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경협, 지금 시비 걸어야 한다
        2007년 10월 26일 02:54 오후

    Print Friendly

    10월 초에 있었던 노무현, 김정일 두 국가 수반의 회담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평화 문제에서 이렇다 할 보장이 없고, 기본권인 교류왕래를 간과한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지만, 이번 회담의 성격이 다분히 ‘일상적’인데 비추어, 정치군사적 평화의 문제든 기본권 확보의 문제든 추후의 진전을 예비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대부분의 평가와 같이 이번 회담의 구체적 성과는 경제협력에서 있었다. 8개 항의 공동선언 대부분이 추상적 당위를 확인하거나 이전의 논의를 확정한 수준인데 비해 해주 개발 등의 경제협력을 다룬 제5항은 공동선언에서 차지하는 양에서든 그 구체성에서든 압도적이다.

    “해주는 개성권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풍부하고 … 개성권역의 20~44세 노동가능 인력은 14만 명 정도이나 해주권역은 24~28만 명에 이르고 있어 100~200만 평 규모의 산업단지 개발도 가능 … 해주공단은 수출 물류거점으로 개발하는 등 … 단계적으로 해외 수출, 남북한 내수 모두를 겨냥

    … 기업소득세율 및 면제기간, 개인소득세, 재산세, 거래세, 영업세, 지방세 등의 세율 우대, 무관세 혜택 … 기시행 중인 단천지역(마그네사이트, 연, 아연) 외에 철, 금, 흑연, 석회석 기타 고부가 광물자원 개발

    … 북한, 세계시장질서에 조속히 편입… 각종 법제도를 글로벌스탠더드 수준으로 재정비” – 대외경제연구원 & 동북아시대위원회, 「남북정상회담 경제분야 합의사항 이행전망과 과제」, 10. 15

    이러한 남한 측의 해석 또는 구상이 아무런 장애 없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북한의 경제 총책인 김영일 총리, 장성택 조선로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 등이 회담에 참여했고, 회담 중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군부와 조율에 나섰었다는 후문을 볼 때, 합의 사항의 이행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그래서 좋지 않다.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과 그 부속 사항들은 근본적으로 남한 자본에게 북한의 토지와 자원, 노동력, 조세 특혜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70년대 초의 마산 수출자유지역에서 최근의 각종 경제특구에 이르기까지 남한 자본주의의 경험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민족내부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한다는 공동선언 구절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남한 내부의 경쟁적 조건을 피하고, 무엇보다도 WTO 규정 아래에서는 불가능한 각종 특혜를 비가입국인 북한에서 누리는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평양 옥류관의 재벌 총수들.(사진=뉴시스)
     

    그래서인지, 평양에 갔다 온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회장, 최태원 SK회장,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 아마도 남포 조선협력단지에 투자하게 될 대우조선 회장, 아마도 지하자원 개발에 투자하게 될 포스코 회장 등은 남북 정상회담에 ‘후한 점수’를 줬다.

    물론 북한이 급하고, 남한 자본이 투자할 의사가 있다면, 남북 간의 경제협력이 자본주의적 외양을 띠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두 가지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첫째, 북한 인민의 권익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 북한 노동자 2만 명이 주 평균 54.9시간씩 일하며 월 42달러를 받는 개성공단의 근로조건과 노동권이 남한이나 국제노동기준에 비해 훨씬 열악하다는 사실은 꽤 알려져 있다.

    문제는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채용, 근무조건, 해고 등이 북한 노동법보다 나쁜 ‘개성 공업지구 로동규정’에 의거하고, 실제에 있어서는 남북 정부의 묵인 아래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첫 시험대인 개성공단에서도 이렇다면, 경제협력이 더욱 확대될 경우 남한 자본에 의한 북한 노동자의 권익 유린이 광범위하게 발생하지 않으리라 확언키 어렵다.

    둘째, 남한 인민의 권익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대로라면 북한에 투자되는 재원은 공적 자금과 민간 자본이 섞여서 만들어지게 된다. 그런데 공적 자금은 SOC 같은 곳에 투자되고, 민간 자본은 ‘수익이 보장되는 부분’에 제한적으로 투자될 예정이다.

    이는 남한 인민의 세금이 자본의 돈벌이를 위해 동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에야 자본과 함께 하는 것이 경협에 긍정적 효과를 내겠지만, 그 성과가 계속 소수에게만 돌아가게 되면 남북 인민들이 경협에 냉소적으로 변할른지도 모른다. 북한에 대한 투자는 ‘공적 조성→공적 투자→공적 회수→확대 재원의 북한 재투자’라는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10.4 선언의 일부는 남북 합작이라는 형식을 띤 북한 조차(租借)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게다가 요즘 청와대는 남북FTA 가능성까지 흘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오래지 않은 미래에 한반도에서의 긴장과 충돌은 남북 체제 사이가 아니라, 한반도 자본주의 경제공동체 내부에서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다. 현재의 긴장과 충돌, 미래의 또 다른 긴장, 어느 쪽이든 항구적 평화는 아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