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한 10대, 떠나고 싶은 나라"
        2007년 10월 17일 12: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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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에 위치한 이우학교에는 ‘200클럽’이라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독서모임이 있다. 책 200권은 읽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이 모임은 지난 15일 『88만 원 세대』를 주제로 특별세미나를 열었다. 이 세미나를 준비한 한 학부모는 “‘88만 원 세대’가 아이들의 문제이므로, 당연히 부모들의 문제이고, 우리 모두의 문제라 생각해 이 책에 대해 토론했다.”고 전한다. 이 세미나에는 학생, 학부모, 교사 등 40여 명이 참가했다.

    아래 글은 이우 고등학교 2학년 신한슬 양이 위 세미나에 낸 것이다. <레디앙>에 기고하려 쓴 글이 아니지만, ‘88만 원 세대’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것 같아, 필자 본인과 학부모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다. 신한슬 학생이 단 원제목은 ‘어떤 20대가 될 것인가’이고, 원래 글을 거의 고치지 않고 싣는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게재된다.<편집자 주>

    어떤 20대가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는 10대는 많아도, ‘고민’해 본 적이 있는 10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시하여. 나는 한 번도 어떤 20대가 될 것인지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어떤 20대가 될 것인가?

    10대는 흔히 ‘대학생인 20대’가 되고자 한다. 이왕이면 돈 많은 대학생. 대학생이 돈이 많으려면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맘씨 좋고 돈도 많은 부모님이 있거나, 아르바이트, 즉 비정규직에 몸을 담거나. 토익, 토플 혹은 여타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점도 잘 따서 ‘그 다음 단계’인 좋은 취직을 할 수 있는 대학생. 그게 대한민국 10대의 생존법, 2007년판 최신 매뉴얼이다.

    이 매뉴얼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최초의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바꾸는 편이 좋겠다. 뭘 해 먹고 사는 20대가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그 매뉴얼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뻔한 코스를 제시한다. 학창시절의 높은 성적 → 좋은 네임밸류의 대학 → 대기업 혹은 공기업. 그런데 그 매뉴얼을 착실히 수행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워서 대부분의 10대를 거의 미치게 만든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위의 매뉴얼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학창시절의 높은 성적’이 필요하다. 등급제가 생긴 이후인 2007년판 매뉴얼은 ‘전 과목 1등급’을 만점조건으로 제시한다. 아주 가혹한 조건이다.

    등급제 성적체제에서 ‘승리’하려면 100점 만점에 96점으로는 안 된다. 상황에 따라 98점도 2등급으로 밀려날 수 있다. 무수한 10대들이 머리 터지도록 사교육과 각종 인강(인터넷 강의 – 편집자 주)에 매달려서 고득점을 받고도, 100점이 아닌 이상 끝없는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심지어 등급제 하에서는 100점을 받고도 2등급이 나올 수 있다. 인원이 적은 우리 학교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만점자들의 억울함에는 그야말로 답이 없는 노릇이다. 다분히 전략적으로, 불안의 해소를 위해 각종 사교육, 인강(인터넷 강의-편집자), 스터디그룹, ‘심지어’ 교과서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오직 그놈의 ‘내신과 대수능’을 위해 학창시절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는 가엾은 인질들. 그들이 오늘의 10대다. 나다.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작년 11월 16일 저녁 대학로, ‘입시 KIN 페스티벌, 내 친구를 돌려줘’ (사진=뉴시스)
     

    이렇게 하면 잘 살 수 있나요?

    ‘대학생인 20대’의 장밋빛 꿈을 위해 책상 앞에 붙박아놓은 엉덩이가 저려올 무렵 10대들이 불안한 얼굴로 질문한다. 이렇게만 하면, 잘 살 수 있나요?

    교육의 기회는 확장되었으나 계층 간의 이동은 오히려 예전보다 어려워 졌다는 사실은 코흘리개인 나조차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10대인 내가 묻는다. 죽어라 공부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인생의 귀한 시간들을 모조리 투자해서, 나의 성적표를 1등급으로 채우면, ‘잘 살 수 있나요?’

    우리의 어른들은 과연 뭐라고 대답해 줄 것인가? 10대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정말로 성적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고, 학교 공부 열심히 하면 삶이 술술 풀릴 거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10대는 찾기 힘들 것이다. 미디어와 걱정스러운 몇몇 어른들의 말씀은 이미 10대에게 답을 주었다.

    대학에 가면 또 대학의 학점을, 토플 토익 점수를(이미 10대들이 준비하고 있는, 그리고 어른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기도 하는!), 또 다른 외국어 능력을, 혹은 외국 대학의 학위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10대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심지어 그렇게 해도 ‘잘 살 수 없다’는 현실을 알고 있는 10대는 얼마나 될까? 우리가 어떤 20대가 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 감각이 없다는 것은, 현재의 20대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무지하다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20대의 현실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기엔 10대의 현실이 너무나 암울하다. 20대가 된다는 것은 지긋지긋한 두발제한, 복장제한, 수능을 향해 강요된 미래에서, 12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바친 악몽 같은 인질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10대에게 20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해방’일 뿐이다. 끔찍한 감금의 현실 속에서 다가올 해방의 흥분에 도취된 인질들에게 ‘해방 후의 현실’을 직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잔혹하기조자 하다.

    20대가 된다는 것은 ‘해방’ 그리고 잔혹극

    그러나 10대에게 20대의 현실은 가린 채 “그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대학가서 다 하면 돼”라고 맹목적인 ‘20대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더더욱 잔혹한 일이다. 실제로 아주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잔혹극이지만.

    『88만원 세대』가 분석하는 나의 현실은 이렇다. 치열한 세대 내 경쟁을 10대 때부터 뚫고 나가서 뛰어 든 사회는 이미 승자독식게임이 지배하고 있다.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으로 시작해서는 살아남기가 힘들다. 여기에 기득권을 지키려는 ‘현재의 승자’인 이전 세대와의 세대 간 갈등까지 더해진다.

    그 와중에 ‘입시에서 해방된다는’ 신나는 흥분과 기대감을 가지고 20대가 된 10대가, ‘현실’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고작해야 개미귀신에게 조금 더 늦게 잡아먹힐 토익, 토플 점수가 ‘최상의 준비’인 상태로) 20대가 된 10대가 허둥지둥 선택할 선택지가 몇 개나 되겠는가.

    자발적 실업자(다른 말로 백수) 혹은 아르바이트를 위시한 비정규직이 전부일 것이다. 아, 맞다. 고시준비도 빼먹을 수 없다. 하지만 경쟁률을 생각했을 때 고시준비는 슬프게도 수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자발적 실업자가 되는 또 다른 선택에 불과하다.

    저자는 해결책이 없어서, 이 불안한 경제구조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간단한 예로, 저자는 골프장을 말한다. ‘건설 개발’의 일환으로서의 골프장 건설은 건설 경기를 살림으로써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골프장을 짓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골프장을 생태적으로 바꾸는 ‘생태 개발’을 한다면?

    어차피 같은 건설 사업이라 경제적 효과는 유사하게 나오는데, 독일의 경우 신규 골프장보다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되었다고 한다. 제초제의 영향 속에 하루 종일 방치되는 캐디들이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보건 여건을 확보하는 동시에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는 정책이다.

    이 외에도 사교육 종사자들의 업종 전환을 유도하는 등의 방식으로 ‘인질 경제 체제’를 해소하는 것,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대신 정부가 노동자에 대한 재교육과 창업기금 보조에 지금보다 10배 정도의 돈을 들여 경제 전체의 혁신율을 경쟁의 방식으로 높이는 것(그 기금은 사교육만 경감시켜도 충분히 나올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등 많은 대책들을 내놓는다. 아주 세밀한 경제학적 디자인이라 내가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듣는 정책들도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의 경제학자가 제시할 수 있는 정책만 해도 이렇게 다양한데 정작 선거 때 나오는 정책들 속에 진정 20대를 위한 정책은 없다. 오히려 ‘건설 자본 비율의 증가’ 같은, 오히려 승자독식게임을 강화하고 20대를 절망하게 하는 정책들이 끊임없이 제시된다. 20대는 이런 정치마케팅이 호소하고자 하는 ‘승자들’에 비해 정치적 발언권이 크지 않다.

    울고 싶으면 울자, 고개를 떨구지 말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일단 이 슬프고 절망적인 현실을 충분히 인지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겠다. 문제를 인식했다면, 먼저 우리는 냉소를 경계해야 한다. 저자 우석훈 교수가 말하듯이. 사실 『88만원 세대』는 희망의 경제학이라기엔 엄청 절망적인 책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심중에 무지하게 자주 떠오르는 도피 심리를 느낄 수 있었다. 아. 빨리 이 나라를 떠야겠다. 이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너무 깊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울부짖고 싶다면 울부짖어야지 고개를 떨구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

    『88만원 세대』가 결론적으로 ‘다음 세대를 준비해 놓지 않은 윗 세대들의 책임’을 언급했다고 해서 “그래 이게 다 꼰대들 탓이야!”라고 분노하는 것도 그닥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도 다 사정이 있다. 지금의 10대, 20대 못지 않은 나름의 불안이 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 주기만 강요하는 것으로는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많은 ‘꼰대’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말을 들어야만 우리의 말을 그들에게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우리의 ‘앞으로 먹고 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혼자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현실적 사회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 문제를 어떻게 혼자서 해결하겠는가. 그냥 더 절망하고 냉소로 넘어가는 지름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꿈이 있는 행복한 인질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친구를 끌어들여야 한다. 『88만원 세대』를 읽게 하고, 답답한 심정을 쏟아놓고, 우리가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양한 얘기들을 해 보고,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 어른들도 끌어들여야 한다. 경험이 많고 경제사의 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는 어른들이라면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안할 수도 있다. 우석훈 교수가 제시한 것 말고도. 인질로 오랜 기간을 잡혀있던 우리가 모르는, 희망적인 사례들 같은 것을.

    우석훈 교수가 현재의 20대와 10대에게 제안하는 가장 소극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다양한 독서’였다는 것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정신의 사치품으로서의 책이 아닌, 생존을 위한 독서가 이제 우리에겐 정말로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스승과 동료들과 함께.

    나에게는 꿈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지금의 북한 땅, 메솟(태국 국경지역 – 편집자)의 버마 난민촌 혹은 버마에 각각 한 개 이상 도서관을 세우는 것이다. 가장 꿈이 필요한 곳에 꿈꿀 수 있도록 도서관을 짓는 것. 내 평생의 꿈이다. 나는 인질인 와중에도 나만의 꿈이 있는 행복한 인질이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경제학, 다른 말로 ‘꿈은 됐으니까 뭘 해서 먹고 살 것인가?’의 문제는, 꿈이 있는 인질이든 없는 인질이든 쉽지 않은 문제이다. 비정규직 50% 이상인 사회에서 1%(대기업, 공기업 취직) 안에 들기 위해 개미지옥을 질주할 것인가? 아니면 멍하니 서 있다가 비정규직이 될 것인가? 그 어느 쪽도 현실적으로 나의 꿈과 양립하기 힘든 선택이다.

    나는 냉소적이지 않다. 하지만 절박하다. 절박함으로 몸이 근질거린다. 책을 맨 처음 통독했을 때 100명을 꼬셔서 이 책을 읽고 이야기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무턱대고 결심했던 것은 그 근질거림 때문이었다. 나 혼자 머리 터지게 고민한다고 하룻밤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20대가 될 것인가? 뭘 해 먹고 사는 20대가 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부조리하고 답답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고민하자고, 함께 고민하자고 외치고 싶다. 아주 시끄럽게.

    아직도 많은 10대들이, 그리고 20대들이 바로 자신의 문제이고 자신의 절망이며 자기 자신의 희망인 ‘88만원 세대’ 속의 민감하고 거북하고 온 몸이 근질거리는 이야기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 계속해서 개미지옥에서 달리고 있을 뿐 그것이 개미지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한 명이라도 더, 이 ‘생산적인 절망’에 끌어들이고 싶다. 희망고문 보다 백 배 나은, 희망을 가능하게 하는 절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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