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리포니아와 뉴올리언즈의 차이
        2007년 10월 29일 12:5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지역서 발생한 큰 불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수일째 계속되고 있는 이 산불로 샌디에고 카운티에서만 50만 명 이상이 여러 곳으로 나눠서 대피했고, 1천 5백 채가 넘는 가옥이 불에 타는 등 천문학적 수치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이 무섭고도 안타까운 재해 장면을 보면서 문득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온 도시가 물에 잠겼던 뉴올리언즈를 떠올리게 된다. 당시 뉴올리언즈 풋볼 경기장인 수퍼돔에 몰려든 이재민들은 온통 흑인을 중심으로 유색인종들이었다.

    전통적으로 흑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적 특성도 있었지만 그들은 백인들과 달리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갈 만한 교통수단이나 호텔에 머물 돈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번 캘리포니아 산불로 인한 이재민들의 피난처 중 하나였던 샌디에고 풋볼 경기장인 퀄컴 스타디엄의 색깔은 수퍼돔의 그것과는 달랐다. 캘리포니아가 미국에서도 가장 부유한 주인데다 불이 난 숲 주변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위치를 지니고 있는 백인들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불의의 재난으로 인해 느끼는 고통이야 피부색과 상관없는 것이겠지만 물에 잠긴 도심의 흑인들과 산불로 위협받는 도시 외곽 백인들 간의 대비가 도시 공간의 계급적, 인종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누구를 위한 녹색공간인가. 평등한 접근권이 중요하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특급 호텔처럼 부자가 아니면 아예 접근조차 어려운 공간과는 달리 도시 공원이나 숲 등은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 없는 평등한 공간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발자국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숲, 공원, 강변 등 도시에 존재하는 자연 공간들 역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연구들에서 집 주변의 공원 등 녹색 공간은 운동이나 레크리에이션과 같은 주민들의 신체 활동을 촉진시키는 직접적 요소로 평가된다.

    따라서 비만, 당뇨, 심장병 등이 유행병이라 불릴만큼 심각한 미국에서 사람들의 신체활동을 촉진시키는 공원과 숲 등은 공공 건강 증진에 필수적이어서 이를 확대하고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이 지역 정부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도시 주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녹지 공간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시의 공원 분포 상황을 분석한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시의 중서부 외곽지역에 주로 위치한 백인 거주 지역의 경우 인구 1천 명당 배분된 공원지역이 17.4에이커인 반면 시 동남부 지역에 위치한 최다 인구 규모의 라틴계는 1.6에이커, 흑인과 아시안계 거주지역은 각각 0.8에이커와 1.2에이커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녹색 공간의 인종적 불평등 현상은 소득 계층별 분석에도 마찬가지로 드러나는데 연평균 수입이 4만 달러 이상인 가구는 인구 1천 명당 21.2에이커의 공원을 향유하는 반면 빈곤선인 2만 달러 이하 가구의 경우 0.5에이커의 녹색 공간에 만족해야 한다.

    불평등한 녹지공간의 분배는 소외된 집단에게 건강 및 수명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04년 시카고대학 건강정책연구센터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저소득층 및 유색인종 집단의 경우 다른 집단에 비해 낮은 신체 운동 비율을 보이고 그 결과 비만에 걸리는 비율이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성인 백인의 경우 33%가 정기적으로 신체운동에 참여하는데 흑인과 라틴계의 경우 각각 23.7%와 22%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인종 간의 다른 문화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과 같은 녹지공간이 얼마나 존재하느냐 여부가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는 어떨까? 상대적으로 녹지가 풍부한 성북동, 평창동 지역이나 주민들의 운동 공간이 넓은 한강, 양재천 주변의 주택은 보통 서민들의 접근이 가능하지 않은 수준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녹지 보전 및 공원 확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환경운동 혹은 환정정책 당국의 활동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것 같다.

    현재 도시에 존재하는 녹지 공간의 계층적 분포에 대한 조사는 기본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늘려 갈 녹지 공간은 누구를 위해 어디에 우선적으로 위치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처럼 주민의 필요에 근거한 녹지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실제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공간 정책의 결정 및 설계와 건설, 그리고 관리가 진행되는 것이 필수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접근한다면 서울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는 여의도 공원, 양재천 숲, 그리고 청계천 등에 대해 좀 다른 평가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무 한그루 보기 힘든 회색 공간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변 학교 담장을 녹화하거나 조그만 공간이나마 녹지로 바꾸는 한뼘 공원 등의 가치가 거대한 여의도 공원이나 청계천에 비해 반드시 낮은 것일까?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