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근자노조는 답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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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20일 05: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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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 이후 민주노동당 당원게시판과 <레디앙> 등에서 상근자노조를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태도에 대한 많은 비판들이 제기됐다. (‘노조를 규탄하는 민주노동당 사람들’ 고미숙, ‘노동당에 노조는 필요한가’ 이용선 등)

    이에 대한 반비판을 하고자 하면서 몇 가지를 전제하고 싶다. 먼저 나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진보정당의 성장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상근자 동지들을 지지한다. 이 동지들의 처우 개선에도 적극 공감한다. 생활이 안정돼야 투쟁 건설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나는 상근자노조 문제가 중요한 정치 쟁점이기보다는 부차적 조직 문제라고 본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 문제에 매달려 계속 갑론을박하고 싶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나는 상근자노조가 이미 출범하고 단협까지 체결한 현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상근자노조 건설을 지지하지 않는다. 상근자들의 처우개선은 노조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 더 바람직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상근자노조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상근자 처우개선 반대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심지어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하거나 결혼-출산을 포기하라는거냐’는 식의 조야한 반론은 좀 황당하다). 이런 전제와 관점을 바탕으로 제기된 몇 가지 쟁점들을 논박하고자 한다.

    상근자노조를 지지하는 동지들은 반대하는 입장을 터무니없다고 매도한다. “노조를 규탄하는 … 희한한 사회주의자”, “엽기적인 수준”, 심지어 “전교조를 탄압했던 노태우”, “2007년 판의 스탈린주의자”까지 나왔다. 그러나 과연 노동자 정당에서 상근자노조 건설이 “두말할 필요도 없는…상식”인가? 사회주의자는 마땅히 그것을 지지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임금체불 등에 항의하는 민주노동당 노조 조합원들이 피켓팅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민주노동당 노조)
     

    노동조합은 노동자 투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더구나 혁명적 상황에서는 노조보다 노동자평의회(소비에트)가 진정한 노동자 해방의 수단일 것이다. 더구나 혁명가 레닌이 강조했듯이 “모든 진리는 구체적”이며 중요한 것은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다.

    ‘사회주의자는 구체적 상황과 조건에 관계없이 무조건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투쟁을 지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다. 예컨대 사회주의자들은 2002년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를 타도하려는 지배자들과 동맹한 베네수엘라 노총(CTV)의 파업을 지지할 수 없었다.

    구체적 분석

    사회주의자가 일반으로 노조 건설과 투쟁을 지지하는 이유는, 노조로 단결한 노동자들은 기업주들의 착취, 억압에 맞선 투쟁을 통해 근로조건을 개선하며 계급의식도 발전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근자노조 지지자들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자본주의적 기업처럼 이윤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가? 상근자들은 당 지도부에게 착취, 억압받고 있는가? 당 지도부와 상근자의 이해관계가 적대적이며 서로 계급투쟁을 해야 할 대상인가?

    전교조나 공무원노조를 말하며 빠져나가진 말기 바란다. 오늘날 교육/공공기관, 공기업들이 이윤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명백하다. 교육/공무원 노동자들이 국가와 교육 관료들에게 착취, 억압받고 있는 것도, 교육/공무원 노동자와 국가와 교육 관료들의 이해관계가 적대적인 것도, 이들간에 계급투쟁이 정당한 것도 명백하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비록 혁명정당은 아니지만 노동자 계급에 기반한 진보정당으로서 이윤 논리에 따라 운영되기는커녕 이윤 논리에 도전하고 있다. 당 지도부가 상근자를 착취 억압하고 있지도 않으며, 상근자와 당 지도부의 이해관계도 적대적이지 않다.

    상근 활동가가 임노동자라는 논리도 틀렸다. 예컨대 <참세상>은 ‘민주노동당노조 출범을 환영한다’는 논평에서 “존재나 신분에 관계없이 노동자성을 자각한 모든 주체들은 ‘노동자’”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맑스주의적 계급 분석이 아니다.

    맑스주의는 주관적 의식이 아닌 객관적, 사회적 위치로부터 계급을 규정한다. ‘중산층 의식’을 갖고 있어도, 그가 생산수단에서 소외돼 있고, 생산 과정을 통제하지 못하며, 고용주에 맞선 적대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면 그는 노동자인 것이다. 이런 맑스주의적 분석으로 볼 때 상근활동가가 착취받는 노동자라는 결론은 나올 수 없다.

    계급 분석을 회피한채 “고용 관계”라는 형식만 내세워 상근자를 “비정규직” “특수고용직”과 비유하며 심지어 “원청 사용자성”까지 들먹이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당 게시판) 동지의 논리는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다.

    민주주의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서 상근자노조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이용선 동지는 “당내 의사결정 구조에 있어서의 민주적 요소”를 위해 상근자노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도 설득력이 없다.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토론이며, 당원들의 뜻이 잘 반영될 수 있는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일 것이다. 상근자노조가 이것을 더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상근자노조는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당 대표에게 일부 예산 결정권을 넘기라는 안건을 올렸다. 예산은 사업계획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것은 대의원들이 당원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민주적 토론을 통해 결정할 문제이다. 이것을 당 대표에게 넘기는 것이 “민주적 요소”의 강화라고 보기는 힘들다.

    고미숙 동지는 상근자노조는 “인사와 재정 문제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상근자노조 집행부와 당 지도부가 협상을 통해 일부 인사, 재정 문제들을 결정하자는 것인데, 여기에 당 대의원이나 당원들이 개입할 틈은 없어 보인다.

    나아가 이용선 동지는 “트로츠키(도)…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관료주의) 견제하기 위한 ‘민주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노동자 국가에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먼저 이용선 동지는 시점을 착각한 듯 하다. 러시아에서 노동조합 인정 문제 논쟁이 벌어진 것은 아직 스탈린주의 시절이 아니던 1920년대 초였다.

    또 당시 레닌과 트로츠키는 관료적으로 왜곡된 노동자 국가에서 노동조합의 인정 문제에 대해 논쟁했다. 반면 레닌과 트로츠키 누구도 노동자 정당 내에 노동조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가 없다.

    과제

    나는 지난해 연말에 상근자노조에 대해 글을 쓰며 이렇게 주장했었다.
    “상근자노조를 추진하는 동지들이 정치 활동가로서 정체성을 부차적으로 보기 때문에…당의 나아갈 방향이나 당이 취할 전략, 전술에 대한 논의보다 상근자들의 근무조건과 복리후생을 둘러싼 논의가 주된 관심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치 성향이냐와 무관하게 이런 조건들을 적절히 수용하는 지도부와 상근자노조간의 협력적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이것은 사회의 진보와 변혁을 위한 전략 전술을 치열하게 논쟁하며 끊임없이 자기 혁신해 나가는 진지한 활동가들의 정당이라는 상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상근자 노조 건설은 대안이 아니다’)

    아쉽게도 이런 예측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듯 하다. 상근자노조 동지들은 지난 여름 이랜드 투쟁이 한창일 때 당 재정 악화에 따른 상근비 미지급을 규탄하며 “박성수 같은 악덕기업주(와)…당의 지도부가 도대체 다를 것이 무엇인가”라고 했다. 퇴직금 미지급을 이유로 당 대표를 노동부에 고발하는 일도 있었다. 상근자노조 건설을 주도했던 백현석 씨는 통합신당 보좌관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문성현 대표와 김선동 사무총장은 상근자노조와 미리 단협을 체결하고 나중에 대의원들에게 승인해 줄 것을 요구했다. 특히 김선동 사무총장은 당직 선거 후보 시절에는 상근자노조를 반대한다고 주장하더니 말이다.

    과연 이랜드 투쟁 때 노동자와 함께 경찰력 투입에 맞서던 당 지도부가 박성수와 다를 바 없었던 것일까, 당의 재정 악화를 당 지도부와 상근자들은 동지적 협력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 것인가, 당 상근자들은 정치 활동가로서 봉급생활자로서 정체성을 우선해야 하나, 처우개선은 상근자가 지도부를 상대로 투쟁, 고발하면서 해결할 문제인가.

    당 지도부와 상근자, 당원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맞서, 대선 승리를 위해 함께 힘을 합쳐 투쟁해야 할 동지들이다.

    그런 단결 투쟁 속에서 이랜드 투쟁을 어떻게 승리로 이끌 것인지, 한미 FTA와 파병 재연장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한국노총에 사과한 것이 왜 잘못인지, 권영길 후보의 도약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등의 중요한 정치적 문제들을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날카롭게 상호비판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과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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