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자주권론이 민주주의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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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25일 08: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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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엔 수익 최대화를 위해 소비자들을 차별하지만, 과거엔 국민을 동질적인 중산층 집단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귀족 트랙, 가난한 트랙 이런 식으로 나누지 않았다.

    대신에 일률적으로 제품의 소비자가를 올려 받았다. 비싼 소비자가는 출혈 수출을 위한 버팀목이 돼줬다. 그리고 군사독재가 마무리된 무렵엔 다수 노동자가 중산층을 위해 기획된 내수모델을 소비할 여력을 갖게 됐다.

    하지만 비싸고, 품질 나쁘고, 디자인 조악하고, 획일적인 국산 상품 소비를 강요당했던 한국 소비자들의 불만은 지금 하늘을 찌르고 있다. 소비자는 자신들의 선택권을 찾으려 한다. 자유화는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부자만 더 부자가 되고 다른 국민들이 다 가난해진다면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자유화 체제는 소비자들의 탐욕을 건드린다. 소비자 주권론으로 민주주의 주권자들을 소비자로 치환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주권자로서 응당 누려야 할 인간다운 대접, 복지와 평등의 권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에 시장에서 상품을 선택할 권한을 한아름 안겨준다. 그것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자신의 권리, 즉 자유가 확대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선택의 자유와 기본권 박탈

    소비자들은 자신의 자유가 커지고 있다는 환상 속에 자신들이 평등한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것을 그저 자신이 누린 선택권과 자유에 따른 책임 정도로만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박탈에 대한 불만을 선택권 확대로 풀려 하므로 자유로운 선택과 기본권 박탈이라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 내 자식이 일류고등학교, 일류대에 못 간 건, 나와 내 자식이 경쟁을 제대로 못해서야. 경쟁할 자유는 주어져 있었는 걸. 아니지, 아니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류대 간 애들은 다 자사고, 특목고 나온 애들이잖아. 그렇다면 왜 내 자식은 평준화 학교를 간 거지? 우리 동네에 특목고를 신설해 내 자식에게도 일류고를 선택할 선택권을 달라!”

    예를 들어 교육부문에선 이런 식의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면 국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일류고, 일류대를 선택할 권한이 주어져 있었다. 일류고 선택권을 아예 몰수한 것이 고교평준화고, 자유화 개혁으로 등장한 일류고는 모든 국민에게 개방되어 있다. 일류대는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전 국민에게 선택권을 제공해왔다.

    소비자는 일류 학교라는 제도 자체가 강자들을 위한 양극화 제도라는 것에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당장 자기 손에 쥐어지는 선택권을 통해 일류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환상을 품는다.

    그 선택권 확대를 명분으로 과거에는 금지됐었던 부자들만을 위한 제도들이 생겨나는데도 마치 마약에 찌는 사람처럼, 국민은 선택권이라는 환각에 취해 양극화를 자발적으로 추인한다. 개발독재 시기에 소비자 선택권이 철저히 무시당했던 것에 대한 반발로 말이다.

    또 경쟁논리로 자신의 가난과 박탈을 스스로 정당화한다. 어차피 모두에게 자유가 주어진 이상 자신이 못 살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은 자신 탓이라고 여기게 되는 거다. 그래서 소비자가 된 국민들은 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체제에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열성적으로 새 체제를 옹호한다.

    소비자들이 친 체제적 성향을 보이는 것과 90년대 이후 소비자 주권론이 대두한 것은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국가와 국민이 있던 자리에 주주(투자자)와 소비자만 남은 것이다. 즉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정치공간은 사라지고 당사자 간에 계약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만 남았다.

       
      ▲한미FTA가 소비자에게 이득을 줄 것이라는 환상을 가난한 소비자에게 심어주는 부자 신문들.
     

    ‘소비자가 왕’의 시대가 IMF를 불렀다

    그리고 참여정부는 투자자유화와 소비자 후생증진이 목표인 한미FTA를 통해 이 흐름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민은 소비자로, 보편주권은 소비자 주권으로 변질됐고, 국가는 직접 주주(투자자)가 되었다.

    정치는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인 이해가 관철되는 공간이지만 시장은 각자의 이기심과 사적 이익만 추구되는 공간이다. 모두가 이기적이 되면 결국 강자, 부자의 이기심만 충족될 뿐이다. 선택권 역시 강자, 부자들만 향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처럼 환상을 안겨주는 소비자 선택권 무한 확대에 지금 국민들은 환호를 보내고 있다. 그것 때문에 주권자로서의 권리가 박탈되고 있는 데도 말이다.

    한미FTA로 소비자를 위한다는 데 분노하는 국민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소비자를 위한 개혁을 십 수 년째 해온 결과 지금의 파탄이 찾아왔는데도 말이다. 이미 김영삼 정부 출범 당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는 ‘소비자가 왕’인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IMF 사태가 터졌다. 이 두 가지 흐름은 분명히 연관이 있다.

    소비자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지금의 사회분위기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자신이 왕인 줄 알고 있는, 혹은 왕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국민들의 소비자 의식부터 사라져야 한다. 소비자는 결코 왕이어선 안 된다. 소비자가 자유롭게 되면 결국 구매력 있는 사람만 자유를 향유하게 되어 민주공화국이 와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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