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新사표방지심리, 민노당 위기 경고등
        2007년 10월 23일 05: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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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정동영 후보가 선출된 이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주요 후보들이 확정된 이후 선거전은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접어들어 있다. 하지만 141명의 국회의원이 소속되어 있는 거대 정당의 대선 전망은 여전히 ‘흐림’이다.

    이미 차기 대통령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명박 후보를 추격할 수 있는 정치적 계기를 만들기는커녕, 반전의 계기로 기대했던 후보선출과정도 조직동원과 불법, 탈법 논란으로 국민경선의 파행을 막았다는 데 안도해야 할 지경이다.

    15일과 16일에 실시된 여론조사(문화일보-디오피니언, 조선일보-갤럽) 결과를 보면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이 지난달보다 6~9% 정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 고공행진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동영 후보는 범여권의 ‘단일화’라는 또 다른 대선 과제를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단일화’ 의제는 2002년 대선의 학습효과이자, 선거구도상 양자대결로 가야 반한나라당 세력 결집이라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바람’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권 단일화? 글쎄…

    그러나 당장 단일화보다는 자신의 파이를 키우는 데 집중할 문국현 후보와 검증토론회를 단일화의 전제로 하고 있는 민주당의 상황을 보면 단일화가 ‘당연한 수순’ 정도로 진행될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후보단일화가, 엇비슷한 지지율 경쟁, 이인제 후보가 요구하고 있는 후보검증을 포함한 TV토론, 그리고 현실적으로 여론조사 이외에 결정방식이 없다는 측면에서 범여권의 혼란만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제 민주노동당으로 눈을 돌려보자. 민주노동당은 지난 14일 임시당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선거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킴으로써 대선 60일 대장정에 합류했다. 지난 9월 15일 당 대선후보를 선출한 직후 한 달 동안 범여권의 공백 상태를 범한나라당 대 범민주노동당의 대결구도로 만들겠다던 초반 전략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번 임시당대회가 대선승리 결의대회라는 목적에 맞게 신명나게 진행되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언론 환경이 진보정당에 불리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면 언론 탓은 하지 말자. 그럴 듯한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공급자의 몫이지 수요자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 제공자로서 당과 선본의 역할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진보정당의 후보로 명확한 메시지를 제시하지도 못했다. ‘코리아연방공화국’, ‘비정규직’, ‘한미FTA 반대’ 등 의제의 나열에만 그쳤을 뿐 보수정치와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해 진보정치세력다운 예리한 칼날을 들이대지 못했던 것이다.

    경선 직후 권선본의 제1의 과제는 당내 통합과 이를 정치적 상징과 추진력으로 드러내는 선본 구성 문제에 있었다. 당 경선이 높은 당원참여율을 유인해낼 수 있었던 것은 당 혁신과 본선 경쟁력이라는 일반적인 정당 경선의 대립구도가 첨예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파가 주도하는 동원 선거라는 측면이 존재하긴 했지만, 이는 그 동안 당내 선거에서 일반적으로 보여졌던 ‘상수’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영역에서 평가 또는 극복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어쨌든 경선 중반부터 권영길 후보가 내걸었던 ‘다이내믹 권영길’이라는 구호도 이러한 경선 분위기를 상당히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데, 경선 이후 후보의 역동성은 드러나지 않았고, 경선의 대립각을 통합시키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봉합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권 선본, 봉합 급급하고 메시지 없어

    물론 경선에서 탈락한 두 후보가 공동선대위장에 추대되기는 했지만, 문제는 유력자들 간의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당의 얼굴이자 선수인 후보의 행보와 정치력이라는 점이다. 당내 통합은 경선후보 간 자리 배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당원들의 다양한 요구를 정치적인 공통 분모로 만들어내고, 다이내믹의 진앙지로 구심력을 형성하는 데 있는 것이다.

    당의 대선 기상도와 관련해 또 다른 장벽은 이른바 ‘문국현 효과’다. 현재까지 문국현에 대한 유권자들의 이미지(정체성)가 ‘범여권 다크호스’ 외에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일자리 문제’에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문국현 후보는 이를 이명박과 대비시키면서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문국현 후보의 지지층은 주로 30~40대(특히 남성), 화이트칼라, 여권 및 민주노동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미지가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권영길 후보(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과 부정부패 해소 이미지와 중첩되어 있는 것이다. 문국현 후보의 경쟁력은 범여권의 대안이라는 이미지와 유력한 대선 주자인 이명박 후보와의 경계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적했듯이 권영길 후보는 후보 선출 전후 뚜렷한 메시지 중심의 행보를 보여 오지 못했다. 핵심메시지 창출 및 유포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당의 선거 전략은 핵심 지지층의 투표율을 최대로 높이고, 잠재적 지지층(당 호감층 중 타당 지지층 혹은 무당층)을 최적으로 견인하는 것이다.

    이는 당의 기본적인 득표 전략이기도 한데, 문국현 후보와의 관계에서 볼 때 당 외연 확대의 근거지가 될 잠재 지지층이 현재 문국현 지지도 상승의 진원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위기의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냉정하게 말해서 현재 문국현 후보의 지지도는 상승세고, 권영길 후보의 지지도는 정점에 있다. 그리고 문국현 후보의 상승세는 우선 콘텐츠보다는 ‘무기력’으로 고정화된 범여권에 대한 상대적인 이미지를 중심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지만, 결국 범여권과의 관계 속에서 일정한 지지율을 형성한다면, 콘텐츠와 정책대안도 결정적인 효과를 드러낼 것이다.

    더 나간다면 이러한 경향에서 ‘신사표’ 경향의 출현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 즉 예전의 사표 방지 심리가 “될 만한 사람을 찍어주자”였다면,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사표 방지 심리는 “더 나은 대안을 찍어주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통일경제’식 발상은 범여권 의제

    이러한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권영길 후보의 행보가 ‘코리아연방공화국’과 같은 한반도 담론에서 양극화와 비정규직, 교육과 같은 생활 담론으로 신속하게 전환되어야 한다. 통일의제와 경제의제를 통합한다는 이른바 ‘통일경제’식의 발상은 ‘민주파’, 혹은 ‘범여권’의 전통적인 담론으로 제한된 시간에 우리 의제로 부각시키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강조했지만 당의 개혁과 혁신 역시 진보정당의 대표주자로서 권영길 후보가 앞장서서 안고 가야할 문제다. 대선과 총선을 하나의 정치일정으로 사고한다면, 그리고 당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가 진보정치의 근원임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진보정당다운 정당정치의 비전을 내부혁신으로부터 끌어오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당내 개혁의 제1순위는 비례대표선출을 진보적 상징적으로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출방식의 문제보다는 비례대표에 대한 당의 인식전환부터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례대표는 당의 정체성을 가장 쉽고 현실적으로 대중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제도다.

    당내 정치인들의 제도정치 진출을 위한 유력한 공간이 아니라, 현실정치의 다양한 장벽으로 인해 억압된 대중들의 요구를 자신의 입으로 발언하게 하는 창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부문의 대표가 아니라, 생태의 시각으로, 비정규직의 시각으로, 장애인의 시각으로, 농민의 시각으로 기득권의 시각과 맞짱을 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보정당이 취해야 할 비례대표 전술인 것이다.

    이해대변의 정당모델을 넘어서는 대안정당은 바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진정성이 하나의 제도로 표출될 때 가능하다.

    창당 이래 가장 무기력한 선거가 될 수 있다는 당 내외의 우려를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현실정치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갖는 무게는 원칙 이상의 것이다. ‘말 많은 정당을 말 없이 이끄는 통합의 리더십’은 더 이상 창당 7년을 맞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미덕이 아니다.

    범여권의 대선주자가 ‘정글 자본주의’를 질타하고, 보수정당의 대표주자가 개혁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시대에 진보정당 대표주자의 포지션은 어디에 있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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