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쪽 봉화 남풍 타고 세상 태우는 불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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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23일 10: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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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장흥 5일장에서 콩나물을 만났다. 매끈하게 잘 빠진 마트 콩나물이 아니라, 집에서 키운 것이 틀림없는 얇고 검정이 묻은 콩나물을 만났다.

    오랜만에 본 콩나물이 반가워, 장사하는 노인과 마주 앉아 콩나물을 만지작거리자, 수행하는 동지가 가격을 묻고 1천 원어치를 샀다.

       
      ▲사진=진보정치
     

    한 광주리에 덤으로 한줌 더 주니 봉지가 가득 찼다. 들고 다니기가 뭣해서 함께 다니던 전남의 당원 동지에게 주었는데 솔직히 아깝다. 시원하게 국 끓이고 무쳐 먹으면 정말 맛난 먹거린데… 만인보 일정 중 시골 장터에 가는 것은 가장 즐거운 일이다.

    바다와 산이 모두 가까운 장흥은 먹거리 천지다. 매생이가 유명하고, 표고버섯이 유명하다. 질 좋은 한우고기가 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장흥은 매주 토요장터를 열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인구가 4만4천명 정도인 장흥에서 이만한 장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사실 기적같은 일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고소한 냄새에 끌려 찾은 방앗간의 참기름은 아예 ‘중국산’이라고 써 있다.

    한 병에 7천원, 국산 깨로 참기름을 짜면 한 병에 1만5천원 정도에 팔아야 이문이 맞는다고 한다. 국산은 비싸서 팔리지도 않고 만들지도 안는다고 한다. 곡물가게에 진열된 깨는 몽땅 다 중국산이다.

    깨는 바람과 비에 약해 키우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풍작이 들어도 중국산에 경쟁이 안 되고, 흉작이 들면 수입물량이 더 많이 들어오게 된다. 깨는 장흥 농민들이 더 이상 생산하기를 포기한 작물 중 하나다.

    노인이 된 농민들은 자기 먹을 것 조금, 도시에 자식들에게 보낼 것 조금 말고는 더 이상 깨를 심지 않는다. 먹거리의 고장 장흥의 장터에서도 국산 깨는 이미 사라졌다. 몇 년이 지나면 더 이상 이 땅에서 깨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장터에서 팔리고 있는 이 작물들이 하나씩 사라질 운명일지도 모른다.

       
      ▲사진=진보정치
     

    장터를 떠나기 전 유명한 장흥 한우 판매점을 찾았다.

    “광우병 소 막아낼 정당이 어디입니까?”
    “당연히 민주노동당이죠.”

    진열대에 선 아주머니와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 장흥 한우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깨도, 한우도, 장흥 장터의 운명도 풍전등화다. 남도의 먹거리 모두가 위기이며, 이 나라의 위기다. 한미 FTA, 신자유주의는 남도 끝 장흥의 장거리까지 들어와 목줄을 움켜쥐고 있다.

    장흥군청 앞에 나락을 쌓았다. 이른바 야적 투쟁의 현장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야적투쟁은 경찰과 농민이 가장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현장이었다. 귀하게 키운 나락을 길바닥에 쌓아 올리는 농민들은 독이 올라있고, 경찰이 그것을 막으려고 하면 말 그대로 전쟁이 벌어졌다.

    이제 공권력은 농민들의 야적투쟁을 물리력으로 막지 않는다. 저항이 워낙 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매년 거듭되는 투쟁이 관례화 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절망이 익숙해지고, 투쟁은 일상이 됐다.

       
      ▲사진=진보정치
     

    올해 장흥의 농민들은 “갈 곳 없는 나락을 군청 앞에 쌓는다”고 말했다. 비 피해와 일조량 부족, 병충해로 올해 벼 농사는 흉작이다. 농민들은 30% 가량 작황이 줄었다고 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 나락이 많다보니, 팔리지 않는 나락은 갈 곳이 없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5% 피해가 있다고 발표하며, 현실감 없는 대책만 내놓고 있다.

    만나는 농민에게, 벼 농사 농가의 피해를 알리고, 정부의 현실적 대책을 촉구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개방에 목줄이 죄인 농촌은 흉작으로 더욱 어려워졌다. 정부의 탁상 행정으로 농심은 더욱 흉흉하다.

    길 안내를 맡아준 류덕렬 장흥위원장에게 11월 100만 민중대회 준비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버스 30대 정도를 예약해두고 있습니다. 2002년 30만 대회 때, 버스 38대가 올라갔던 게 최고였는데, 이번엔 30대입니다.”

    “버스가 그때보다 줄었는데….”
    “예, 버스를 그 이상 확보를 못했습니다. 차량확보가 어렵네요. 장흥이 먼저 나서서 열심히 조직하고 있습니다.”

    남쪽에서 봉화가 먼저 설 것이다. 남풍을 타고, 세상을 태우는 불길로 커지게 만드는 것은 권영길의 임무다.

    2007년 10월 22일
    민주노동당 권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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