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 기간 상호 공존 미래에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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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04일 02: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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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남북한 정상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하 10.4 공동선언)에 합의, 서명하였다. 10.4 공동선언은 ‘6.15 선언의 고수, 통일지향적 남북관계의 형성, 군사적 신뢰구축, 종전선언의 추진, 경제협력, 사회문화 협력, 인도주의 협력, 국제적 협력’ 등 총 8개항의 내용을 담고 있다.

10.4 남북공동선언은 전체적으로 무난하며, 일반적인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다.

공동선언의 내용은 ‘구체적인 명칭’ 정도를 제외하곤, 대부분 예견되었던 사항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정도의 내용이면, 국내 차원에서는 상당 부분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들이라 사회적 갈등의 소지는 적은 것처럼 보인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나 서해공동어로구역 문제가 쟁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나라당이 이를 대선 쟁점으로 만드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기에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동시에 주변국의 입장에 대한 배려도 보이기 때문에, 주변국으로부터의 우려를 살 일도 적은 것처럼 보인다.

   
  ▲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2007 남북정상 선언문’에 서명 뒤 이어진 환송오찬에서 건배하고 있다.(사진= 평양 청와대 사진기자단 / 뉴시스)
 

남북한 평화공존에 대한 합의

10.4 남북공동선언은 6.15 공동선언에 비해 포괄적이며, 구체적이며, 길다. 6.15 공동선언은 최초의 남북 정상의 공동선언이라는 상징성에 초점을 두어 통일, 평화, 협력의 내용들을 추상적으로 선언한 것에 머물렀다. 이에 비해 10.4 공동선언은 보다 실무적인 회담으로서, 그 내용들은 현재 남북이 안고 있는 대부분의 현안들을 포괄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 시기에 남북정상회담을 하였기 때문에 앞으로도 어떤 정권이든 남북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의 남북정상회담은 10.4 남북공동선언에 비해 보다 실무적이고 문제해결 중심적인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남북정상회담이 운영됨에 따라 추상적인 ‘통일’의 문제보다는 구체적인 ‘평화’의 문제에 초점이 갈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10.4 공동선언이 구체적인 통일방안을 담기를 희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상호 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2항의 구절이 보여주고 있듯이, 남북한 당국은 상당기간 남북관계가 발전하며 상호 공존하는 미래에 합의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남북한 당국이 상호 존중과 신뢰 관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열어놓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남북한 당국은 통일지향적이라는 언사를 사용하였지만, 구체적인 국가연합의 상까지를 미리 못 박아 두지는 않았다. 이는 국가연합의 상과 같은 사안이 현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합의할 사항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간 남북한이 상호 존중과 상호 신뢰를 구축하면서, 미래의 남북관계를 그 단계에서 조율, 조정해나가는 것이 남북 당국이 구상하는 현실적인 경로일 것이다.

미래의 통일보다 현재의 남북관계 발전에 초점

남북 당국은 남북관계의 미래, 즉 통일의 미래보다는 당장 남북관계가 어떻게 발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초점을 두고 있다.

10.4 공동선언의 내용을 보면, 경제협력과 인도주의 협력은 매우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비해, 정치, 군사 분야는 이에 비해 추상적, 선언적으로 제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0.4 공동선언은 경제협력을 통해 정치, 군사협력을 더욱 확장하자는 6.15 공동선언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10.4 공동선언이 6.15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가 여부가 군사적 신뢰구축과 정치협력의 제도화에 달려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기간은 6.15 체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군사적 적대관계의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한미동맹, 북중동맹 등 주변국과의 관계 역시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한이 현 단계에서 군축에 적극적이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후일담을 통해서야 구체적인 논의 내용이 나오겠으나, 북한 역시 군축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개혁, 개방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의구심을 말한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 속에선 군축에 관한 북한의 입장까지도 유추할 수 있다.

남북한이 합의한 내용에 따르면, 군사적 적대관계의 청산은 경제협력을 뒤따를 수밖에 없다. 서해상에서의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해 남북한 군사회담을 하자는 것은 결국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의 설치와 같은 경제협력을 보완하기 위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군축이 여전히 부차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비핵화 양자동맹 깊이 논의 했을 것

남북군축이나 정치협력의 제도화는 핵문제 해결과 연계될 가능성이 큰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6자회담의 틀을 벗어나선 안 된다고 경고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 남북협력의 수준이 핵문제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 관계를 주체적으로 돌파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10.4 공동선언에서는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의 문제는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고만 언급하고 있다.

남북한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의 문제와 양자동맹 등에 관해서도 깊은 논의를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합의문에서는 추상적인 종전선언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합의가 어려웠던 점도 있었겠지만, 주변국에 우려를 사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10.4 선언에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나 ‘주변국과의 협력’과 같은 내용들이 빠져있는 점이다. 한반도의 평화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질서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주변국의 협력이 필수적임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이러한 내용들이 들어갔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 주변국의 우려를 살 수도 있는 문제이겠지만, 적어도 한반도의 두 당사자가 6자회담의 미래에 대해 발언권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큰 욕심을 내지 않”았던 것이 보이는 대목이다.

남북통일 프리즘 벗어나 새로운 한반도 공동체 모색해야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10.4 공동선언은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2002년 말 불거진 핵문제 이래 기능주의적 접근은 심한 국내외 견제를 받아왔다. 정치, 군사적 협력의 토대가 발전하지 못하는 경제협력은 불안정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핵문제 해결이 순탄하게 진행된다면 경제협력과 정치협력이 동반 발전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남북관계는 다시금 경색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10.4 공동선언이 초보적인 군사적 신뢰구축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이것 정도론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엔 부족하다.

따라서 어떠한 상황이 전개되건 남북관계가 그 자체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부정적으로 연계시키기보단 병행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회운동이 이러한 남북경제공동체에 함몰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남한은 전두환 정권 이래 경제협력의 발전이 남북통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하에서 기능주의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기능주의 정책을 앞으로도 계속 추진하기는 어렵다.

비용 증가를 부담스러워 하는 남한과 흡수통합을 우려하는 북한 사이의 딜레마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긴밀해질수록 남북관계의 딜레마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국가성이 정면 충돌하는 안보 딜레마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회운동은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규범으로써 남북관계의 발전에 적극 개입해야 할 것이다. 기업의 북한 노동자의 착취에 눈감아서도 안 되며, 북한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협력논리를 수용해서도 안 된다. 한반도 전체 민중의 의사가 반영된 인권 가치(여성권, 노동권, 환경권, 평화권)를 수립하고, 이를 토대로 남북관계의 민중적, 공동체적 발전에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가 정부 주도로 발전할수록 남한의 사회운동은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이제 좁은 남북통일의 프리즘을 벗어나, 한반도 공동체의 시야에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 새로운 인권 규범, 새로운 사회체제를 개방적으로 모색하고 논의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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