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횡포 2백억 날린 할머니의 설움
        2007년 09월 20일 03: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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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청와대에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성과보고회’가 열렸지만, 현실에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갖가지 횡포를 겪으면서도 마땅히 호소할 자리가 없다. 올해 72세인 이인애 할머니의 사례를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가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알 수 있다.

    이인애 할머니는 기술력으로 업계에서 인정받은 중소기업의 CEO였지만,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측의 하도급 횡포 때문에 갖은 고초를 겪었다. 7년 전 50여억원의 납품대금을 받지 못해 사업체는 부도가 났고, 할머니는 200억원의 전재산을 경매로 날린 뒤 연립주택 계단청소를 하며 10㎡(3평)짜리 옥탑방에서 살았다.

    납품대금 못 받아 부도, 3평짜리 옥탑방 생활

    지난해에 할머니는 70대의 노구를 이끌고 현대자동차 사옥 앞에서의 1인 시위와 관련기관에 진정·소송을 반복했고, 1인 시위 중에 상대측의 폭행을 당해 일곱 달째 병원에 입원 중이다. 최근에 하도급 분쟁조정기관인 대한상사중재원은 현대측의 잘못을 일부 인정했지만, 할머니는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 유망 중소기업 CEO였지만, 대기업의 횡포로 30여년간 일군 기업과 200억원의 재산을 날리고 옥탑방에서 살아온 이인애 할머니.(사진=진보정치)
     

    전북 익산에서 무일푼으로 상경한 할머니는 34년 전 대원전기밥솥을 만들어 온국민의 사랑을 받았고(우리나라에 전기밥솥을 처음 대중화한 상품으로, 중년층 이상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 자신감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계장비 제조업체인 정신산업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인천 남동공단에 자체사옥까지 보유한데다가, 대기업에 지하철 전동차·무인운반차·타워크레인을 납품할 만큼 기술력과 안정성을 인정받았다.

    ▶현대정공의 납품가 후려치기

    1999년 현대정공(현재 현대모비스)은 오스트리아의 기업으로부터 일종의 자동차 적재장치(차량 운반용 화차 리프팅장치)를 주문받았다. 현대측은 4개 업체를 실사한 끝에 정신산업에게 하도급을 주기로 했다. 총 납품가는 45억원이었지만, 현대측은 “추가로 물량을 발주하겠으니 가격을 낮추라”며 32억4000만원으로 값을 깎았다.

    ▶계약금 미지급

    현대측은 오스트리아 업체로부터 계약금을 미리 받고도 이인애 할머니와 정신산업에게는 “애초에 계약금이 없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도급법에 따르면 현대가 오스트리아 측에서 받은 계약금은 15일 내에 하도급업체에 지급해야 하지만, 현대측의 속임수에 넘어간 정신산업은 계약금조차 받지 않은 채 IMF 시기였던 1999년 12월까지 14억원을 제품생산에 투입했고, 2000년 5월말 납품을 완료했다.

    ▶설계 변경비와 추가비용으로 20억원 더 손해

    그동안 현대정공은 수백번의 설계변경을 요구했고, 결국 자신들의 설계 잘못으로, 납품받은 장치를 모두 폐기처분하고 말았다. 정신산업은 변경된 설계도에 따라 다시 장비를 제작·납품했으나, 현대측은 설계변경비와 추가비용을 책임진다고 하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정신산업은 20억원을 다시 손해 봤다.

    ▶추가 발주도 없고, 후려치기한 금액마저 결제 늦추기

    현대정공은 납품가를 후려치는 조건으로 추가 발주를 약속했고, 추가비용도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한 가지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또 정신산업은 50억원의 실비용을 들였지만 현대정공은 29억원만 지급하겠다고 했으며, 그마저 지급기일을 넘겼다.

    결국 정신산업은 2000년 8월18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70여명의 회사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할머니는 200억원에 달하던 재산을 경매로 날렸다. 어렵던 IMF 시절에 계약금 한푼 못 받은 채 원가에 못 미치는 부실 프로젝트를 성실히 이행했고, 굴지의 대기업으로부터 “장비만 납품하면 모든 비용정산과 함께 추가 대량납품을 보장한다”는 약속까지 받았지만, 건실한 기업이 하루아침에 망해버린 것이다.

    그후 7년간 이인애 할머니는 3평짜리 옥탑방에서 손녀딸(현재 중학생)과 함께 살았다. 청소 일을 하면서 각계에 억울함을 호소하던 중, 2006년 4월초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불공정 하도급문제를 다루는 민주노동당 민생지킴이(경제민주화운동본부)를 만났고, 하도급 거래에서 대기업에게 피해를 본 중소기업인 모임도 소개받았다.

    지난해 할머니는 현대모비스 사옥과 관계자 자택 앞에서 1인 시위를 거듭했다. 특히 작년 11월에는 1인 시위 도중에 현대측 관계자가 고용한 용역직원에게 폭행을 당해 1번 척추까지 다쳤다. 당시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용역직원의 진술에 따르면 현대 계열사의 총무부장이 시킨 것이니 고소하라”는 말까지 했다.

    이인애 할머니는 후유증 때문에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현재는 병원에 머물고 있다. 할머니의 사연은 언론보도로 나갔고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현대 측은 “비용을 정산하겠다”고 뒤늦게 약속했지만, 대금정산작업이 진행되면서 결재할 금액이 50억원대로 불어나자 오리발을 내밀기 시작했다.

    2007년 6월, 하도급 분쟁 중재기관인 대한상사중재원은 현대정공의 미지급 대금 18억8000만원을 정신산업에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불충분하나마 현대측의 하도급 불공정 거래 사실이 인정된 것이다(상대적 약자인 중소기업이 이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할머니는 만족하지 않고 현대측과 관계자에 추가소송을 준비 중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1000억원 이상을 횡령하고, 계열사로 편입될 회사 주식을 아들에게 싼값에 배정하고, 기업측의 로비로 계열사 부채를 탕감받으면서 공적자금까지 받았지만 지난 9월6일 실형 대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씁쓸한 추억을 상기시키는 판결이다.

    정 회장은 두 시간쯤의 사회봉사명령을 받았지만, 차라리 중소기업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인애 할머니의 병수발이나 드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사실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불공정 하도급 거래 처벌 강화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같은 관련법의 전면 개정이 시급하다. 우리나라 기업의 99.8%, 전체 고용인원의 87%, 제조업 전체 매출액의 51%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공정한 거래질서 위에서 대기업과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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