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은 얼렁뚱땅 만드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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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02일 05: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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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국현 후보의 경제공약을 보고 감동을 받은 사람은 적지 않다. 경제학을 전공한 나조차도 그럴 듯하다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8% 성장의 공약을 보고 난 후, 잠시 짜릿했던 기분을 접고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신기루 공약을 보고 실망한 사람은 비단 경제학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한 민주노동당 정태인 본부장의 글은 의도된 비판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실망감을 좀 더 촘촘히 나열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오늘(11월 2일) 인터넷 언론에 실린 정책참모 윤여진 교수의 반론을 보고 과연 그 진정성을 떠나 문국현 솔루션이 이 정도까지 모래성이었나 하는 실망감이 가중되었다.

    이 글은 문 후보가 좀 더 정합성 있는 경제정책을 가지고 정책 경쟁에 나서기에 바라는 심정으로 쓴 글이다. 본격적인 반론은 정 본부장이 알아서 할 터이고 나는 아름다운 경쟁을 위해 훈수를 두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훈수 두는 심정으로

    무릇 경제정책이란 일자리 정책이다. 그 수를 늘리는 것과 아울러 종사자의 안정성을 부여해야 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일자리 정책은 흔히 성장 정책으로 나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북유럽의 유연안정성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경기부양으로 총량을 억지로 늘려 인플레를 초래하기보다는 직업의 이동성을 강화하는 대신 정부가 실업수당(월급의 80%내외 수준)을 지급하고 재훈련교육을 강화하여 그 결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나는 문 후보가 바로 이런 정책을 펼치는 줄 알았다. 평소에 중소기업의 역할을 강조하시는 분이고, 4조2교대의 정신으로 노동자에게 충분한 휴식시간과 교육시간을 부여하자고 주장하시는 분인지라 당연히 덴마크나 네덜란드와 같은 방식을 선호하시는 줄 알았다. 나만의 착각일까?

    윤 교수의 주장은 나의 기대를 좌절시키기에 충분한 글이었다. 그가 패러다임의 전환,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고성장을 주장하는 나라의 예로 든 것은 덴마크나 네덜란드가 아닌 아일랜드였다.

    물론 핀란드와 미국의 예도 들었다. 연이어 중국, 인도, 싱가폴도 등장한다. 어지러웠다. 이 모든 나라의 발전궤적을 모방하자는 것인가? 분명 정태인 본부장은 선진국의 예를 들라고 요구하였는데, 고도성장한 나라를 모두 예시한 후 "봐라, 이렇게 많은 나라들이 있지 않냐”고 반론하는 것은 현문우답이다.

    문국현의 거시경제모델은 없다?

    발전모델은 다양하지만 보통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노동의 유연성과 시장원리를 제1의 기조로 삼는 영미식 모델,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되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 협력을 이끄는 유럽(대륙) 모델, 빈약한 부존자원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걷어 인적자원에 투자함으로써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모색하는 북유럽(노르딕)모델, 그리고 일본과 같은 관치경제와 협조적 노사관계를 축으로 하는 아시아 모델.

    그중 사회복지와 생산성을 적극적인 동인으로 삼는 측면에서 대륙 모델과 노르딕 모델은 유사하면서도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데 윤 교수는 해외 대기업 외자유치로 고용을 이끄는 아일랜드(영미식 모델)와 평생학습과 과학기술투자(그리고 산학연 클러스터)로 성장을 도모하는 핀란드(노르딕 모델), 그리고 중국, 인도와 같은 발전도상국(아시아 모델)을 마구 섞어놓고 있어 과연 문국현의 성장모델이 어느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혹시 시간이 없어 준비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잠재성장을 넘는 실질성장은 거품성장

    다음으로 성장개념 문제. 추세성장이든, 현실성장이든, 실제성장이든 중요한 것은 잠재성장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성장이 물가상승분을 제외한 ‘실질’성장이라면 분면 ‘잠재’성장과는 다르다는 것을 정 본부장은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잠재성장이란 가용한 모든 자원(노동, 자본)을 투여했을 때 가능한 성장이란 것도 포함되어 있다(이 대목에서 인플레 없는 성장을 강조하기 위해 나이루/NAIRU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윤 교수가 이를 오독하고 있다).

    여기에 윤 교수가 꼬투리를 잡는 것은 생산적 정책논쟁에서 한참이나 어긋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잠재성장을 뛰어넘는 실질성장이 가능하냐’의 여부이다. 정 본부장은 그렇지 않다고 한 것이고, 여기에 대한 윤 교수의 반론은 ‘이렇게 가능하다’를 밝히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분기상승률이 잠재성장률을 넘었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명제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3분기가 수출의 호조로 6%되었다고 해서 4분기에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 본부장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연평균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윤 교수는 연평균으로 어떻게 8%가 되는 지를 밝히면 되는 일이다.

    만약 잠재성장률을 뛰어넘어 3%씩 추가로 그것도 5년간 지속한다면,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분명 그것은 거품성장이며 언젠간 터지고 말 것이다. 더군다나 임기 내에 잠재성장률을 8%로 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장밋빛 희망이 아니라 ‘어떻게(how)’이다

    나는 솔직히 문 후보로부터 ‘어떻게’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올려서 추가성장을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많았다. 다른 사람도 여기에 집중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4조2교대-평생학습의 메아리뿐. 구체적인 제도와 방법은 아직 들어본 바 없다.

    윤 교수는 “중소기업의 4분의 1정도를 5년 후 생산성이 두 배가 되도록 설정하고 2%의 추가성장”을 제시하였다. 그 다음은? 또한 4조2교대가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슬쩍 흘린 후 “중요한 것은 교대제가 아니라 과로체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답은 ‘8%’ 성장도 아니고 생산성 ‘두 배’ 성장도 아니다. 어떻게(how)가 빠졌다. 그것을 어떤 제도와 재정을 도입하여 ‘어떻게 실현할 수 있겠는가’이다. 그 답을 기다리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문 후보와 윤 교수에게 잠깐 힌트를 주자면, 그 답은 바로 성장(률)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고용(률)을 높이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다양한 모델 중에서 좋은 것들만 모아놓을 수는 없다. 어느 하나를 중심으로 놓고 다른 것들을 보조적으로 배치하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따라서 문 후보와 참모들은 그 자신이 어떤 체제와 모델을 끌어안을 것인가를 고민했어야 했다.

    앞서 얘기했지만 해고가 자유롭지만 3~4년의 실업수당과 재교육 훈련을 병행하는 중소기업 중심의 덴마크 모델, 해고가 다소 어렵지만 단시간 근로유형을 창출하여 다수의 (여성)고용을 확대하는 대기업(서비스업) 중심의 네덜란드 모델, 그리고 공학교육과 첨단기술을 육성하고 산학연 클러스터(cluster)를 중심으로 신시장을 개척하는 핀란드-스웨덴 모델 등. 문 후보가 여기에 대해 충분히 검토한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의 진보들이 동경하는 북유럽 나라들이 요즘 집중하는 것은, 외자유치와 해외자원개발로 인한 GDP고도성장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화시대의 고용 증대와 일자리 연대임을 상기하기 바란다. 하나 더. 이런 유형의 나라들은 세금부담이 높다는 것. 지금까지를 이해하였다면 왜 민주노동당이 부유세와 사회복지세를 통한 복지강국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주장하는지 그리고 사회연대를 그토록 목매어 외치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경제정책은 일관성과 정합성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문국현의 8% 성장은 달성 가능하지 않다. 생산성이란 그리 단기간에 높여나가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교육투자와 복지를 통한 생활안정이 뒷받침되고 그것이 하나의 사회관행으로 뿌리내려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윤 교수가 주장하는 경제정책은 신뢰할 수 없다. 정책은 그렇게 얼렁뚱땅 만드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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