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치를 당 맞나? 누구의 권영길인가?
        2007년 10월 15일 03: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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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노동당의 선대위 출범식 겸 대선승리대회는 300명에서 시작하여 800명으로 끝났다. 참석자 숫자가 대선 성패를 가늠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지난 달 같은 장소에서 치러진 후보선출대회 만큼의 열기도 없었고, 권영길이 대선 후보로 처음 추대된 1997년 9월 같은 감흥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 사진=진보정치
     

    선대위 출범식이나 대선승리대회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위안 삼을 수도 있지만, 언론과 유권자들은 그 위세를 보고 판단한다. 지금의 민주노동당은 대선승리대회도 성공시키지 못할 만큼 뭔가 이상하다. 대선을 치를 만한 조직으로 봐주기 어렵다. 

    우선 당원 절반의 지지를 얻었던 노회찬과 심상정에게 묻고 싶다. 그들로서야 억울한 일이겠지만, 한 지역위 간부는 “노회찬, 심상정 쪽에서 별로 안 왔어요”라고 토로했다. 아마도 노, 심 둘 중 하나를 지지했을 그가 보기에 그러하다면, 작위적 불참은 없었다 할지라도 적극적 참가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만으로도 혐의를 벗기 어렵다. 지난 경선이든, 지금의 본선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보이코트를 하든지 해야지, 어중간한 관망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두 번째 책임은 주대환 같은 조력자들의 몫이다. 그들은 권영길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여러모로 설파했고, 결국 권영길이 됐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어디 있나? 자칭 ‘어~ 어~ 권영길’이 계속 ‘어~ 어~’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표는 같이 모았지만, 자주파가 더 큰 공신이니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그토록 경멸하던 무책임 정치 아닌가, 작금의 불개입은?

    승리대회에도 오지 않는 권영길 지지자들

    마지막으로 권영길 지지자들에게 묻고 싶다. 권영길은 19,109표를 얻었다. 그런데 권영길을 지지했던 당원들은 소중한 휴일 서울 한 구석의 행사장을 찾는 수고로움은 주저없이 사양했다. 그리고, 그 19,109명을 모았던 자주파가 참석 독려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면, 국민승리21에서 민주노동당에 이르는 10년의 역사 중 가장 초라한 승리대회로 남사스럽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첫 수장이었고, 전쟁 후 첫 진보정당 국회의원인 권영길이 겨우 경선 통과용이었던가?

    단상에 죽 늘어선 선대위원장들과 본부장들, 수십 명 위원들의 면면도 식상하다. 민주노동당의 고위 당직자에 한 통속으로 놀던 큰 조직 몇 개 끼워 넣는 것으로 선거가 잘 되기는 어렵다. 선거는 차입이다. 유명세든, 이미지든, 조직이든, 머리든 빌려올 수 있는대로 빌려와 치르고, 선거가 잘 되면 자본으로 전환시키고, 잘못되면 상환 포기하는 차입이다.

    굳이 ‘진보대연합’까지 거론치 않더라도, 학계나 시민단체를 포섭했던 민주노동당의 역대 선거에 비해 이번 선대위는 지나치게 그 밥에 그 나물이다.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은 이용식 사무총장은 행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민주노총 일부 간부가 두 집 살림하고 있는 것도 알고, 선대위 구성 과정이 매끄럽지 않은 것도 잘 알지만, 불참까지 한 것은 금도를 벗어난 것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대회 진행도 무성의한 것이 역력히 엿보였다. 학생 문화패는 대여섯 개의 문화 꼭지 중 서너 개에 이름을 바꿔가며 겹치기 출연했다. 대회의 시작과 끝도 그들이 장식했다. ‘시민들, 권영길을 말하다’라는 동영상에 나와 “서민적이다, 할 말은 한다, 잘 생겼다”고 호감을 표한 ‘시민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말끔히 차려입은 대학생이거나 20대로 보였다.

    대학생 아닌 직업군이나 연령대는 아예 인터뷰도 하지 않은 듯했다. 고생한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민주노동당 대선승리대회’는 ‘학생에 의한 학생 행사’였다. 민주노동당의 실무집행 능력은 다 어디로 갔는가?

    학생 행사? 학생당?

    ‘선거는 판짜기’라는 정치브로커들의 말버릇은 절반 이상 진실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에게 있어 객관적 지형이 선거 결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허경영과 마주 앉았던 1997년과 이인제가 중도 탈락한 2002년의 득표 차이가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여권이 지리멸렬한 금년 대선이 민주노동당에게 다시는 안 올지도 모르는 천재일우의 호기였지만, 민주노동당 후보들도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중심에 놓고 경선 시기를 가을로 늦췄다. 그 사이, 이리저리 재고만 있던 문국현이 제3후보 자리를 선점했다.

    이제 와 그런 사실을 복기해 무슨 소용 있겠냐만, 전략 없음에 따른 실기(失機)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 것이 일요일 대회였다. 권영길은,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경선 이후 최대 행사였던 ‘대선승리대회’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였는가? 국민들은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권영길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까?

    일요일 대회의 메시지는 혼란스러웠다. 아마도 공식 기획안은 민주노동당의 관습대로 ‘모든 것을 말한다’였을 것 같다. 권영길 후보의 연설문은 비정규직 문제에서 시작하여, 한미FTA를 규탄하고, 남북정상회담의 성과가 ‘우리의 것’임을 자임하고, 민주노동당으로의 후보단일화를 제안했다.

    그런데 행사 실무팀은 그와 달리 움직였다. “남과 북 하나 되어”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서민행복 대통령’이라는 단상 구호 위로 ‘코리아연방공화국’ 걸개를 띄워 올리고, 대회 말미도 ‘코리아연방공화국 권영길’ 피켓으로 장식했다. 아무도 달지 않았지만, 당직자들에게는 ‘코리아연방공화국’ 어깨띠가 배포됐다.

       
      ▲ 사진=진보정치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일어나라 코리아’

    권영길 후보의 연설에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이 사라진 것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코리아연방공화국’이 자주파 눈치 보기라는 진단은, 경선 이후에도 그 공약이 상당 기간 계속된 점을 볼 때 별 설득력이 없다.

    권영길 후보가, 민주노동당 간부 중 가장 반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언제나 그를 괴롭힌 ‘대중정치’ 컴플렉스 때문으로 풀이해볼 수 있는데, 최근 그가 ‘한총련 전사’처럼 행세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뭔가 대중적인 걸 찾아야 한다는 ‘대중정치’의 강박이 시대의 흐름, 이번 대선의 화두로 대북 문제를 읽도록 한 것이다.

    그런 대북 문제는 권영길과 민주노동당 지지 계층 대부분에서 한참 뒤로 밀리는 현안이다. 이명박과 겹치는 민주노동당 지지층의 관심사인 민생 경제 문제에서는 민주노동당만의 차별화가 용이하고,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그런 차별화가 이미 증명되고 있다.

    그런데 여권과 겹치는 민주노동당 지지층의 관심사인 통일 문제에서는 차별화가 전혀 진행돼 있지 않을 뿐더러, 이 계층은 역대선거에서 언제나 ‘전략적 투표 이탈’을 보여 왔다. ‘민주노총당’인 민주노동당이, 대북 드라이브로 재기를 모색하는 여권과 그 문제를 두고 경쟁하는 것은 기껏해야 조악한 유사 상품으로 비춰지기 십상이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은 구도 전략의 오판이다. 1997년, ‘일어나라 코리아’는 여러 간부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권영길 후보의 묵언 속에 채택 집행되었다. 민주노총의 한 간부는 “들토끼를 잡으려는 것”이라는 친절한 후속 해설을 곁들였고, 이런 흐름은 ‘과도 확대 전략의 오류’로 공식 평가되었다. 1997년만도 못한 대선승리대회를 치르는 민주노동당의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일어나라 코리아’의 07년 판이다.

    권영길 후보는 “아무 것도 없이 맨 손으로 돌밭을 일군 10년”을 이야기했다. 묻는다. 지금의 민주노동당이 그 때 그 사람들인가? 또는 그 때 그 사람들의 가슴에 다시 불을 지피고, 일으켜 세울 수 있는가? 그리고 돌밭을 일군 것은 맨 손이 아니라, 권영길 후보의 말마따나 물러서지 않는 의지였고, 빛나는 머리였다.

    다시 권영길을 앞세운 사람들, 과연 하려는 의지가 있기나 한가? 1백만을 모으기 전에 생각하라. 권영길의 입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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