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박과 술수 넘치는 우범지역 정당
        2007년 09월 20일 06: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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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9일, 강원도 산사에서 칩거에 들어간 후 나흘 만에 서울에 온 손학규 전 지사는 백범기념관에서 전격 기자회견을 했다.

    "한 때의 돌팔매를 피하려고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을 택할 수는 없습니다.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지 않기 위하여 대한민국의 장래와 국민의 희망에 등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한나라당을 위해 순교하기 보다는 국민을 위한 순교를 선택하겠습니다"

    손 전 지사는 그렇게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른 19일, 손 후보는 또 다시 ‘칩거’와 ‘잠행’을 선택했다. 정동영 후보 측의 ‘박스떼기, 버스떼기’ 동원선거를 문제 삼았다. 예정된 TV토론도 취소한 채 집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궜다. 그리고 20일 아침, 부인과 함께 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났다.

    협박정치 먹혀들다

    이 과정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일각에선 ‘손학규 후보 사퇴설’도 나왔다. 손 후보는 "이런 경선에 참여해야 하느냐"고 했었다. 조직에서 밀리고, 국민지지율에서도 밀리기 시작한 손 후보가 게임의 룰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려고 배수진을 쳤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일종의 ‘협박정치’인 셈인데, 이게 먹혀드는 분위기다.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당 지도부가 부정선거에 대해 철저하게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김원기, 김근태, 정대철, 문희상 의원 등 당 중진들은 긴급 회동을 갖고 "손 후보의 경선 복귀와 경선 문제점에 대한 당 차원의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손 후보는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경선에 참여키로 했다.

       
      ▲ 그렇게 정치하면 재미있습니까. 즐거워 보입니다.(사진=뉴시스)
     

    손 후보의 ‘협박’이 먹히는 이유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존재 명분이 그만큼 취약한 탓이다. 이들은 열린우리당의 실패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 없이 적당히 얼굴에 분칠해서 위장개업 하는 것으로 위기를 넘기려 했다.

    지금의 취약한 구조는 이런 꼼수의 소산이다. 손 후보가 빠지면 이 당의 경선은 열린우리당 경선과 같아진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열린우리당+민주당 일부+손학규’다. 손 후보의 ‘협박’이 위력적인 이유다.

    잘못된 만남

    손 후보와 범여권의 만남은 얄팍한 정치적 계산에 따른 무원칙한 결합이다. 손 후보는 한나라당에서 후보가 되기 힘드니 당을 깨고 나간 것이다. 범여권 후보들이 죽을 쑤고 있으니 자신이 가면 무난하게 후보 자리를 따낼 수 있을 것이란 계산도 했음직 하다. 손 후보는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내가) 한나라당 1등이었으면 탈당 안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제가 한나라당의 간판이 되면 한나라당은 과거 수구정당이 아니고 냉전정당이 아니고 미래정당"인데 "그 한나라당에서 도저히 제 꿈과 뜻을 이룰 수 없으니까 나온 것"이라고 했다. 정당정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듯한 이런 언사를 듣고 있자면, 이 분이 정치학자 출신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든다.

    범여권은 범여권대로 손 후보가 필요했다. 어떤 사람들에겐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겐 경선 분위기를 띄울 ‘불쏘시개’가 필요했다. 전자는 손 후보의 캠프로 우르르 몰려갔다. 후자는 경선에서 손 후보의 반대 진영에 서 있다.

    ‘잘못된 만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손 후보의 과거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다. 손 후보의 탈당을 ‘통합’의 견지에서 반기던 범여권 사람들이 이제 한 편이 된 손 후보의 ‘한나라당’식 정체성을 공격하고, 이에 대해 손 후보쪽 사람들이 ‘나오라고 부추길 땐 언제고 막상 나오니 욕한다’고 반응하는 걸 보고 있으면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이런 코미디는 없다

    원칙, 철학, 이념, 정책 등 정당정치의 핵심적 가치를 참으로 주도면밀하게 빼 먹은 이들의 만남에는 상대를 꺾기 위한 정략만이 있다. 편법이 난무한다. 상대를 누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또 가릴 필요도 없다. 경선 룰은 후보들의 역관계의 균형점을 정확히 지시할 뿐이다.

    이런 풍토에서 ‘버스떼기, 박스떼기’는 당연한 결과다. ‘여론조사’ 비율을 높이면 달라지는가. ‘모바일’ 투표자가 많으면 달라지는가. 이용희 의원의 ‘동원선거’는 문제이고, 이광재 의원의 ‘동원선거’는 괜찮은가.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는가. 

    ‘통합’의 순기능이 있긴 하다. 구태정치의 통합은 구태정치의 통합적인 소멸을 촉진한다. 이게 효율적일 수 있다. 범여권의 기상천외한 구태 릴레이를 보며 짜증을 낸들 뭐가 달라질 건가. 그저 이것으로라도 위안을 삼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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