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중대회-만인보 시대정신에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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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24일 02: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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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우리 정치 국면에서 대선 후보들은 물론이고 식자들도 ‘경제’와 ‘성장’에 대해 다양한 담론을 펼치고 있다.

    극우세력이 중도개혁세력의 정치 실패에 새롭게 적응해서 내놓은 대선 후보가 있다. 그의 고속 성장론에 대해 중도개혁세력은 올바른 개혁 비전 대신에 ‘좋은 성장, 진짜 경제, 사람 중심’ 등의 애매한 담론으로 시민들을 매혹시켜려 한다. 그리고 이들은 민노당에 대해 후보 단일화를 하자고 한다.

    이에 대해 민노당 대선후보가 ‘서민이 행복한 성장’을 내세우며 이들과 ‘가치 연대’를 주장하는 것은 좌파 후보다운 전략이 되지 못한다고 본다.

    지금부터 대선이 끝날 때까지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얼마나 위기적 상황에 놓여있는가 하는 것을 대중이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FTA 문제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고 모든 경제와 성장 담론이 이 문제를 회피하거나 호도하지 못하도록 구체적인 대중 상대의 담론을 마련하는 것이 좌파 후보가 할 일이다.

    현재의 문제는 저성장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는 아무리 성장해도 고용이 증가하지 않고, 사회적 양극화가 자꾸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좌파들만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의 고위 관료도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저성장이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FTA 체제에 들어가 있는 멕시코의 상황은 우리 언론에 잘 보도되고 있지 않지만 매우 혼란스럽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강화한 전임 폭스 대통령은 미국에서 영문으로  『희망의 혁명』이란 초현실적인(?)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다.

       
      ▲ 노무현 대통령과 폭스 대통령.(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그는 2000년 PAN당(국민행동당)의 대선 후보로 그 동안 71년의 장기독재를 유지해온 PRI당(제도혁명당)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됨으로써 멕시코 역사상 중요한 민주화의 초석을 놓았고, 이에 많은 멕시코인들이 새로운 변화의 희망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집권 6년 동안 사회 양극화는 극심해지고 특히 마약단 등 집단 범죄 세력이 활개치게 되었다. 극좌 게릴라 세력도 가스관 폭파 등의 사보타지를 벌이게까지 되었다.

    그리고 작년 대선에서는 극도의 부정선거를 기획하여 중도 좌파 정당 대선후보의 집권을 막았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야심 많은 아내와 함께 가족 전체의 부정 축재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치적을 스스로 칭송하는 책을 내놓았으니 그 반응이 어떠하겠는가?

    현재 전임 대통령 부부의 부정부패 혐의로 하원에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언론에서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이에 미국에 있는 스페인어 텔레비전 방송기자가 인터뷰를 통해 이 스캔들에 대해 언급할 것을 요구하자, 폭스는 격분하여 기자에게 심한 말을 뱉어내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최근 멕시코 대표 항공사인 아에로멕시코(Aeromexico)사를 멕시코 최대 은행 바나멕스(Banamex)가 인수했는데 이 은행의 소유주는 미국의 씨티은행이다. 심상정 의원이 폭로한 바에 의하면 삼성은행 추진설이 나오고 있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르틴 코흐에 의하면, 미국의 민주당은 이미 협정에 서명한 페루, 파나마와의 FTA협정 비준에는 동의하지만 우리나라, 콜롬비아와의 FTA협정 의회 비준은 통과시키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민주당이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것은 미국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고용 불안과 실업 증가의 원인으로 자국의 통상정책을 비판하고 있고, 미국 제조업 상품의 한국 내 비관세 장벽 제거에 대한 보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다. 한편 콜롬비아에 대해서는 콜롬비아 노조 지도자들에 대한 인권 탄압 등 정치적인 이유도 들고 있다.

    한국의 좌파세력으로서는 유리한 상황에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좀 더 체계적인 전략으로 선거국면의 대중을 설득해야 하지 않겠는가?

       
      ▲ 박정희의 ‘논두렁 막걸리’ 사진은 뛰어난 전략이었다.
     

    극우세력은 대중의 사회심리를 파고드는 재능이 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보여준 70년대의 ‘논두렁 막걸리’ 사진은 뛰어난 전략이었다고 본다.

    좌파 또한 대중에 접근하는 정서적 전략으로써, 인간적 정을 느끼게 하고 동시에 우리 특유의 자신감을 자극해야 한다.

    비전이란 지금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로 가겠다는 방향 제시다. 따라서 과감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좌파 후보는 우파와 반대 방향에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과감한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역사와 정치 지형은 늘 변화한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구체적 국면과 맥락이 중요하다.

    단적으로 70년대까지의 세계정세와 80년대 이후 특히 21세기의 역사적 국면은 다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좌파 정치세력마저 현실적 맥락 즉, 투기적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지배라는 현실을 관념으로만 이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민중’은 ‘민족’으로 휘발된다

    ‘백만 민중대회’는 현 국면에 맞지 않는 전략이다. 우선 ‘민중’이란 용어부터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과거 군사독재 정권시절 같이 독재자, 민중 이런 식으로 대치 전선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사회 양극화가 심해도 그 원인은 복합적 요인들이 개입하고 있어 민중이란 구호가 예전처럼 명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리고 문화적 상징으로 내세운 고은 시인의 이미지도 그 분이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현 국면의 헤게모니 싸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거대담론의 추상화 구조 속에서 ‘민중’은 쉽게 ‘민족’으로 휘발되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학적으로 자유주의 우파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진다. 시인의 텍스트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 사회적 맥락과 접합되어 그렇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엘리트가 단상 위에 앉아 민중을 동원하는 방식도 현재 신자유주의와 싸우는 대부분 나라의 ‘거리의 민주주의’ 전략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현실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치, 경제 체제의 구체적인 희생자들이 아래로부터 움직이는 에너지에 함께 하는 자세가 더 효율적인 전략이다.

    예를 들어, 최근까지 고통을 호소했던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확산시키기 위해 인권, 생태, 노동단체, 학생, 지식인 등의 다양한 사회단체들이 전면에 나서 시위와 토론 등 광범한 연대망을 구축하는 움직임에 정치 엘리트와 전국 차원의 노조들도 구성원의 일부 자격으로 참여하는 방식이 더 좋다고 본다.

    자유주의적 보수 지식인과 정치인은 추상적 담론을 내세우며 현실적 맥락과의 연결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집권세력과 이를 옹호하는 지식인들이 70년대의 반군사독재투쟁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들어 ‘지금, 여기’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대응에 분명히 개혁적이지 않은 정책을 보여주었고 또한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진보 개혁’을 내세워 권력을 유지하려는 것은 기득권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최근 <프레시안>에 실린 어느 경제전문가의 글을 읽고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민족경제’론과 ‘종속이론’ 등을 비판할 때도 과거의 국면에서 바라보고 평가해야지 이미 역사가 흘러서 이론이 가졌던 문제의식의 결과가 나온 뒤의 평가를 들이밀며 문제를 단순화, 이분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예를 들어, ‘종속이론’은 남미의 고유한 역사적 체험을 자세히 이해한 뒤에 평가해야 객관적이란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저성장과 유목민적 사고

    이미 우리는 ‘고속 성장’에 성공하여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선진화된 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떤 성장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좌파 정치세력에 대해, 그렇다면 너희들은 성장을 하지 말자는 것이냐고 마치 ‘반성장주의자’처럼 몰고 가는 것은 사실 왜곡이다.

    니꼴라스 앙굴로 산체스가  「가난에 대해 어떤 성장을 할 것인가」라는 글에서 언급한 것을 보면, ‘대안적 발전 모델’을 통한 ‘저성장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문화적으로 우리의 전통에서 출발하여 ‘서구적 소비주의 모델’을 무조건 추종하지 않고, 성장의 방법도 무조건 외국에서 수입하지 말자는 철학에 바탕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남미의 경우 ‘내발적 발전’이란 비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반성장’이 아니라 ‘저성장’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무조건 우리 전통이 최고라는 폐쇄적 세계관의 이야기도 아니라는 점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직관적 반성 위에서 현재의 중요한 문제들, 사회적 양극화, 가난, 실업, 비정규직, 생태 악화 등에 대한 대응 전략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문제점 비판과 대안적 정책 제시가 얼마든지 가능한데도 마치 시계의 바늘을 뒤로 돌린듯한 이미지만 고집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현재 국면은 좌파 정치인들로 하여금 순발력 있고 구체적인 맥락을 파고드는 들뢰즈식 ‘유목민적 사고’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들뢰즈는, 전통적 철학은 ‘배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면 ‘유목민적 사고’는 열린 태도로 ‘포용’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현재의 일상적 삶과 앞으로의 그것도 변할 것 같지 않은데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자꾸 들으면 대중은 싫증만 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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