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민주의 전망 가진 새정당 필요"
        2007년 11월 04일 09:30 오후

    Print Friendly

       
     
     

    출판사 후마니타스는 최장집 교수 책을 내는 출판사로도 유명하고,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정당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대안 제시를 하는 출판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후마니타스가 <민주주의 총서>의 여섯 번째 책 『어떤 민주주의인가』를 내놓았다. 최장집, 박찬표, 박상훈 세 정치학자의 글이 담긴 이 책에 대해 후마니타스 대표인 공저자 박상훈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노무현 정권 아래서 민주주의 발전 경로 봉쇄

    『어떤 민주주의인가』는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민주주의 발전 경로가 봉쇄되고, 국가 중심 민주주의가 심화되었다고 주장한다. 대개들 노무현 정권을 탈권위적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탈권위적인 것이 민주적인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 발전 경로가 봉쇄되었다는 평은 의외다. 왜 이렇게 평가하는가?

    = 민주주의는 ‘인민이 국가, 정부를 통치하는 체제’다.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인민 참여가 정당을 통해 이뤄지는데,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정당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했다.

    노무현 정권 집권기 동안 국가관료, 청와대로 대표되는 집행부 권력이 강화됐다. 정치학에서는 국가가 강하냐, 정당이 강하냐를 묻는다. 대중정당론자, 책임정부론자들은 정당이 국가를 통제하는 것이 민주주의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집권기 동안 민주주의 발전 경로가 봉쇄된 것이다. 

       
     
     

    ‘국가관료’라는 표현은 청와대 뿐 아니라, 선관위나 검찰 같은 기구들도 지칭하는 것인가?

    = 특히 재경부 관료들을 지목하고 싶다. 이들은 정부에서 일하면서 나라를 좌지우지할 뿐 아니라, 퇴임 후에도 김&장 같은 법률회사에 들어가거나 재벌로 자리를 옮기거나, 직접 펀드를 구성하면서 국가를 지배하고 있다.

    관료들의 국가 장악은 박정희 때부터 그랬던 것 아닌가? 노무현 재임기에 특별히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진 것은 아니지 않나?

    = 박정희 정권 때 경제관료가 특별히 강했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라는 통치자가 강했던 것이고, 중앙정보부가 외국에 나가 계약 조건이나 수출 단가까지 결정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들어 눈에 뜨일 정도로 경제관료들이 강화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시민참여가 삼성공화국 만들어

    정당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틀에는 찬성하지만,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당만이 인민 참여 경로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북유럽의 옴부즈맨제 같이 국가에 직접 참여하는 경로도 있지 않는가?

    = 독일 같은 나라에도 사회복지 전달시스템에 다양한 시민 참여 통로가 있다. 그런데 이 때의 사회복지 시스템, 국가는 정당 참여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즉, 정당 참여를 통해 민주화된 국가라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당 참여를 통해 국가가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당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용역을 받는다거나 여러 위원회에 참여하거나 하지만, 국가 시스템을 바꾸거나 정책을 결정하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흡수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여러 시민단체나 그 출신 인사들이 정권에 참여하고, 시민운동과의 일상적 교류도 활성화되었다. 어쨌거나 노 정권이 시민사회와 커뮤니케이션하려 시도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 노무현 정권은 정당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정당을 우회해서, 시민운동을 끌어들여 관료를 통제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시민운동이 국가를 운영할만한 수준의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이광재 같은 참모들을 통해 삼성 보고서를 입수하고, 거기 써진 그대로 정치를 했다.

    시민의 국가 참여라는 것을 이야기하자면, 시민사회가 공적 단일체가 아니라는 사실부터 전제해야 한다. 마음에 드는 시민단체를 끌어들이다 보면 그렇지 않은 시민사회에게도 문호를 개방해야 하고, 결국은 삼성과 같이 큰 힘을 가진 ‘시민사회’가 국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람들이 정당을 싫어하지만, 정당정치에 변화가 없으면, 시민사회도 변할 수 없고, 국가도 변할 수 없다.

    책에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곧 삼성공화국’이라는 대목이 있던데.

    = 정당을 빼면 정권에 쓸모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삼성 정도 뿐이다. 정당 없이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삼성 같이 선출되지 않은 자본권력, 지식권력을 국가권력의 최정점에 지명하는 것이다.

    ‘정당 충격’이 복지국가 만든다

    연초 ‘진보논쟁’ 때 최장집 교수의 정당정치론과 조희연 교수의 운동정치론이 논쟁되었었다. 최근 조희연 교수가, 최장집 교수의 지론을 일부 수용하면서 보수고착화된 정당정치가 운동정치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시민사회 안에서 운동정치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기존 정당 가지고는 안 된다는 주장은 옳다. 『어떤 민주주의인가』 공저자 세 명의 생각은 새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의 정당 구조는 48년 체제, 한민당 등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정당 구조가 안 변하니, 나라도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당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정당이 만들어지는 단 하나의 경로는 기존 정당 질서 밖으로부터 외생하는 것이다.

    만프레드 슈밋은 현대 민주주의, 현대 복지국가가 ‘정당 충격’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정당 충격’이 없었다. 좋은 정책 만들어 실천하면 된다는 민주노동당의 생각은 국가주의에 가깝다. 그 구상에는 ‘정당 충격’이 없다.

    복지국가는 세력 간의 win-win이 아니다. 타협은 단지 강요된 것일 뿐이다. 강요된 타협의 지점은 정당의 힘에 정확히 비례한다.

    후보 단일화는 민주주의 아니다

       
     
     

    얼마 전에 정치학자도 포함된 일군의 학자들이 이인제부터 권영길까지의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 안타까운 일이다. 정당정치의 전제는 갈등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을 억압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다. 차이, 다름이 곧 민주주의이고, 그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당정치라는 측면에서 문국현을 평가하면 어떨까?

    = 인민은 대표 체제를 통해 국가를 통치한다. 그 대표가 되는 데는 경력이 굉장히 중요하다. 심지어, 마가렛 대처의 각료 경험이 두 차례밖에 안 되었었다는 것이 문제되었던 적도 있을 정도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장이지만, 정당 밖, 기업은 민주주의가 통하지 않는 곳이다. 기업가가 곧장 정치로 들어오는 것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안 되고 있다는 표징이다.

    정치관계법 개혁 과정에서 정당을 위축시켰다. 민주노동당은 지구당을 통해 운영돼 왔는데, 지구당이 불법화되다 보니 지역활동에 어려움이 많고, 그런 법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 보수정당의 지구당이 부패고리인 것은 사실이지만, 부패를 없애야 하는 것이지 지구당을 폐지시킬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부패한 지구당이라도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가 ‘깽판’이라도 치고 했는데, 지금은 아예 그런 경로마저 막혔다.

    왁스 뿌려 깨끗하게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인간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 정치라면, 정치 역시 진흙탕에 잠겨 있을 수밖에 없다. 깨끗한 정치는 중산층만이 할 수 있다.

    책에 보니 최장집 교수가 좋아하는 정치가로 루스벨트, 브란트, 미테랑을 꼽았다. 사민주의를 지향하는가?

    = 이론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하는 한 실현 가능한 최대치가 사민주의라 생각한다. 그 이상의 이상(理想)도 있겠지만, 과도한 이념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실현 가능한 것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민주의’를 형식적으로 공언할 필요는 없겠지만, 사민주의적 전망을 가진 정당이 출현하여, 사회경제적 이슈를 가지고 기존 정당체제와 정당들에게 충격을 주길 바란다.

    민주노동당은 중산층 엘리트 정당

    민주노동당이 그에 비슷하지 않나? ‘부유세,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그런 충격을 가했던 것은 아닌가?

    = 지난 총선 때까지의 민주노동당은 그랬다. 민주노동당은 아직 정당이 아니다. 정당이란 정부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정당체제에 협박을 하여 다른 정당이 눈치를 보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유력 정당’이라 할 수 있겠는데, 지금 다른 정당들이 민주노동당 눈치를 안 보는 것 아닌가.

    민주노동당이 그런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의회주의나 프랑스식 준대통령제를 고민해봐야 한다. 

    민주노동당을 ‘교육받은 중산층 엘리트 정당’이라 보던데, 어떤 이유 때문인가?

    = 학생운동 출신들이 민주노동당을 주도하고 있잖은가. 중산층 출신 인텔리들은 현실보다 가치를 우선시하다 보니, 낭만적이고 종교적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 생활에 기반하는 정치를 펴지 않는 것이다. 이런 기풍을 변화시키기 위한 문화혁명이 있어야 한다.

    『어떤 민주주의인가』의 공저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요약해달라.

    = 요즘 국가 대 시장이라는 담론이 유행하던데, 그런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국가가 인민 참여와 민주주의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 대 시장이라는 말이 옳다.

    민주주의도 일종의 통치 체제다. 그리고 통치자들을 선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대표 체제를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 결론은 좋은 정당 만들자는 것이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