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불을 지피고 다니는 사람
    2007년 10월 24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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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는데 민주주의나 그깟 도덕적 하자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민주화 20년, IMF 10년, 또 언젠가 닥칠지 모르는 한미 FTA 풍파에 이르기까지 ‘불안’과 ‘절망’에 잠식당한 서민들은 이렇게 묻는다.

이에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는데, 못살겠다고 외치며 오히려 반격을 시작해야 할 때 아닌가? 또 그저 외치는 걸로 끝낼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불안에 멍든 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화순 지역 농촌을 방문해 농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는 권영길 후보.(사진=진보정치)
 

민중대회 조직위원장이 되다

대선이 60여일이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여의도를 떠나 ‘세상을 변화시켜 온 국민의 힘’을 조직하기 위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갖은 비아냥거림을 받으며 ‘만인보’에 나선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권영길.

‘대통령 후보’라는 계급장을 떼버리고, 서민들의 위력을 보여주고자 민중대회 조직위원장을 ‘자처’하며 길 위에 나선 권영길 후보는 ‘세상을 변화시킬 바람’을 일으킬 자신이 있다고 장담했다.

권 후보가 직접 제안해 선본의 핵심 참모들조차도 만류했던 만인보를 시작한지 6일째로 접어든 지난 23일. 권영길 후보가 ‘먼저’ 변했다.

연일 언론에서는 ‘저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권 후보를 향해 ‘위기’ 가 닥쳐왔다고, ‘경고음’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남을 순회하고 있는 권 후보의 얼굴엔 ‘화색’이 만연했다.

서울에서 "어 ~ 어" 하다가 머뭇거리며 끝나버리는 느린 권 후보가 아니었다. 권 후보는 빠르고 힘이 넘쳤다. 내딛는 발걸음, 건네는 말 한 마디, 장미 가지를 치는 익숙하고 능숙한 낫질, 타이어를 만지는 날렵한 손놀림 곳곳에는 서울에서 보기 힘든 ‘에너지’가 묻어났다.

지난 6일간 계속 동행한 당의 한 관계자는 "지역에 내려오고 난 후부터는 후보의 행동 하나하나에 생기가 돌아 후보를 감싸고 있던 ‘아우라’ 가 완전히 변했다"면서 “걸음이 어찌나 빠르고 힘찬지 따라다니기도 벅찰 지경"이라고 말했다. 

"지역순례는 승부수" 

그 비결이 뭘까. 권 후보는 자신만만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상상할 수 없는 바람이 아래로부터 불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했다. 권 후보는 "지역 순례의 길이 남들에게는 매우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고달프지만 ‘승부수’라고 여기고 단행했다"면서 "가는 현장마다 민주노동당을 향한 밑바닥으로부터의 지지 바람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어 매일 감동 받고 있다”며 힘주어 말했다.

아침 7시 30분 전남의 화순 우시장 방문부터 시작해 장미꽃 하우스 농가, 곡성의 금호타이어 현장 생산 라인 방문, 화순실업고 일일교사를 거쳐 밤 10시 마을 주민 간담회까지 숨 돌릴 틈 없이 짜인 권 후보의 일정은 따라다니기에도 벅찼다.

어느 곳을 가든 권 후보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분명했다. 서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한미 FTA와 비정규직 악법을 철폐해야 한다는 것. 두 가지 문제 해결 없이는 진보의 가치가 없으며 민주노동당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라고도 역설했다.

그러면서 최근 대선 정국에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치’와 관련, 권 후보는 "민주노동당처럼 ‘가치’에 대한 기준과 개념을 정확하게 설정해야 한다"면서 "제가 현장에서 확인한 한미 FTA 반대, 비정규직 악법철폐 등에 대한 서민들의 ‘가치’를 중심으로 논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화순 우시장에서도, 장미꽃 재배 하우스 농가 에서도, 화순 마을 농가 마을 간담회에서도 한미 FTA 비준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고, 그러기 위해 당사자인 농민이 먼저 ‘주체’가 돼 11월 백만 민중대회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아직 후보를 확정짓지 않은 채 대선을 관망하고 있는 전남 농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나락과 소값이 똥값이 돼버린 절망적인 농심을 전하며 민주노동당에 호감을 표하는 농민이 있는가 하면, 한미 FTA의 ‘대세’를 어떻게 막겠느냐며 반대를 넘어 ‘대안’을 요구하는 주문과, 권 후보의 언행을 단순한 정치적 쇼로 바라보는 냉담한 시선들이 동시에 교차했다.

“데모 대장 역할 톡톡히 할것”

우시장에 소를 팔러 나온 임홍순(76)씨는 "권 후보가 만인보를 시작할 때부터 계속 TV를 통해 소식을 접해왔다. 우리나라 농민, 노동자, 빈민, 서민들이 민주노동당에 투표를 한다면 민주노동당이 집권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안타까워 하면서도, 한미 FTA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고, 또 전 세계가 다하는 것인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라며 ‘대안’에 관심을 보였다.

화순 곡성 마을 간담회에서 만난 이정신(70)씨는 "농촌에는 사람도 없고 희망도 없다"며 "국가가 농사를 책임지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이를 요구하기 위해 11월 백만민중대회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권 후보가 방문한 전남의 농가들에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간혹 다문화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필리핀 출신 등의 새댁들이 드문드문 눈에 띌 뿐이었다. 농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무분별한 수입개방, 수해 피해, ‘똥값’이 된 쌀값, 농가 부채 등으로 인해 역사 이레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며 절망을 토로하면서 동시에 대통령 후보가 마을에 방문해 그들의 절규에 직접 귀 기울여 준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감추지 않았다. 

권 후보는 농민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 들으며 그들의 넉넉한 환영 인사에 ‘데모 대장’을 자처하며, 백만 민중대회 성사를 통해 데모 대장 역할을 톡톡히 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어 전남 해남 출신으로 이번 전남 지역 만인보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진보연대 정광훈 상임대표는 "요즘 1년에 174번 농민들이 시위를 하는데, 이놈들이 꼼짝을 안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바로 한미 FTA가 뒤에서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세상이 변해야하지만 무시당하는 우리 농민부터 먼저 주체적으로 변해야한다. 11월 11일 손 없는 날을 잡아놨으니 서울에서 난장을 벌여보자"고 호소했다.

"민주노총은 나의 혼”

이어진 곡성 금호타이어 현장 순회에서도 권 후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육중한 기계들 사이를 날렵하게 다니며 전 민주노총 위원장다운 위용(?)을 과시했다.

   
 ▲ 금호타이어 노조를 방문 중인 권 후보.(사진=김은성 기자)
 

권 후보는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민주노총의 노동 현장은 권영길의 피와 땀이 서린 혼"이라며 "자동자 바퀴 뿐 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굴려가게 만드는 바퀴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이같은 권 후보에 반해 현장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했다. 이를 지켜본 노조 임원진들은 다소 난감해 하며 “오늘 분위기가 왜 이러나?"면서 볼멘소리를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강모씨는(37) "아직은 대선을 관망하는 분위기이고, 또 민주노동당의 경우 이명박 후보의 BBK와 같은 대선 이슈가 없어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다"면서 "외부적으로는 문국현 후보와 갈라치기를 못해 권 후보가 겹쳐 보이고, 내부적으로는 대선을 진두 지휘하는 당 차원의 중심 이슈나 기획이 보이지 않아 권 후보가 뜨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권 후보는 화순실업고 3학년 일일 교사를 하며 서울대 폐지 및 대학 평준화와 무상 교육을 통해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설파해 학생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화순실업고 1일 교사가 된 권후보.(사진=김은성 기자)
 

앞으로 권 후보는 오는 26일 전북에 방문해 농가 순례를 마치고 다음 주께 경남을 중심으로 노동 현장이 몰려있는 전통적인 진보벨트를 순회할 예정이다.

한편, 최근 논의가 되고 있는 경향신문 주최의 권-문 대담과  관련, 권 후보와 문 후보 측은 잠정적으로 28일 즈음에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논의가 진행 중이었으나, 권 후보의 백만민중대회 진행으로 대담이 한 주 정도 연기될 예정이다.

권 – 문 대담 11월 초 진행 될 듯.

이와 관련 권 후보는 "문국현 후보와 대담 날짜가 확고히 정해지지 않은 속에서 저의 만인보 행보가 시작돼 이제 6일째가 되고 있는데 이 속에서 조금 더 날짜를 늦췄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향후 대담 날짜는 충분히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용진 대변인은 "권 후보가 만인보를 단순히 보수 후보들이 보여주는 식의 그것과 달리 정말 진심으로 진정성을 갖고 진행하고 있다"면서 "불가피하게 그러한 후보의 의지로 대담이 예상보다 연기됐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권 후보는 사실상 백만 민중대회 조직에 사활을 걸고 있다. 권 후보는 12척 배로 대군과 맞섰던 이순신 장군을 민주노동당의 전력 상태와 비교하며, 초라한 발걸음이지만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자신했다.

권 후보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언론의 의도적 배제가 심각하다는 객관적 사실을 감안했을때, 지지율 돌파책을 마련하기가 어렵다는 걸 안다”면서 “하지만, 지금 현장을 돌며 느끼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바람이 11월 11일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이며, 11월 대회가 끝나면 그 힘으로 또 다른 모습으로 당이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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