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80이 20에 지배당하는가?
        2007년 09월 20일 03: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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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80이 20에 지배당하는가? 이 세상이 80대 20으로 갈라졌다는 이야기는 이미 ‘상식’에 속할 테니, ‘그렇다면 왜?’라는 질문도 마땅히 던져져야 한다. 월간 <작은책>이 87년 노동자 대투쟁 20주년을 맞아 연 강좌의 강의록이 『왜 80이 20에 지배당하는가?(철수와영희)』로 묶여 나왔다.

       
     
     

    노동자 글쓰기 교육을 하는 안건모, 노동운동과 노동법 강의의 하종강, 반FTA 전도사 정태인, 역사 문제의 박준성, 여성 문제의 이임하, 진보교육의 전파자 홍세화가 그 강좌의 강의자였고 동시에 이 책의 필자들이다.

    그 면면이 익히 알려진 ‘스타 강사’들이므로 책이 어려울 리는 없다. 요즘 학력 검증 사태에 똥줄 타고 있다는 학원가 스타 강사들과 이들이 가장 다른 점은 어려운 이들이 부르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는 점이고, 수백 수천 번의 대중강연에서 체득했을 노하우들, 생생한 사례 같은 것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은 민중 피지배의 원인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앞서 살아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에 기대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후배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운 기둥에 기대고, 우리가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서 걸어가게 됩니다(박준성).”

    “우리나라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딱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죠? 노동자와 자본가. 자본가가 20퍼센트면 노동자가 80퍼센트인데 사람들은 대부분 자본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깨닫는 것. 이러한 노동자의 생각을 선거 때에만 갖고 있어도 우리 사회가 변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거지요. 즉, 20퍼센트의 생각이 80퍼센트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안건모).”

    “지금까지 몸에 익숙하고 교육받은 생각과 습관을 고치기는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여성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이 지금과 똑같은 사람인데 여자로 태어났다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생각해 보라’ 하는 충고는 우리 일상 생활에도 유용합니다.(이임하)”

    “한미 FTA 10년 되면 분명히 건강보험 없어집니다. 우리들의 자식들은 건강보험 없는 세상에서 삽니다. 10퍼센트 안에 들지 못하면 감기 걸려도 병원 못 갑니다. 지금 손가락이 곪아 병원에 가면 5,000원일 거예요. 주사 한 대 맞거나, 마이신 하나 먹으면 끝입니다. 하지만 병원에 못가면 손가락을 잘라야 돼요.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예요. 미국 슈퍼마켓에서는 간단한 수술도구를 팔아요. 알아서 수술하라는 얘기죠.(정태인)”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오늘을 저당 잡히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도 오늘 진정으로 충실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내 삶에 진정으로 충실할 수 없을 때 어떻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른 이를 위한 충실한 삶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홍세화)”

    “남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일찍 승진한 사람들이 ‘인생에 승리했다’는 자부심을 느낄지언정 죄 없이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는 것에 대해 열등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그것은 옳은 게 아닙니다(하종강).”

    역사의 문제, 지배이데올로기의 문제, 비자주성의 문제, 건강불평등의 문제, 불안정성의 문제, 무한경쟁의 문제. ‘스타 강사’들은 자신들이 겪어온 삶의 경험 속에서 민중 피지배 원인을 진단한다.

       
     
     

    <작은책>이 고른 여섯 명의 강사가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를 진단하는 것처럼 독자들 역시 자신의 삶에 기초해 이 책을 보면 된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사라면 굴종을 세뇌하는 제도교육의 문제점과 교육불평등을 덧붙이면 되고, 노동조합 간부라면 양날의 칼로 쓰이는 우리사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고, 민주노동당 당직자라면 소선거구제를 비판할 것이다.

    『왜 80이 20에 지배당하는가?』가 과학적 사회분석을 목표 삼은 책은 당연히 아니지만, ‘과학’의 이름을 빌어 비판에만 안주하는 책도 아니다. 책은 ‘왜’라는 제목을 달고서도 ‘그렇다면 어떻게’에 대해서도 말하려 한다.

    ‘역사의 문맹자들’이라는 박준성의 비판은 민중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일 수 있고, 안건모가 실천하는 ‘글로써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은 관광버스 타고 와 소주 한 잔 마시는 무슨 대회보다 훨씬 변혁적일 테고, 정태인이 폭로하는 미국 민중의 무시무시한 참상은 우리가 갈 길을 어렴풋이 잡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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