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노당식 대중정치는 현실정치 아니다
        2007년 09월 21일 06: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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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회당의 정치를 비롯해 모든 정치세력의 정치에 대해 평론하기 좋아하는 후배와 늦은 점심식사를 하는데 그 후배가 물었다. “형! 방금 전에 <레디앙>에서 봤는데,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이 권영길 후보에게 쓴 편지 봤어?”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질문. “그럼, 왼쪽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일단 살며시 웃음이 났다. ‘왼쪽?’ 사실 나도 가끔 열린우리당 왼쪽이니, 민주노동당 왼쪽이니, 한국사회당 왼쪽이니 하면서 남이 쓰는 ‘왼쪽’이란 말을 인용해 쓰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도대체 ‘왼쪽’이란 말의 정체를 모르겠다. 그래서 나를 ‘왼쪽’이라고 부르는 것도 달갑지 않다.

    어쨌든 질문의 핵심은 권영길 후보에 대한 남재희 전 장관의 평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생각을 추스르고 이어지는 나의 답. “99% 절대 공감!”

    덧붙여서 한 마디 더 했다. “비슷한 내용으로 글을 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재희 전 장관이 먼저 썼어.” 이번에도 머리만 굴리다가 한 발 늦고 말았다는,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그저 나만의 자책이다.

    남은 밥알을 긁어대면서 좀 늦었지만 글을 쓰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재희 전 장관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질문 “집권목표 정당인가, 저항단체인가?”는 나에게는 “도대체 한국에서 진보정치세력이 집권할 수 있을까?”라는 쓰디 쓴 질문이다.

    다 접고 산에 가서 농사지을 생각이 아니라면 답해야 한다. 남재희 전 장관이 말한 것을 조금 바꿔서 인용하자면, 진보정치세력이 궁하니까 변해야 하고, 변해야만 통할 수 있는 것이 맞다!

    민주노동당의 대중정치는 현실정치가 아니다

    2007년 초입에 한국사회당 홈페이지에 ‘현실정치’라는 아이디로 글을 썼다. ‘현실정치’라는 아이디를 보면서 제 나름대로 고개를 끄덕이는 지인들도 있었고, 또 고개를 갸웃거리는 지인들도 있었다. 스스로는 일종의 자기정화 캠페인을 한다는 느낌으로 ‘현실정치’라는 아이디를 썼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진보정치세력의 현실정치’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정치를 하자는 것이다. ‘혁명’도 ‘전민항쟁’도, ‘100만 민중총궐기’도 감흥이 없다. 도대체 그 말들이 의미하는 바도 모르겠고, 그런 것들로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정당을 만들었으면 당연히 집권을 도모해야 한다. 또 집권을 도모한다면 목표에 어울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 만약 진보정치세력이 한마음으로 2017년 집권을 꿈꾼다면, 2007년엔 10년 후에 집권할 세력으로서의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가 세 번째 출마한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하는 것이 진심이라고 한다면 3등을 하든, 4등을 하든 집권의지를 가진 후보답게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생각하는 진보세력 집권의 조건은?

    나는 요즘 사람들에게 2017년 한국 진보정치세력의 집권을 이야기한다. 물론 진심을 담아 하는 말이지만 냉소적인 표정으로 “그게 어떻게 가능한데?”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편하다.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2017년 집권이 절박하다고 말한 것인데, 마치 정확도 10%의 선무당이 예언하는 것을 들을 것 마냥 반응이 돌아오기 때문에 불편하다.

    2017년 집권은 절박하고, 그 절박한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진보정치세력이 당장 스스로를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2017년 집권 이야기를 던지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안에 진보정치세력이 집권을 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세대에게 초라한 성과를 물려줄 수밖에 없고 후배들은 더 먼 길을 돌아가야만 한다는 불안함이 있다.

    금민 한국사회당 대통령 후보는 진보대연합 논의를 위해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그리고 권영길 후보를 만난 자리에서 “2017년 진보정치세력의 집권을 위해 미래 담론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치 혁신의 과제를 논의하자”고 했다.

    지금 진보정치세력 혁신의 버스가 도착했다는 확신이 있고, 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53체제와 87체제, 97체제의 종식이 임박한 시대 전환의 시기에는 새 술은 새 잔에 담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때, 권영길 후보는 “2017년 집권을 위해 100만 민중총궐기를 논의하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민주노동당은 진보정치세력 집권의 조건들을 생각하고 있을까? 민주노동당과 한국사회당은 새 술을 담을 수 있는 새 잔이 될 수 있을까?

    미래 대안 없이는 집권할 수 없다

    한 달 전인가. 참여정부의 평가(?)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선배랑 술을 마셨다.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그 선배는 외주 형태로 일을 맡아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었다.

    선배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던 이야기를 하면서 “민주노동당 이야기가 나오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노동당은 정당 같지 않다. 정당이라면 대안을 말해야지’라고 던지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더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거리고 술잔을 부딪치는데 ‘쪽팔림’이 덜컥 밀려왔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이지만, 한국 진보정치세력 전체에 대한 평가로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서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 세력은 당면한 현실의 조건에서 미래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집권을 했고, 지금도 미래대안 논의의 상당 부분을 주도하고 있다.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고 미래대안 경쟁에 끼어들기를 포기하고 ‘100만 총궐기’만 이야기하다보면 결국 기권패를 선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래대안 경쟁에서의 기권패만이 아니라, 집권목표 경쟁에서의 기권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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