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해빠진 곳에서 건져올린 싱싱한 진실
        2007년 10월 05일 05: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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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귀먹고 말 잘 못해
    이름? 강 해 춘 이야 일흔하나
    열아홉에 부산에 왔어
    ……
    딸 하나 있어. 영희야 대구 살아
    예뻐 하하~
    아들 둘은 어려서 죽었어. 배고파서
    ……
    내일 와. 소라, 멍게, 해삼 많이 줄게
    다 그렸어? 어디 봐
    아유~ 그림도 잘 그리네.”
    「영도해녀 강해춘」, 『브라보 내 인생(산지니)』

    강해춘 할머니로부터 그림 실력 인정받은 손문상은 <녹색평론>과 <프레시안>에 그림 그리며 사는 이다. 손문상이 <부산일보>에 연재했던 글과 그림 서른 아홉 편을 묶어 화첩산문집 『브라보 내 인생(산지니)』을 냈다.

       
      ▲ 영도해녀 강해춘 할머니.
     

    그림이 서른 아홉 편이니, 만남도 서른 아홉이고, 사연도 그쯤 될 테지만, 그들의 사연이랄 것도 없는 사연은 손문상이 아니고서는 절대 신문에 실리지 않을 ‘쌔고 쌘’ 사연들이다.

    피어싱 한 열여덟 유림이는 “근데요 아저씨, 저 볼살 좀 빼서 그려줘요~예?!”라고 주문하고, 파밭 매는 아줌마는 “아이고~ 아저씨, 나 안 해요”라고 손사레 치고, 부산에 유명한 주점 계림의 안주인은 “얘기는 무슨~ 금순이 하네, 저것 좀 보고”라며 뺀다.

    청소 아줌마는 “힘들어도 운동이라 생각하고” 일하고, APEC 회의에 밀려난 운촌 사람 박용호는 “우리는 아펙 기간 중에 숨는 걸로 한몫”했다고 자위한다.

    건널목 30년 오현석은 내년 퇴직 후 동해선 따라 “못 가본 좋은 데” 다녀볼 계획이고, 김해 농부 이영광은 큰놈 대학등록금 벌러 “겨울공사판 노가다라도” 할 심산이다.

    이 책에 해설이나 발문 비슷한 걸 쓴 소설가 김곰치가 그 제목을 ‘재능보다 깊은 세계’라고 걸어놓은 것을 보니 손문상이나

    이 책이 그만한 깊이에 도달해 있지 싶기도 하다. 그 깊이에 대해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 실린 서른 아홉 사연들이 조곤조곤 목소리 낮고 냄새가 옅은 것은 마음에 쏙 든다. 손문상이 참 잘 중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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