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는 구조가 아니라 동학이다
        2007년 09월 23일 09:55 오전

    Print Friendly

       
     
     

    민주노동당이 강령에서 얼핏 밝히고, 한국사회당을 비롯한 급진적 조류가 더욱 고민하는 직접민주주의 구상의 교과서로 쓰일만한 600쪽짜리 책이 나왔다. 에이프릴 카터(April Carter)가 쓰고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가 번역한 『직접행동』(교양인)이다.

    "대중이 지구화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고 우려를 표하는 이유는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특정한 전 지구적 이슈를 놓고 활동을 벌여 왔고, 여러 사회운동이 극적인 형태의 직접행동을 취했기 때문이다.

    …캘리니코스는 만일 국제적 변혁의 이행기 프로그램(예컨대, 외채 탕감 조치, 투기자본 거래에 대한 토빈세 부과, 환경보호 규제 조치, 자본 통제, 민영화 조치 원상 복귀, 누진세 등)을 달성하는 데 정치권력을 충분히 동원할 수만 있다면 어느 단계에 이르러 자본주의 내 각종 제도들의 내부 저항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에 결정적인 위기 상황이 올 수 있으리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이 상황이 혁명적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라는 말이다."

    『직접행동』에는 토크빌에서 캘리니코스까지, 공화주의로부터 심의민주주의, 심의민주주의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쟁의민주주의까지, ‘민주주의’라거나 ‘정치’라 이름 붙여진 인류 사회의 구상들이 깊이 있게 소개, 분석돼 있다.

    에이프릴 카터는 ‘자유민주주의’라거나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는 직접행동을 ‘작은 사람들의 민주적 안전 장치’라 본다. 이런 시각은 한국에서 직접행동을 애용하는 시민운동, 부르주아 정치의 보완 운동이 직접행동을 보는 관점과 유사하다. 그들에게 있어 직접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이후의 대체물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병존’한다.

    어쨌거나 직접민주주의는 정치의 출발과 함께 한 오랜 염원이었고, 지금에 있어서도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그것을 ‘보완’으로 보거나 ‘대체’로 보거나 하는 관념적 규정이 그 행동의 필요성을 퇴색시키지는 못한다.

    문제는 실천에 있고, 실천에 있어 직접행동의 문제는 그것을 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아니라, 지속성에서 주어진다. 직접행동의 한 주체인 비정치적 사회운동은 산발적이거나 일회적이어서 축적되지 못하고, 제도 밖 신흥 정치세력의 직접행동은 그 출현과 성장의 초기에 국한된다. 시애틀 시위가 그랬고, 사파티스타가 그랬다.

    문제가 지속이라면, 지속의 보장은 제도이고, 제도는 다시 소수자의 인민 대행으로 귀착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과제는 끊이지 않고, 끊이지 않는 투쟁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닐까? 그래서 민주주의는 사회구조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변전하는 역사 자체가 아닐까?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