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술, 과거시험 그리고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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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06일 09: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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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술은 우선 글쓰기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논술에 가장 가깝고 널리 알려진 것은 과거 시험이다. 과거 시험은 주어진 문제에 대해 순전히 주관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펼쳤으니 바로 논술이었던 것이다.

    과거 시험이 시를 짓는 시험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으나, 아마 시를 짓는 시험도 있었겠지만, 과거 시험도 여러 단계가 있고 여러 종류가 있었으므로, 주로는 산문을 그것도 국가 정책이나 당면한 정치철학적 쟁점들에 대한 답안을 썼던 것이다.

    논술과 과거 시험

    과거 시험장에서 좋은 답안을 쓰려면 무엇보다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직해야 한다. 현실의 어두운 면을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아름답지 않은 측면도 말할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자기가 가진 생각을, 권력자나 임금의 생각과 달라도 상관하지 않고 펼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정직하게 바로 보고 정직하게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과거 시험이 아니라도 글을 잘 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심지어 연애편지를 잘 쓰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과거 시험이 논술이라면 논술은 진작부터 봉건시대부터 정치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건 동아시아 정치에 왕도정치라는 유교적 이상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했다. 그건 일종의 지식인 독재 체제로서 선비들, 사대부들이 통치를 하는 정치체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민주적인 토론 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급기야 인재 등용을 과거 시험을 통해서 하였으니 글 잘 쓰는 사람이 득세했던 시대가 계속되었다.

    당신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여러분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글쓰기에 지금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글만 잘 쓰면 출세할 수 있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현대 프랑스가 조선에 가까운 나라인 것 같다. 아니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에서 좌우 이념의 정당 정치가 이루어지면서 지식인들이 정당을 이끌고 그러니 자연히 정치는 지식인의 직업이 되었다. 유럽의 정치인들은 글쟁이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동안 주로 주먹쟁이들이나 군인들이 정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 시험에 철학시험을 논술로 치는데 그 해의 바칼로레아 시험 문제는 전 국민의 화제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아마 그런 현상이 훨씬 심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이런 현상을 정치에 이용하기도 한 모양이다. 흉년이 들어 쌀이 부족하면 과거 시험 문제를 “술의 폐해를 논하라”고 냈다. 이건 술을 담아 먹지 말라는 금주령을 내리기 전에 반발을 무마하는데 필요한 정치 행위였다.

    동아시아의 왕도정치는 플라톤의 철인 정치론과 같은 것이다. 왕도정치는 왕이 철학자, 현자, 최고의 지식인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니 왕 노릇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세종대왕께서 쉰네 살에 돌아가시고 정조 임금도 사십대에 돌아가셨는데 문제는 그 분들에게 어릴 적부터 주입된 강박관념이었다.

    너희들이 왕이니 왕은 힘이 아니라 지식으로 신하들을 압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 놓았으니 평생 마음 편히 잠시도 쉬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성군이라 불리던, 백성을 사랑하는 독재자들의 일생은 이토록 고달프고 불행했으며, 그들의 과로사는 만백성의 재앙이고 슬픔이었다. 왜냐하면 그 후에는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무능한 폭군이 들어설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민주주의 비판

    플라톤의 철인정치론은 로마의 5현제에서 실현되고 맹자의 왕도정치론은 조선의 세종, 성종, 영조, 정조에서 실현되고 청의 강희, 옹정, 건륭제에서 실현되었지만 긴 봉건시대에서 태평성대는 지극히 짧은 시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정치인이 지식인, 철학자가 될 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한 것이 철인정치론이라면 간접적으로 요구한 것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애초에 매우 희귀하고 예외적인 정치체제였다. 그건 아테네라는 작은 도시국가에서 나타난 매우 특이하고 이상한 정치체제였다.

    도대체 전 국민이(물론 당시엔 여성과 노예와 이방인은 국민이 아니었지만) 왕이라는 그런 나라는 논리상 있을 수 없는 나라였다. 소크라테스의 민주주의 비판은 지극히 상식적인 비판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눈에 비친 민주주의는 금권정치, 선동정치, 중우정치였는데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아테네에서부터 이미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가당치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물었다. 도대체 돌을 수천 개 모아놓는다고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는가? 바보들이 수천 명 모여 떠든다고 진리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소크라테스는 눈앞에서 자기 생각대로 되는 꼴을 보았고 충분히 비아냥거리고 비판했다.

    아테네 ‘국가보안법’에 걸린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국가 체제 비판은 집요했고 결국 아테네 시민의 인내심은 한계를 넘어섰고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었다. 다수결로 진리를 인식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가? 한 사람의 현자가 깊이 사색하여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재판마저 오백 명의 보통시민들 중에서 제비를 뽑아 모집한 사람들, 법률 전문가도 아닌 아마추어들이 모여서 하는데, 소크라테스의 재판의 결과는 바로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더 한층 분명하게 입증해 주었다.

    돌아보면 소크라테스가 사형 당하기 이전에 이미 여러 차례 단지 말로만이 아니라 힘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고 귀족들의 독재로 돌아가려는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 연루자들 중에는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끼어 있었다.

    그런 배경과 전후 맥락을 무시하고 재판 그 자체만을 떼어놓고 본다면 분명 아테네 시민 재판관들이 과도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나름대로 인내하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판단했던 것이다.

    여하튼 민주주의는 그만큼 예외적이었고 취약했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시민이 왕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실제로 통치하는 공직자가 필요했고 공직자는 선출되었다. 그래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출세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하여 공직자로 출세를 하기 위해서 수사학과 논리학, 웅변을, 말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기술만으로 말이 잘 되는 건 아니고 내용도 채워야 하니 모든 지식을 다 배워야 하고 그러니 아테네에는 철학 공부 열풍이 불었다.

    웅변과 철학의 정치

    말만 잘하면, 사람들을 설득하기만 하면 재판에서 이길 수 있고, 권력을 잡을 수도 있으니 유식한 놈이 왕이 되는 나라가 아테네였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지식인들이 선생이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들었다. 가르치는 일이 직업이 되고 학교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장난스럽게 재미있게 그리고 단순하게 말하면 민주주의에서는 ‘말 잘하는 놈이 최고’이고 왕도정치, 철인정치에서는 ‘글 잘 쓰는 놈이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은 스승의 민주주의 비판을 이어받았고 철인정치론으로 발전시켜나갔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역사에서 사라졌고 플라톤이, 아니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최후의 승자인 듯이 보였다.

    근대에 와서야 민주주의는 부활했고 위대한 아테네 시민들은 인류를 위해서 민주주의 실험을 한 커다란 명예를 안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가장 독한 비판자를 내부에서 키웠지만 그 위대함을 이미 당대에도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을 물리침으로써 입증했다.

    아테네 사람들은 모두가 주인이고 왕이었기 때문에 처자와 재산을 지키려는 극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킬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반면 노예들로 이루어진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은 그토록 치열하게 싸울 이유가 없었다.

    아테네와 대한민국

    마라톤 평야의 전쟁은 지금으로 치면 금의 절반만큼 비싼 철제 갑옷과 방패와 창으로 무장할 만큼 부유한 아테네 시민들을 영웅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이제 당당하게 나라의 주인으로서 발언권을 행사했다.

    살라미스 해전은 가난한 아테네 시민들도 노꾼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 직후가 아테네 민주주의의 최전성기였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가 있었다. 가난한 시민들의 발언권이 커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져서 당당한 왕으로서 행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든 시민의 목소리가 큰 나라, 지금 우리나라도 아마 그런 나라에 속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아테네나 대한민국에서나 원래부터 시끄러운 법이다.

    이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목소리가 커야 살아남고 주장이 뚜렷해야 한 자리 한다. 그래서 말을 잘해야 하고 글을 잘 써야 한다. 자기의 주장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꾸 떠들고 아무렇게나 써라,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부터 내버려라.

    아무렇게나 써놓고 읽어보고 고쳐라. 연애편지는 주저하지 말고 써라. 다만 우체통에 넣기 전에 읽어보고 고치고 교정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과 남을 무엇으로든 절대로 억압하지 말라.

    말하는 대로 써라. 나오는 대로 떠들어라. 봉건시대의 노예처럼 눈치 보지 말고 민주주의 시대의 시민답게 말하고 써라. 그런데 대한민국 사람들은 목소리는 큰데 내용은 좀 부족하다. 가만히 들어보면 자기의 주장을 하기보다는 남 따라 떠드는 경향이 있다.

    봉건시대 노예말고, 민주시대 시민답게 떠들자

    그러니까 민주주의 후진국이라서, 아니 철인정치론적인 요소가 없이 민주주의만 하기 때문에, 즉 중우정치, 선동정치, 금권정치 수준의 미숙한 민주주의를 하기 때문에 주인들이 노예 수준이다.

    유럽 정치가 선진 정치이고 인류 역사에서 가장 사람 살만한 나라들을 만든 것은 단순하게 민주주의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형식은 민주주의이지만 내용은 철인정치를 하기 때문에 그런 나라들을 만들 수 있었다.

    정치는 학교 선생만큼이나 당연한 지식인의 직업이고 좌우 이념 정당의 당원이 되어 당비를 내고 정책을 토론하고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교육받은 시민의 의무이다. 당대의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일 수준이 아니면 고위 공직을 할 수가 없다.

    언제 우리나라도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겠나? 밥상머리에서부터 억압을 하지 않고 학교에서부터 자유롭게 주장을 표현하여 말하고 글 쓰는 걸 가르치고 하다보면 언젠가는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겠지.

    그러나 아직은 후진국, 정치는 개인의 출세욕과 권력욕, 그리고 학교나 가문의 영광을 위한다는 근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해 당사자들이나 목숨 걸고 나머지 사람들은 구경하면서 승패를 점치고 관전자로서 방관자로서 평하고 욕하면 그뿐이다.

    나를 저주하는 이유

    정치에 참여해보면 근본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받는다. 아니 개인 명예욕과 권력욕이라는 동기는 당연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노동자 서민을 위해서”라면 “에이,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하더라”는 눈으로 쳐다본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에는 민주주의의 형식만 있고 철인정치의 내용이 전혀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절망하고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고 서양 사람들이 쓴 책을 너무 많이 읽은 나를 저주하게 된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조선의 정치인들을 오늘날의 정치인들과 비슷한 사람들로 생각하면 안 된다. 조선의 정치인들은 당대의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당대의 논객들이었고 철학자들이었으며 시인 묵객들이었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그들에 비하면 염치도 없고 지식인으로서의 의무감도 없고 자존심이나 소신이나 정치 철학도 없다. 차라리 대한민국의 정치지망생들에게 조선 시대의 과거 시험 같은 논술시험을 치르게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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