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여러 번 울게 만든 책 한 권
        2007년 10월 26일 10: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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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군사법원 국정감사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에게 책을 한권 선물했다. 제목은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저자는 피우진 중령.

    그는 27년간 특전사 중대장, 헬기조종사 등을 거친 여성 장교로 작년 9월 사실상 강제 퇴역처분을 받았다. 유방암 판정을 받고 양쪽 유방을 제거한 그는 정기체력검진에서도 정상 판정을 받은 후 3년간이나 정상적인 군복무를 해왔으나 ‘신체의 일부가 없다’는 이유로 낡은 군인사법 시행규칙에 의해 전역하였다.

    이 책은 계급 정년을 3년 앞둔 피중령이 남은 3년의 군 생활을 마치게 해달라며 싸우던 과정에서 출간되었다. 국방부 국감준비를 위해 어제밤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차례나 눈시울이 뜨거워져 천정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 지난 2~3년 동안 읽은 책 중에서 이보다 더 감동적인 책은 없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27년의 청춘을 군에 바친 한 장교가 처절하게 일구어간 참된 군인의 길에 대한 보고서이다. 잉크로 써내려간 글이 아니라 피와 땀과 눈물로 전철된 몸부림의 기록이다. 국감 질의 중에 이 책을 소개하며 국방장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피 중령은 나와 동갑인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그의 30년과 나의 30년을 비교해 보았다.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거치며 이 사회를 위해 무언가 기여해왔다는 나도 피 중령이 걸어온 길을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또한 폐쇄적이고 가부장적인 군대문화 속에서 성차별과 성적 억압에 맞선 한 여성 장교의 수십 년에 걸친 투쟁 기록이다. 올해 육군사관학교 수석입학생인 박미화 생도는 수석합격 소감을 말하던 중 이 책을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라면서 앞으로 군대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데 한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피중령의 절규가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퇴역 처분을 당한 피중령은 거기서 무릎꿇지 않았다. 전역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국방부는 지난 8월 뒤늦게 피중령을 전역시킨 법적 근거였던 군인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였다. 물론 새 규칙은 피중령에게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다행히 지난 10월 5일 서울 행정법원은 피중령을 전역시킨 시행규칙은 문제 있으며 정상 근무가 가능한 만큼 피중령을 복직시키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이제 국방부의 결단만 남았다. 내일은(26일) 국방부가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만일 국방부가 행정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다면 소송은 길어질 수 밖에 없다. 대법원에서 행정법원과 마찬가지 판결이 난다해도 계급 정년이 불과 1년 10개월밖에 남지 않은 피중령에게 군에 복귀할 시간은 사실상 박탈되는 것이다.

       
     
     

    국방장관에게 국방부가 항소를 포기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하루밖에 시한이 남지 않았는데 검토해보겠다는 답변뿐이다.

    시행 규칙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서 이미 시행 규칙을 개정까지 한 국방부가 무엇을 망설이는가?

    위암수술을 받고 병세가 호전되었으나 피중령과 마찬가지로 강제전역처분 당한 한 장교가 지난 5월 강제전역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이미 받은 바 있다.

    즉 피중령건으로 항소한다해도 국방부가 승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결단을 미루고 있다. 감사를 끝내고 점심 식사를 하며 다시 한번 국방장관에게 당부하였다.

    그러나 국회로 돌아오니 국방부에서 보낸 ‘항소포기불가 사유’에 관한 문서가 도착해 있었다. 이 문서는 항소가 필요하다는 근거로서 이제까지 피중령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 행태로 볼 때 국방부가 항소를 포기하게 되면 왜곡된 언론보도가 지속되어 대군 신뢰도가 훼손될 것을 들고 있다.

    또 헬기조종 자격을 상실한 피중령을 복직시키게 되면 일반 행정업무를 시켜야 하는데 복직 후 활용 가능성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사유는 피중령이 ‘국민들에게 왜곡된 군의 모습을 각인시킬 수 있는 서적인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발간하는 등 군기강을 문란케 하였다’는 것이다.

    오늘 국정감사에서 추가질의는 최근 발생한 성희롱 사건에 대한 것으로 했다. 대학교 다니는 딸도 있다는 모 대대장이 결재 받으러 온 20대 중반 여성 중위를 십수차례 손가락을 만지는가 하면 술이 취한 채 이 여성중위를 호출해 포옹을 시도하고 ‘나 닮은 아기를 낳아달라’고 말하는 등 성추행을 한 사건에 대해 군 검찰부는 불기소 결정을 내렸고 군사법원도 이는 성추행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문제의 대대장이 여성 중위에게 보낸 낯 뜨거운 편지, 문자 메시지도 증거로 제출되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군사법원의 결정문은 이 대대장의 행동이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성추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추행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대한민국 군대 내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군대문화란 말인가? 질타했지만 메아리가 없다.

    사령관 표창을 받는 등 장기복무의 꿈을 키워오던 이 여성 장교는 끝내 전역하고 만다. 가해자인 대대장은 어떻게 처리되었냐고 물으니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고 한다. 어떤 징계를 받았냐고 물으니 머뭇거리다 근신이라 답한다. 며칠간 근신 받았냐고 또 물으니 모기만한 목소리고 사흘이라고 대답한다.

    악화는 남고 양화는 떠나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군의 현주소인가? 피중령이나 여성중위와 같이 헌신으로 군에 복무하고자 하는 사람은 군을 떠나야 하고 결재받으러 온 하급 여성장교 손가락이나 만지고 사랑한다는 문자 메시지나 날리는 지휘관이 보호받는 것이 우리 군의 참모습일순 없다.

    피우진 중령에 대한 항소포기로서 군이 거듭나는 계기를 스스로 만들길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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