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들도 몰라. 나중에 봐야 아는 거여”
    2007년 09월 27일 01:34 오후

Print Friendly

“그 놈들도 몰라. 나중에 가봐야 아는 거여.” 지난 2004년 초 한창 민주노동당이 뜨고 있을 때, 시골에 계신 아버지께 어떻게든 정당명부 비례대표 한 표라도 얻어볼 작정으로 ‘돈 받아 쳐먹은’ 부패한 정치인들 얘기가 나온 기회를 틈타 깨끗한(?) 민주노동당을 대화 속으로 슬쩍 밀어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이렇게 말씀하시던 게 기억납니다.

나 : “아버지, 그래도 민주노동당은 좀 깨끗하지 않을까요?”
아버지 : “그 권 뭐시기 패거리? 그 놈들도 몰라. 나중에 가봐야 아는 거여.”

일제시대에 태어나 해방공간부터 온갖 한국 정치세력을 봐 온 아버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이기에, 민주노동당이 그들과 똑같이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이 조금 억울했지만 두고 보기로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순진했던 헛똑똑이보다 그때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던 것 같습니다.

총선 전에는 온갖 깨끗한 척 잘난 척, 총선 후에는 나 몰라라

민주노동당 당원이 되고 나서 별별 꼴을 다 겪고 나니, 누구 말대로 진보정당이라고 해서 보수정당보다 인격적으로 특별하게 더 훌륭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는 것도 눈치챘고, 오히려 국민들이 알면 경악할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곳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자신들은 늘 힘들고 어렵고 옳은 일만 하는 사람들이라서 그까짓 돈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총선 전에는 기존 보수정당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면서 당원들의 당비로 운영하는 깨끗한 정당이라고 동네방네 자랑하던 민주노동당은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통과된 정치관계법(정치자금법, 정당법, 공직선거법)이 발효되자 허둥대기 시작했습니다.

원내 진출 후 국가보조금을 받지 말든지 국가보조금을 받을 거면 정당법을 따르든지 해야 할텐데 국민들의 피땀어린 세금인 수십억 원의 국고보조금은 넙죽넙죽 잘도 타 먹으면서 정당법과 정치자금법은 지키자는 것인지 불복하자는 것인지 결정을 회피해 버렸고, 총선 전까지 당 홈페이지에 당비 수입과 지출을 공개하던 것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습니다.

총선 전에는 국민들에게 온갖 깨끗한 척 다 하다가 막상 원내에 진출하더니 나 몰라라 얼굴색을 바꿔버린 버린 것입니다.

당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무슨 낯으로 집권을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연달아 터지는 부정부패 사건과 재정파탄. 시의원이 돈 받아 쳐먹다가 잡혀가고, 선거운동하면서 돈봉투 돌리다가 잡혀가고, 시도당은 회계장부를 숨기기에 바빴고, 지역위원회에는 유령들이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 민주노동당 중앙당이 입주해있는 영등포구 문래동 건물.
 

중앙당은 비합법적인 회계시스템과 불법적인 정당운영으로 당 운영의 난맥상을 드러내며 당 재정은 돌이킬 수 없는 적자에 허덕이고, 대선-총선을 앞두고 돈을 쌓아 놓아도 모자랄 판에 수십억 적자에 당직자들 월급도 제때 못 주는 창피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구조적인 적자구조와 부패가 온존하는 시스템을 잘 알면서도 이 지경에 이르도록 누구 하나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없었고, 고칠 생각도 안하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당 지도부를 배출한 거대 정파들은 당을 발전시키고 집권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선거 시기에만 강력한 동원 능력으로 당권을 장악해 놓고서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수십억 규모의 군소정당 하나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각종 회계부정과 부패사건에 자정 능력마저 상실한 민주노동당에 어떤 국민들이 집권을 허락하겠습니까.

현재 민주노동당은 단순히 개인의 부도덕과 당 지도부 무능과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당 전체를 관통하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한계와 위기가 나타나고 있어, 단순히 기술적인 개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판단입니다.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 말대로 민주노동당이 집권 여부에 관계없이 신념을 위해 순교하려는 저항단체가 아니라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라면 모든 것을 뜯어 고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과 당원들의 당비로 나온 돈, 쓸 곳이 아무리 많아도 쓸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예산을 세우고, 허투루 새나가지 않도록 한 푼이라도 아껴 쓰고, 돈을 쓰고 나서는 제대로 썼는지 확인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의 운영체계와 회계시스템을 몽땅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당의 운영체계와 회계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뜯어 고쳐야

첫째, 당의 운영체계를 정비해야 합니다. 당헌 당규를 개정하여 현재 중앙당-시도당-지역위원회 체계를 정당법대로 중앙당과 시도당만 공식 당부로 규정하고 그 이하 지역위원회, 지회, 분회 등은 당원들의 자발적 활동단위로 규정하여 유급 사무원은 공식 당부에만 두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실현한다면 전체적으로 당원들의 자발성을 높이고 음성적인 정파의 힘을 약화시키고 당의 체질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다른 문제들은 기술적으로 해결이 가능한 사소한 문제들이지만 이것만큼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당 혁신의 출발점이고 그 만큼 당내 보수세력이 본능적으로 거세게 저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유급 사무원과 자원 활동가의 개념을 엄격히 구분해야 합니다. 지역위원회 위원장, 사무국장, 지회장, 분회장은 자원 활동가들이 맡고 유급 사무원은 법정 인원 이내에서 전체 당 예산 규모에 맞춰 적정한 수로 줄여서(소수 정예주의) 당 사업비가 확보되도록 해야 합니다.

유급 사무원에게는 노동3권을 인정하는 대신 정파 활동을 금지하고 4대보험에 가입하고 생활 임금과 고용을 보장해야 합니다. 전국의 유급 사무원의 인사권을 대표가 가지고 제청권을 중앙당은 사무총장이, 시도당은 위원장이 가지도록 하여 전당의 인사관리를 일원화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총선 이후에 새롭게 전문성 위주로 유급 사무원을 공채하되 지금까지 근무한 상근자에게 우선권을 주면 됩니다.

셋째, 국회의원, 보좌관,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등 공직자의 당비를 현실화해야 합니다. 세비가 일정 이하인 경우에는 특별 당비를 걷지 않는 등 전반적으로 특별 당비를 낮추어서, 보좌관들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만 당이 가지고 있는 보좌관의 인사권을 국회의원에게 돌려주고 직급도 그대로 인정하여 전문 고급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지방의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보좌관의 채용 권한은 의원 개인이 갖도록 해야 합니다.

넷째, 중앙당과 시도당의 회계보고를 정기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공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회계의 원칙을 세우고 규정을 보완하고 시스템을 정비해야 합니다. 예산결산위원회에 비당원 외부 회계사를 포함시키는 등 예결산위원회의 당내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방법도 검토해볼만 합니다. 외부회계감사 제도, 사외이사 제도, 학교운영위원회 제도는 오히려 민주노동당에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제도입니다.

그래도 남는 숙제들

정당법에 따라 당헌 당규를 개정하면 예산과 사업, 당무가 광역시도당으로 집중됩니다. 지역위원회에는 기구, 위원회 등을 형식적으로 설치할 필요가 없고 대외협력 사업은 광역시도당으로 이관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정치방침들의 수행 주체가 광역시도당으로 통합되면서 공직 후보의 여성 강제 할당제 같은 경우에도 광역시도당 별로 비율을 맞춤으로써 실효성과 유연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광역시도당 위원장의 권한과 책임은 커지고 정치 활동은 광역시도당, 조직 활동은 지역위원회로 역할이 구분됩니다.

그리고 이 참에 분회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분회의 위상을 너무 높이거나 지역 분회를 기본 계선 조직으로서 너무 강조하지 말고, 분회의 규모에 대한 규정도 없애 지역과 직장 뿐만 아니라 취미나 과제나 부문이든 뭐든지 분회를 만들 수 있는 걸로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분회 메뉴를 다양하게 만들어서 그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면 되게 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지역위원회에 온갖 위원회들이 있는데 그걸 다 분회로 인정한다는 겁니다. 지금 활동적인 운동권 출신 당원들은 청년위원회, 여성위원회, 환경위원회를 다 하고 분회까지 하는 반면에 실제로 한 가지도 안 하는 당원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당원은 소속 분회가 하나이도록 하면(물론 소속이 아니면서도 활동에는 함께 할 수 있지만) 당원들의 참여율을 골고루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예민한 문제인 창당 이후 최일선에서 헌신과 희생으로 당을 일궈왔던 지역위원장과 사무국장 등 지역위원회 상근자들의 진로는 현재 당적 구조가 젊은 활동가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당에서는 일선 상근자들에게 임금마저 줄 수 없는 당의 현실이 모든 것을 대답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지역 상근자는 유급 사무원(당직자)의 길을 갈 것인지 자원 활동가의 길을 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즉,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내년 총선 이후에 새롭게 전문성 위주로 유급 사무원을 공채하되 지금까지 근무한 상근자에게 우선권을 줘서 일부 인원을 흡수하고 나머지는 자원 활동가나 생활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당의 체질을 완벽하게 바꿔도 유급 사무직원의 규모는 중앙당 50명, 전국 16개 광역시도당 100명으로 모두 합해서 150명이 되고, 만약 한 사람에게 임금, 보험료, 퇴직금 등을 합하여 년 3,000 만원으로(물론 직급도 있고 여러 임금, 수당 체계도 있겠지만 평균하여) 따져도 년 45억 원이 경직성 경비로 쓰이게 됩니다.

이 금액은 당비 수입과 맞먹는 액수입니다. 즉, 현재 당비로는 정당법에서 정한 유급 사무원의 인건비로도 빠듯하고 국가보조금을 받아 각종 사업을 진행하는 구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 지도부의 원죄와 권영길 후보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

만약 민주노동당이 집권을 했더라면, 각종 선심성 정책으로 세금을 깎아 주면서 한편으로는 방만한 사업과 무책임한 공무원 숫자 늘리기로 재정이 바닥나서 파산한 정부가 되었을 겁니다.

파산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서늘한 분노를 안다면 2004년 이후 들어선 제1기 최고위원(김혜경 대표, 김창현 사무총장, 주대환 정책위의장, 이용식 최고, 하연호 최고, 김미희 최고, 이정미 최고, 유선희 최고, 박인숙 최고, 최규엽 최고, 이영희 최고, 김종철 최고)과 제2기 최고위원(문성현 대표, 김선동 사무총장, 이용대 정책위의장, 강병기 최고, 박인숙 최고, 심재옥 최고, 김은진 최고, 홍승하 최고, 이해삼 최고, 김기수 최고, 김성진 최고) 그리고 국회의원(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강기갑, 단병호, 이영순, 천영세, 최순영, 현애자, 조승수) 등 전현직 당 지도부는 국민들과 당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당을 살리기 위해 앞장서야 합니다.

특히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당무를 총괄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한손에 거머쥔 권영길 후보는 참혹한 당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동안 두리뭉실하게 통합을 외치면서 미봉책으로 일관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고통스런 외과수술을 감행한다는 비상한 각오로 당을 살리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대로 천천히 굶어 죽을 것이냐 위기를 기회로 삼아 썩은 살을 도려내고 기사회생할 수 있느냐 하는 기로에 선 지금, 권영길 후보에게 비타협적인 승부수를 기대해 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당의 현실이라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빠져 손 쓸 수 없는 지경까지 몰리기 전에 권영길 대선후보의 정치 생명을 건 마지막 불꽃을 보고 싶습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