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편하지만 마주해야 할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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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9월 23일 11: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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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는 잔혹한 일이 있다는 것을 난 알아. 베트남이나 유대인 수용소라든지, 그렇지만 난 일부러 그런 영화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왜, 그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만 할까?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에서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학생 마츠이 카즈코가 하는 말이다. 이런 말은 비단 소설 속의 등장인물만 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실제로 많은 이들이 마츠이 카즈코처럼 말하거나 그녀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바타들이 살고 있는 가상공간의 화제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포털 사이트에서 많이 읽혀진 기사를 보자. 이랜드 구사대들이 여성 노동자들에게 얼음물병과 유리병, 돌 등을 집어던졌고, 일부 구사대는 뾰족한 흉기를 수건으로 감싼 채 휘둘렀다는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이효리가 초미니 스커트를 입고 공연을 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사람들은 현실을 살아가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마주하며 살고 있지는 않다. 사람들은 보아야 하는 것들 대신에 보고 싶은 것들만을 보며, 그것이 현실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간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더럽고 추하다. 더럽고 추한 것을 마주하기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기보다는 그저 예쁘게 꾸며진 가상공간으로 도피하고자 한다.

    클릭!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나를 반긴다. 집 구석구석을 훑어본다. 햇볕이 따사로운 거실에는
    평화가 흐른다. 잔소리 하는 엄마도, 술주정하는 아빠도 없다. 나는 빨간 모자에, 예쁜 티셔츠와
    꽃무늬 미니스커트를 차려입었다. 내가 꿈꾸는 곳, 바로 사이버 세상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특정한 영토로 영토화 되거나 재영토화 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탈영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임태희, 사계절, 2007)의 주인공 영주는 집안 형편도 어려울뿐더러 뚱뚱한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과 어머니를 괴롭히다가 죽은 알콜 중독자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고종사촌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한 기억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에게 온갖 문제로 둘러싸여 있는 현실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영토이다. 그런 그녀에게 마음먹는 대로 예쁘게 꾸밀 수 있는 가상공간과 자신의 무의식을 마주할 수 있는 소설 속의 공간은 탈영토가 된다. 어떠한 일탈도 허용하지 않는 제도화된 고등교육의 틀 속에서 이손은 영주의 소설로 도피하고, 화는 원조교제를 통하여 자신을 타락하게 함으로써 고정된 틀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들은 모두 탈주를 꿈꾼다.

    그러나 도피는 탈주가 될 수 없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하면 도피는 그저 현실을 외면하는 소극적 행위일 뿐이지만, 탈주는 고정된 체계와 질서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하여 창조적 변이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손은 자신의 버거운 현실을 그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결국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고 검은 구멍에 빠지게 된다.

    그에 반해 영주는 소설을 쓰면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자신의 아픈 기억과 대면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가상으로의 도피를 중단하고 현실로 돌아온 영주는 아바타를 삭제하고 새로운 소설을 구상한다. 영주의 새로운 모습은 비로소 창조적 변이를 추구하는 탈주가 될 수 있다.

    스스로 감당하기 벅찰 만큼 큰 문제와 직면하게 되는 경우,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도피를 시도하는 청소년들이 있을 수 있다. 소극적인 도피가 아니라 적극적인 탈주로 나아가기 위하여, 청소년들은 자신에게 갑자기 일어날 수도 있는 일들에 대해 미리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어른들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현실이라고 해도 청소년들이 보지 못하도록 감추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로 하여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하여 떨쳐버리고 싶은 기억과 화해하는 법, 그리고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탈주로 나아가는 법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성추행, 원조교제, 10대 임신, 자학 등의 불편한 소재들이 나열되어 있는 『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는 읽는 내내 불편한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읽게 될 청소년들 역시 나와 같은, 또는 나와는 다른 불편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불편한 경험을 감수하는 것이 그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역시 성장하면서 언니 같은 KTX 승무원들이나 어머니 같은 이랜드 노동자들처럼,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현실들과 끊임없이 마주하게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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