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격변 출발점은 북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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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08일 03: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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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화원 영빈관에서 기념촬영하는 두 정상.(사진=뉴시스)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한 ‘2007 남북정상회담’이 10월2~4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다.

양 정상은 장시간에 걸친 상봉과 회담 끝에 ‘2007남북정상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와 향후 정세 전망을 밝혀본다.

1. 정상회담 성사의 배경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2007 남북정상선언’의 의의를 올바로 독해하려면, 어떤 정세 속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공교롭게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중국 베이징에서는 제6차 6자회담 합의문(한반도 비핵화 2단계 행동조치)이 발표되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지 않다. 한반도 역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두 가지 사건(제6차 6자회담 합의문과 남북정상회담)이 동시에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6자회담에서의 역사적 진전과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출발 지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10.9 북핵실험에 도달한다. 10.9 북핵실험이 터지자마자 한국의 모든 언론들은 한반도 평화가 끝장나고, 격렬한 대립과 갈등의 한반도 미래를 점쳤지만, 역사는 그와는 반대로 진행되었다.

북한의 핵 공세 이후 한반도 정세 급변

북핵실험 직후 10월 14일 유엔안보리 대북결의안 1718호가 통과되어 전세계가 대북 압박에 들어가고 북한은 전 세계로부터 고립되는 듯했지만, 전 세계가 구체적 제제안을 유엔에 제출하기도 전에 미국은 허둥지둥 중국을 앞세워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모색했다.

그 결과 10월 31일 베이징에서 북미 양자회담(중국은 중재자로 참여)이 열렸고, 북한 금융제재 해제를 전제조건으로 6자회담에 참가하기로 했다(이것은 북한의 기존 주장이었으며, 미국은 북한의 주장은 전적으로 수용했다).

이것은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였으며, 전 세계 언론들은 북한의 핵 공세가 성공했으며 미국이 북한의 핵 공세에 무릎을 꿇었다고 평가했다. 사실 이때부터 한반도 정세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고압적인 대북 압박정책 대신, 당근을 앞세운 대화와 협상을 모색했으며, 급기야 2007년 1월 중순 베를린에서 북미직접협상을 벌여 BDA문제(대북 금융제재)를 한 달 이내에 해결하기로 약속하고, 금융제재를 해결한 한 달 뒤에 핵시설 폐쇄(가동중단 조치)를 하고. 그 대신 미국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과정을 시작하기로 약속했다.

북미 직접협상의 결과는 2.13합의로 외화되었다. 미국의 강경 대결세력들은 2.13합의에 반발했지만, 결국 BDA문제를 북한의 요구대로 풀어주고, 한반도 비핵화 1단계 행동조치가 이행되었다.

2.13합의 이행으로 한반도 정세가 풀리면서 남북관계를 도약 발전시킬 기회가 열리게 됐고,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남북 정상은 8월 말에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의 수해로 인해 정상회담 개최일자는 한 달 정도 연기되어 10월 2~4일까지 평양에서 ‘2007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결론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 핵실험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고립 압살정책에서 대북 포용정책으로 바뀌면서 북미관계 정상화의 큰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조건에서 유리한 한반도 정세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남북정상들의 결단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2. ‘2007 남북정상선언’ 분석

2007 남북정상선언에 대한 대체적인 분석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합의이며, 통일문제보다는 구체적인 평화 또는 경제협력문제에 초점이 집중된 합의라고 진단되고 있다.

그것은 6.15공동선언에서는 제2항에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해나가기로 합의했던 내용이 포함됨으로써 통일의 구체적 이정표를 제시했던 데 비해 이번 ‘2007 남북정상선언’에서는 6.15공동선언의 합의 내용을 다시 확인 한 데 그치고, 보다 진전된 통일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국통일 결정적 국면 여는 자주통일 선언

이러한 진단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없다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번 공동선언이 통일문제에 대한 진전은 거의 없고, 평화와 경제협력에 관한 진전만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또한 이번 합의를 두고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의 연상선상에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이번 합의내용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이번 ‘2007남북공동선언’의 특징과 성격을 몇 가지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공동선언은 6.15공동선언 이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정치군사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조국통일의 결정적 국면을 열어나가자는 자주통일 선언이다.

이번 공동선언은 ‘통일이 아닌 평화공존을 선택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러한 평가는 평화와 통일을 서로 대립시킨 것으로 옳지 않다. 평화 없이 통일 없으며, 통일 없이 진정한 평화도 없다. 평화와 통일은 함께 가야하며, 평화의 길과 통일의 길은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현 시기 조국통일에서 가장 절박한 과제로 나서고 있는 문제는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제거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함으로서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자주통일의 대강인 6.15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절박한 과제로 나서고 있는 문제도 소위 3대 장벽(정치-군사-경제적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이는 그 어떤 통일방안도 실현 불가능한 공상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평화공존은 조국통일의 한 측면인 것이다.

평화와 통일은 대립 관계 아니다

이번 선언을 자주통일선언으로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 6.15공동선언의 계승을 명확히 천명했다는 것은 무엇보다 귀중한 성과이다.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도 남북관계를 6.15공동선언에 기초해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고 6월15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기념하기로 합의했다.

이것은 6.15공동선언이 어느 한 정권의 합의 차원을 뛰어넘어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부정할 수 없는 공고한 구속력을 갖는 규범으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상상 이상이다.

□ 조국통일을 진전시켜 나가는 데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되고 있는 정치군사적 문제 해결을 남북당국이 합의함으로서 6.15공동선언 이행의 결정적 계기를 확보했다. 이것은 조국통일의 진전에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2007 남북정상선언’이 이행되어 정치군사적 근본문제(국가보안법폐지, 참관지 제한철폐, NLL문제 해결, 군사적 적대관계청산, 한미합동군사훈련 폐지등)가 해결되고 남북관계가 교류협력의 단계로부터 정치군사적 화해협력의 단계로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되면 그 때는 바야흐로 통일의 1단계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번 선언은 조국통일 역사에서 그만큼 역사적 의의가 크다.

□ 이번 선언에서는 구체적 통일기구 구성에 대한 합의는 없지만, 통일기구가 구성되게 되면 해야 할 일을 과제로 내세우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과제들을 수행할 수 있는 남북공동의 기구들은 체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통일기구 구성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민족통일기구 구성 기초 마련

구체적으로 남북대화 창구를 장관급에서 총리급으로 격상시키기로 했다. 장관급에서 총리급으로 격상시킨다는 것은 단순한 양적 변화가 아니라 질적 도약이다. 통일부장관은 정치군사적 문제들을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다. 정치군사적 현안문제들은 국방부와 법무부 등 다른 부서의 업무들이기 때문에 통일부 장관이 그러한 문제들을 조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역할의 한계는 명백하다.

반면에 총리는 모든 부서들을 지휘 통솔하고 있기 때문에 총리급 회담에서는 남북 교류협력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적 현안문제, 군사적 현안문제, 대규모 경협문제들을 모두 다룰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장관급에서 총리급으로 대화창구를 격상시키기로 한것은 이처럼 남북대화의 폭과 수준을 질적으로 높이자는 것을 뜻하며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발전시켜 통일의 길로 성큼 다가가자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민족통일기구의 역할이 아닌가. 또한 경제협력을 위한 창구를 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 격상한 것이라든가 국방장관급 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것 등등은 모두 남북관계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조직화 체계화하자는 것이며, 이것은 먼저 민족통일기구를 선포하는 방식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민족통일기구를 필요에 따라 구축해 나가자는 포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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