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례대표제, 민주노동당 독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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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05일 01: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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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약의 계기가 돼야 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당 내부에는 에너지와 신바람 대신 회의와 패배의식이 팽배해 있는 듯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떤 이들은 대선 후보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대선 후보가 누군가에 따라 전적으로 해결될 문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후보 전술이든 전략이든, 그것도 중요한 요인인 것은 사실이나, 현재 민주노동당이 앓고 있는 질환은 그보다 더 깊고 먼 데서 병인을 찾아야 한다. 여기저기서 간헐적으로, 비공식적으로 당의 위기와 대안을 얘기하고 있다.

    다시 한번 무엇이 문제인가. 민주노동당 평당원인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말문을 열었다. 지금 이대로 안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누가 그것을 해야 하나. 홍세화 당원은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와 대안을 밝히고 있다. <레디앙>은 앞으로 그의 글을 특별 기고문 형식으로 몇 차례 싣는다.

    그는 자신의 진단과 견해 그리고 대안이 당 내에 활발한 토론을 촉발시켜, 구체적 실천 방안이 도출되기를 바라고 있다. <레디앙>은 홍세화 당원의 기고를 계기로, 현시점에서 대선 못지않게 중요하며 대선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당의 쇄신과 발전을 위한 소중한 목소리들을 모아 진보정당의 발전과 도약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12년 집권’을 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이 말을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이젠 ‘2012년 집권’이란 말을 꺼내기조차 민망해질 만큼 민주노동당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당은 위기에 처해 있고 분명 내리막길이다. 앞으로 나아지리란 뚜렷한 전망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당원이 떠나가고 있는 정당

    그러나 이런 당의 추락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당직에서 물러날 줄 아는 당 간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또 당이 왜 추락하는지 그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여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도 찾아볼 수 없다. 나 같은 평당원이 보기에 당 간부들의 주된 관심은 당의 역량 강화나 지지도 향상에 있기보다는 당내 헤게모니 구축에 있을 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면 악화의 헤게모니 구축은 그만큼 수월해진다. 가령 일심회 사건과 이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당의 온정적 태도는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

    국가권력의 과잉 탄압에 대해 당이 비난하는 일도 당연하지만 ‘조선노동당 2중대’ 소리를 듣게 만든 해당행위에 대해서도 당의 단호한 자세 또한 필수적이다.

    그러나 당은 전자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 당에 실망한 당원들이 당을 떠나기도 했다. 당 간부들은 책임을 느끼고 물러날 줄 모르는 대신 당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쫓아냈으며, ‘무상교육,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구체적 청사진을 그려내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당의 파행에는 정파 간 다툼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핵심에 비례대표제가 자리 잡고 있다. 2004년 비례대표제가 두 자리 숫자 의원의 국회진출을 가능하게 한 보약이었다면, 오늘 비례대표제는 당을 망치는 독약이다.

    당 간부들이 모두 비례대표제를 겨냥하면서(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고 밝힐 일이다!) 이 나라 민중을 상대로 정치를 하지 않고 당원 대상 정치만 한다. 당의 영향력과 지지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당내 헤게모니 구축에만 관심을 갖는다.

    비례대표만 겨냥하는 당 간부들

    일심회처럼 당원들을 탈당케 하는 해당 행위조차 자파의 당내 입지를 강화시키는 결과로 받아들인다. 비례대표제 선출방식을 당내에서 당외로 확대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만큼 당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집권 이전에 제1야당이 되기 위해서도 지역구 약진은 필수적이다. 당은 지역구 약진을 위해 지금까지 무슨 노력을 기울여왔는가? 창원과 함께 유일한 지역구였던 울산에서 빼앗겼는데 그에 대한 보고서 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당 간부들의 생각이 다른 데 팔려 있지 않다면 진보정당이란 이름이 가소로울 정도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권영길 대선 후보가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비례대표를 할당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장애인과 여성에게 할당한 것처럼 비정규직에게도 할당해야 한다는 제안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가장 중요한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당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장애인이나 여성 할당제는 보수 정당들도 다 하고 있는 일이다. 당 간부를 위한 정당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면 권 후보의 제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비례대표 1번을 장애인으로 결정하였듯이, 2번과 3번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정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라는 구호는 당의 구체적인 선택과 행위에 따라 진정성이 담보된다.

    장애인, 여성 할당제는 보수정당도 하고 있다

    가령 자동차 앞바퀴는 정규직노동자가, 뒷바퀴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끼우고 있는 현실적 토대 위에 있는 당으로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아무리 떠들어도 진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비례대표 2, 3번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느냐?"라는 반문도 나올 수 있지만 당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 한다는 의미가 있다. “비정규노동자에게 국회의원 일자리를” 줄 수 있는 당은 민주노동당밖에 없다.

    애당초 당 간부들은 비례대표 8번까지 자격이 없다. 2004년에 이미 획득한 당 지지율이 오늘 당 간부들의 기득권으로 작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4년 이후 당의 영향력과 지지도를 높였다면 그만큼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즉 9번 이후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당의 원칙으로 자리 잡혀야 한다.

    4번부터 8번까지는 전략적인 공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농민, 경제, 교육, 통일, 청년 등 부문에 관해 능력과 자질이 검증된 후보를 내세움으로써 수권을 준비하는 당으로서 ‘그림자 내각’을 준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조승수 동지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진보정당의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평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아직 거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글을 밝히는 것은 토론의 활성화를 위해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진정으로 당의 미래를 걱정하고, 노동자 농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이 될 수 있도록 활로를 개척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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