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내각 '보수적 아시아주의?'
    2007년 10월 02일 10: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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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야스오(71) 정권이 지난 달 25일 출범했다. 후쿠다는 23일 강경 우파인 아소 다로 간사장을 누르고 자민당 총재에 당선된 데 이어 25일 국회에서 아베 신조의 후임 총리로 지명됐다.

아소다로 전 간사장이 경쟁자로 출마했지만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파를 비롯 거의 대부분의 자민당 내 파벌이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지지를 결정, 사실상 투표 전부터 당선이 유력시되었었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고이즈미 전 총리도 후쿠다 전 관방장관을 지지했다고 한다.

아소다로 간사장은 아베 내각에 외상으로 입각한데 이어서,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참패로 인한 정권 동요를 극복하기 위한 8월 말의 개각에서 ‘당의 얼굴’인 간사장으로 기용되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약점이 되어 버렸다.

   
 
 

물론, 아소 간사장 스스로가 군소파벌을 이끌고 있다는 한계도 있었지만, 선거참패와 그로 인한 정권의 구심력 저하로 전격 사임한 아베 총리의 그늘이 그에게는 오히려 역효과였다.

‘일본 네오콘’의 일보 후퇴 

아베 전 총리의 사임은 단순히 총리 한 사람의 사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베 전 총리가 작년 내각을 구성했을 당시 ‘토모다치(友達) 내각(토모다치는 친구들이라는 의미이다.

즉 친구들끼리 모여 만든 내각이라는 의미)’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그만큼 아베 내각은 아베 전 총리와 ‘코드’가 일치하는 측근들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베 전 총리의 사임은 ‘일본 네오콘’에게 상당히 큰 정치적 타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참의원 선거 참패의 직접적 원인이 아베 정권 인사들의 부패와 추문들이었다는 점, 지난 8월 27일 국면전환을 노리고 단행한 내각 개편 직후 엔도 타케히코 신임 농수산상이 자신이 조합장으로 있던 농업공제조합에 부정한 방법으로 정부보조금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사임했다는 점 등은 ‘아베 전 총리와 그 친구들’에게 더 이상 정권과 당의 앞날을 맡길 수 없다는 위기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의 분석도 가능하다. 아베 전 총리의 사임 발표 직후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것은 자민당 중진그룹을 중심으로 한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지지세력이었다. 또한, 각 파벌의 영수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이 와중에 ‘아베와 그 친구들로는 안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자민당 주요 파벌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안정감있고 예측가능한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파벌정치가 재연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고이즈미-아베로 이어지는 정권 창출 과정에서 파벌들은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고이즈미와 아베는 당내의 조직적 기반보다는 대중적 인기가 당선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후쿠다 야스오 신임 총리의 선출 과정에서는 파벌들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이것은 후쿠다 야스오 신임 총리의 향후 행보에 있어 제약이 될 것이다. 특히, 후쿠다 야스오라는 인물은 ‘카리스마형 리더십’보다는 ‘조정자형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다.

후쿠다 내각의 면면을 보더라도 그렇다. 대부분의 각료들은 아베 전 총리 집권 말기 인물들이며, 전체 각료 17명 중 13명이 재임이다. 또한 파벌의 영수들을 당 4역을 포함한 중책에 앉혔다.

나라와 정당을 불문하고 특출한 능력이 있는 정치인이 아니라면, 특정한 파벌(혹은 정파)의 지지로 추대된 정치인이 ‘파벌(혹은 정파) 정치의 덫’에서 헤어 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불투명한 후쿠다 내각의 앞날

또한, 참의원을 제1야당인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후쿠다 내각의 앞날이 그리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상 가능하게 해준다. 당장 인도양에서 미군에 대한 급유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해상자위대 임무 기간 연장을 위한 법률적 근거 마련이 쟁점이다.

해상 자위대의 미군 지원 활동을 가능하게 한 근거법인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은 11월 1일이 기한 만료다. 이 법은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략을 계기로 미국의 대테러전쟁 지원을 명분으로 제정됐다.

자민당은 법안의 연장이 어렵다면,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라도 미국의 대테러전쟁 지원을 지속한다는 입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엔결의에 기초하지 않는 자위대의 해외활동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민주당을 설득해야 한다. 아베 전 총리는 자신의 사임 이유를 이 문제가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실추된 정권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도 과제이다. 설사 아베 내각의 인사들이 저지른 부패와 추문이 사과와 사임으로 일단락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난제들이 남아 있다.

언제 어디서 불거질지 모르는 정치자금 문제와 자민당 정권과 일본 관료조직의 부조리를 여과없이 드러내 보인 연금 문제는 후쿠다 내각이 짊어지고 가야 할 난제 중의 난제다. 후쿠다 총리는 지난 25일 밤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국민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가장 큰 문제인 연금문제를 ‘정부에 대한 신뢰 상실’로 규정해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문제들의 해결이 어느 정도 가능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후쿠다 내각에 대해 자민당 ‘정권 연장용 내각’이라는 평가나, 내년 상반기에 단행될 가능성이 높은 ‘중의원 해산, 조기총선’을 위한 관리용 내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내외 정책변화의 가능성

후쿠다 내각의 미래의 불확실성과 정권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정책변화 가능성의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대내 정책에 있어 아베 식의 ‘우경화 드라이브’가 중단될 것은 분명하다.

사실, 전임 아베 내각이 교육기본법 개악, 평화헌법 개정과 같은 ‘우경화 드라이브’를 강행한 것은 자신의 내각 브랜드를 ‘보수적 정체성’으로 내걸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강경한 우경화 정책은 자민당, 그리고 연립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공명당 내에서도 반발을 불러오곤 했었다.

또한,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변화 가능성이 있다. 특히, 후쿠다 야스오 신임 총리가 중국, 한국 등 주변국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중시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총재 경선 과정에서부터 "당신이라면 친구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겠습니까?"라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일, 중일 양자관계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아시아 중시 외교로의 전환’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후쿠다 야스오 또한 보수적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즉,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해서 보통국가로 나아간다’는 일본 외교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 속도와 방식을 조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민주당의 부상이라는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민주당은 특히, 외교안보 정책에 있어 자민당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또한, 다양한 입장의 정치세력들이 이합집산해서 만든 정당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일본 국내 정치에서 ‘평화국가 노선의 견지’를 주장하는 세력은 대부분 시민사회 내에 머물러 있고, 현실 정치무대에서는 공산당과 사민당으로 축소된 지 오래다. 게다가, ‘자민당의 참패’만이 부각되었던 지난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공산당과 사민당은 오히려 의석수가 줄었다. 일본의 국내정치는 점점 ‘보수 양당 체제’가 공고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국내정치의 변동과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만날 때

다만,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변화 가능성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아베 내각이 집착해왔던 ‘납치문제 해결 없이 북일 수교 없다’, ‘납치문제 진전 없이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빼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는 원칙들이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민당 내에서조차도 아베 총리와 측근들이 외교 무대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내적 변수에 의한 대북정책의 변화 폭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일본 국내적 변수만을 갖고 너무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보수적, 상업적 매스미디어들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는 반북감정을 동원하면서 민주당에게 ‘책임 있는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주문하고 나선다면 온갖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결집해 있는 민주당이 ‘강경’ 입장으로 선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고이즈미 총리 시절 고이즈미 총리가 납치문제의 진전이 보장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차 방북을 한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기도 했었다.

오히려, 일본의 대북정책 변화의 추동력은 국내정치의 변동 과정과 외부에서의 변화가 서로 맞물리는 과정에서 찾아 올 것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이 진전을 보이고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진척된다면 일본의 대북정책 변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일본인 납치문제와 별도로 북미 관계 진전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즉, 유동적인 일본 국내정치(대북강경라인의 일시적 후퇴)와 북미 관계 및 남북 관계의 진전과 같은 외적 변수가 만난다면 일본의 대북정책이 크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는 누구인가?

1936년 출생.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의 아들. 중의원 6선 의원. 고이즈미 내각에서 관방장관(2000년~2004년)을 역임. 그러나 장관 사임 후 고이즈미 내각과 거리를 두면서 여당 내 고이즈미 내각에 비판적인 세력의 리더로 부상했다.

2006년 고이즈미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만료로 인한 총리직 사임을 앞두고,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아베 전 총리와 자민당 총재 경선에 임했지만 중도에 사퇴했다. 이번이 두 번째 총리 도전이었던 셈.

관방장관 재직 시에는 리덩후이 전 대만총통이 방일하려고 할 때, 중국을 배려해 비자 발급을 반대하는 등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를 중시하는 입장을 취했고, 일본인 납치문제와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온건한 태도를 취해 납치 피해자 가족 모임 등으로부터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총재 경선 과정에서는 “주변국을 배려해 야스쿠니 참배는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보수적 아시아주의’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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