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의상 차마 못하는 말도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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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22일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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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계속되는 바쁜 일정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무거운 짐을 지워 드리고서 그 짐을 가벼이 해드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여 항상 죄송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는 드리고 싶은 말씀만 태산 같지만, 또 마침 지난 주 토요일 산청에서 뵈었지만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고충이 오죽하랴!”하는 짐작으로 가슴이 미어질 따름이었습니다.

    산청 선영과 남명기념관에서 만나 뵌 후로 후보님의 고충과 고뇌를 덜어드리지 못하는 아픔을 이기기 위해 지난 주 내내 맨발로 산을 오르내렸습니다. 자갈을 밟는 발바닥에 전해오는 아픔으로, 간혹 방심하여 돌부리나 나무뿌리를 찼을 때 느끼는 고통으로 저 자신을 채찍질하며 과연 이 순간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되묻다가 서툰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권영길 후보 낮은 지지율 저하 경제문제 때문 아니다

    존경하는 권영길 후보님,

       
      ▲ 사진=뉴시스
     

    왜 많은 국민들이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경선의 결과에 만족하고, 권영길 후보가 선출되신 것이 잘 된 일이라고 보았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권영길 후보야말로 국민의 말을 잘(!) 듣는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 하면 왠지 국민들의 말을 잘 안 들을 것 같은데 권영길 만큼은 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영길은 민주주의 나라의 왕인 국민을 감히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겸손하고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다 받아들일 것 같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논리로 설득하기보다는 대중과 마음을 주고받는 지도자이며, 가슴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민주적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왕이 논리로 압도당하거나 설득당하기를 원하겠습니까?

    과연 권영길 후보는 경선 전이나 후나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온갖 이야기를 귀를 열고 들으십니다. 그런데 왜 지지율은 오르지 않고 있습니까? 국민의 관심이 온통 ‘먹고 사는 문제’에 가 있는데 이명박이나 문국현 같이 경제 문제에 집중하지 않아서 입니까? 여론을 주도하는 자영업자들의 마음을 중요하게 본다면 그런 생각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해석에 저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이명박의 주장과 조금 다르다고는 하지만 문국현 후보가 말하는 것 역시 한국 자본주의가 어차피 가야 할 길일 겁니다. 그렇게 가면 물론 한국 자본주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며 발전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사회 양극화, 높은 실업률이라는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를 비켜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문국현 후보의 주장과 민주노동당이 주장해온 현대적 사회정책들은 상호보완적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한국 자본주의는 새로운 발전 단계로 나아가야 하고 그와 아울러 현대적 복지국가는 건설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권영길 후보가 지금까지 주장해온 겁니다. 복지국가 건설에 대한 권영길의 비전, 열망과 확신에 대해 국민은 잘 알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차마 말 못하는 백성들

    존경하는 권영길 후보님,

    그런데 왜 권영길의 지지율은 오르지 않습니까? 왜 추석이 지난 후에 더 떨어지고 있습니까? 저는 맨발로 산을 걷는 고행과 뼈아픈 자성 속에 뜻밖의 원인을 발견하였습니다. 차마 말씀드리기 송구합니다만 지금 권영길은 국민들이 보기에 권영길답지 않습니다. 권영길은 여전히 많은 말을 듣고 있지만 국민들이 느끼기에 무언가 결정적인 부족함이 있는 겁니다.

    그건 국민들이 권영길 후보님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말까지 들으시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 국민들과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내 제 3당의 대통령 후보에게 예의상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이 있습니다. 결코 어떤 위세 때문이 아니라 예의 때문에 말입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사람들은 차마 벌거벗었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민주노동당 당원 중에는 여전히 세종대왕처럼 국민을 ‘어리석은 백성’으로 보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민주주의 시대의 왕이신 국민들은 더 이상 어리석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세계사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로서 국민은 사회주의 운동에는 공산주의 운동과 사회민주주의 운동, 크게 두 종류가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이라는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그의 종교가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를 묻습니다. 둘을 같은 종교로 보지 않는 것, 그게 상식이지요. 그런데 민주노동당 당원들 중에는 정작 개신교인지 가톨릭인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장로교니 감리교니 하는 엉뚱한 대답들을 하여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궁금증을 더 부풀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실제 생활은 가톨릭으로 하면서 정신적으로는 개신교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입니다. 선거운동을 할 때나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대화할 때는 가톨릭이었다가 당내로 돌아와서 당원들과 토론할 때는 개신교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술만 취하면 종교 개혁 당시를 상기하면서 과격한 개신교도가 됩니다.

    다시 궁금해진 민주노동당의 정체성

    존경하는 권영길 후보님,

    다행히 권영길 후보님의 얼굴, 표정과 언어, 행동은 국민들에게 “설마 저 사람이 개신교일까, 저 사람은 가톨릭이 틀림없어!”라고 추측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원내진출 후의 민주노동당의 행태는 아무래도 민주노동당은 개신교인 것 같은 의심을 사게 하였습니다. 이제 개신교 신앙인에게 죄송한 비유를 걷어버리면 ‘공산주의 운동’ 같이 보이는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제 다시 궁금해졌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정체가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인민을 300만 명이나 굶겨죽이고도 이른바 ‘선군정치’를 계속하고 있는 조선로동당의 2중대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예의상 권영길 후보님께 직설적으로 물어볼 수가 없는 겁니다. 사람에게 너무나 치명적인 질문은 “너 혹시…” 하고선 더 하기 힘든 겁니다.

    세계적으로도 그러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의 실패가 그저 민주노동당 강령에서 서술하고 있듯이 ‘사회민주주의의 한계’와 동렬에 놓을 수 있는 ‘국가사회주의의 오류’ 정도가 아닙니다. 반면에 사회주의 운동의 종가집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민주주의 정치철학을 고수하면서 달성한 위대한 성과로 좌파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으로 사물을 보듯이 마찬가지로 굶주리는 북한 인민의 눈으로 사물을 보아야 합니다. 생존의 가느다란 희망을 남한의 지원에 걸고 있는 인민들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집권 여당이야 당국 간의 관계를 유지하고 대화 상대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알고서도 말하지 못하는 고충이 있겠지만 우리는 정부 여당이 아닙니다.

    우리는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흡사 집권당처럼 행동하는 잘못된 습관에 젖어 살아왔습니다. 그런 잘못된 습관은 국민들의 “쟤들 아무래도 북한 정권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야?” 하는 의구심을 키워왔습니다. 이제는 그런 습관도 고칩시다. 바로 그런 나쁜 습관을 버리고 우리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을 깨드릴 때 ‘다이내믹 권’이 되는 것 아닙니까?

    권영길, 당신마저 그러면 미래는 없습니다

    존경하는 권영길 후보님,

    권영길 후보님은 199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처음으로 프랑스 생활 8년간의 경험을 이야기보따리로 삼아 훌륭한 사회민주주의 선동가로서 등장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요?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말하니 커다란 대중적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건 추상적 이론이 아니었던 겁니다. 바로 그래서 권영길 후보님은 민주노동당의 얼굴이 되신 겁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구성은 너무 복잡했고, 아니 80년대 운동권 출신 관념좌파들이 너무 많았고 권영길 후보님은 당원들에게 친절한 선생님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외쳤는지는 모르지만 스스로는 민주주의에 적응이 안 되고 민주주의 정치철학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여 민주주의 나라의 왕, 국민들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오히려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1,000명이 공직 선거 후보를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도 400명의 지역위원회 위원장들과 사무국장들이 지역 주민을 만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국민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 결과 권영길 후보님의 애타는 기다림과 초인적 인내심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창당 8년 동안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권영길 후보님마저 차마 국민이 하지 못하는 말을 듣지 아니 하시고 묻지 못하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변해주시지 아니하시면 민주노동당의 앞날은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아마 조만간 5% 이하 정당으로 굳어질 것입니다. 왕이 매우 민망해하면서 어렵사리 묻는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는 신하를 어떤 왕이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 가지 고충이 있으시겠지만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원내 진출 전에는 좋은 쪽으로만 보아주시던 국민들이 이제는 채찍을 들고 엄격하게 묻고 있습니다. 분명한 답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지율 하락의 의미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 답변은 권영길이 해야 합니다. 그것이 권영길의 역사적 책임입니다.

    도끼로 당의 족쇄를 내리쳐 깨트려라

    존경하는 권영길 후보님, 아니 지난 10년 동안 제 인생의 스승이셨던 권영길 대표님!

    한국 좌파의 먼 장래를 위해서라도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확립해주십시오. 민주노동당은 지금 무거운 족쇄를 차고서 달리기를 하고 있는 육상 선수와 같습니다. 이제 도끼로 족쇄를 내리쳐 깨트리고 그 무거운 족쇄로부터 민주노동당을 해방시켜 주십시오. 온갖 오해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와는 분명한 선을 그었던 여운형, 조봉암 선생님처럼 해주십시오.

    국민의 권영길로 돌아가십시오. 국민 대중과 마음을 주고받는 민주적 지도자로 돌아가셔서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들으시고 차마 묻지 못하는 질문에 답하십시오. 그런 후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십시오. 사람은 원래 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신뢰하는 사람이 하는가 아니면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가에 따라 전혀 달리 듣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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