 나라에는 관대하면서 미국에만 그러냐. …미국 국민이 광우병에 많이 걸렸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비판했었다.

    문국현이 자신의 부모를 버리지는 않았겠지만, 그는 자신의 소신을 똥휴지 버리듯했다. 대회장 밖에서는 강동시민연대 회원들이 문국현의 소고기 발언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오른쪽 사진) 이날 대회는 정동영, 이명박보다 더 ‘정치인’다운 문국현의 등장 무대였다.

    문국현은 그의 지론인 지식경제론도 강조했다. 농민을 ‘세계적 지식경영인’으로 만들 포부도 밝혔고, ‘농촌 평생학습 교육정보 인프라 구축’ 계획도 밝혔다. "전세계 어느 관광객이 오더라도 머물 수 있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농촌에서 외국어 교육도 실시할 것이라 말했다. 우리 노인네들, 참 고생 많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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