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권목표 정당인가, 저항단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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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9월 21일 09: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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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
     

    노무현 정권과 그 당파의 인기 저하로 진보파ㆍ좌파가 역풍을 맞고 있는 때에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권영길 의원은 범여권 사람들과 비슷하게 어려운 시기를 견뎌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하기에 달렸다고 본다. 노 정권과 그 당파에 실망한 국민들이 대거 야당인 한나라당에 쏠리기도 하겠지만 잘만하면 그 진보성을 띤 표의 일부를 민노당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분수령에서 물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흐를 수 있듯이 그 부동표를 끌어당기는 데에 정치의 기술이 있고 묘미가 있을 수 있다.

    자주파와 권영길 

    권영길, 심상정, 노회찬 3인의 경선은 참 좋았다. ‘흥행’이라는 용어도 사용하는데 흥행도 잘 됐고 국민에게 선전하고 교육하는 효과도 컸다. 특히 권영길, 심상정 양자의 결선투표는 일부러 꾸며도 어려울 만큼 그렇게 성공적일 수가 없다. 국민들에게 오랜만에 결선투표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 하고 보여주었으며, 앞으로 헌법 개정 논의에서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 도입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권 후보는 3수(修)를 하게 됐다. 당내에서는 3수가 신선도가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DJ가 3수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는 더러 있는 일이다. 특히 진보정당에서는 그렇다.

    예를 들어 미국 사회당의 노먼 토마스는 여섯 번이나 대통령에 출마하여 ‘다년생(perennial) 후보’란 딱지가 붙을 정도였다. 권 후보가 3수를 하게 된 데에는 당내 자주파(NL)의 조직적 지지도 있었지만 그의 원숙한 지도 역량 때문일 것으로 본다.

    심상정 예비후보는 참 참신하고 매력적이었다. 한미FTA 반대의 선봉장으로 이름을 얻은 데다가 튼튼하게 경제이론의 무장을 한 것이 돋보였다. 게다가 전세계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는 시대의 여걸이 아닌가. 민노당은 소중한 지도자 또 한 사람을 탄생시킨 셈이다.

    리얼리즘과 코리아연방공화국

    권 후보는 자주파의 조직표에 힘 입어 후보가 됐지만 다른 한편 당내에서도 비판이 있었던 대로 ‘자주파의 포로’가 됐다는 비아냥도 받고 있다. 자주파(NL)니 평등파(PD)니 하는 데는 물론 나름대로 발생사적 계보가 있고 이론적 프레임이 있겠지만 외부인으로서는 잘 모를 일이다.

    유력한 신문 가운데서는 드물게 민노당에 호의적이라 할 <한겨레>가 그 사설에서 "관념적이고 자폐적인 논의구조"라고 비판했는데 그런 느낌이다. 옛날에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에서 ‘과학적 사회주의’에로"라는 말이 있었다. 거기에서 차용한다면 ‘유토피아적 진보노선’이라는 혹평도 나올 수 있으리라고 본다.

    간단히 우선 두 측면을 보자. 북한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해방 후부터 쌓여온 민족 위주 주장들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이다. 이명박 후보에게 보내는 글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간단히 말하여 지금은 ‘분단체제’의 문제가 아니고 ‘북한문제’의 차원인 것이다.

    무슨 미련을 남겨둔 채 합작이다, 연합이다, 연방이다(권 후보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내세움)하는 말은, 내다볼 수 있는 아주 오랜 기간 안에서 외교적 수사(修辭)로서는 혹여 몰라도, 전혀 리얼리즘이 없는 이야기들이다.

    다만 실패한 체제인 북한을 동포애를 갖고 통 크게 도와주는 일이 남아 있는 것이다. 비핵화를 전제로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 일은, 솔직히 말하여, 우선 평화를 유지하면서 그 후의 사태 진전을 봐서 대응할 일일 것이다.

    용맹과 만용 사이

    미국에 관해서는 현실주의적일 필요가 있다. 권 후보는 ‘탈미(脫美)네트워크’를 내세우며 한반도 평화협정체결, 한미군사동맹 폐기, 비핵지대화, 남북한 상호군축 등을 주장한다. 6자회담에서 시사된 동북아 안보체제가 확립되기까지 한미동맹 체제는 장기간 유지되는 가운데 주한미군을 점차 철군하는 것이 수순이라고 본다.

    권 후보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처럼 미국을 벌벌 떨게 만들겠다" 운운 용맹도 발휘했는데 놀라울 뿐이다. 아직도 얼마간은 불안한 휴전상태에 있는 처지에 세계에서 손꼽는 석유부자나라 흉내를 낼 수 있겠는가.

       
     
     

    미국을 패권국가라고 모두 쉽게 이야기한다. 제국주의 국가라고 말하는 것은 때로는 꺼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표현하고 싶어 한다. 미국의 네오콘들 가운데도 미국이 제국주의라고 단정 지으며 "그래, 그래서 어떻다는 것이냐"고 오히려 대담하게 역습하며 공격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국주의란 용어를 조심하면서 변명조로 말하기도 하던 사람들로서는 오히려 얼굴이 붉어질 일이다.

    그런 미국의 성격 규정 문제는 덮어두자. 우선 미국의 군사력은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가공한 것이다(군사 예산만 보아도 세계의 나머지 모든 나라들의 총계와 맞먹는다). 경제역량도 대단하여 우리나라는 물론 공산국가인 중국마저도 미국에의 수출에 목을 매고 있는 형편이다.

    강대국들은 어쩔 수가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 청나라는 우리를 속국으로 대했고, 구한말에 원세개가 총독 이상으로 안하무인ㆍ방자하게 군림했던 것은 우리가 아프게 기억하는 일이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한반도 침략과 식민화는 잔인무도했다. 강대국이란 으레 그런 성향이다. 우리는 그런 주어진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현명하게 운신을 하여 타협도 하고 이용도 하고 하는 일을 생각해야만 한다. 결코 돈키호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집권 목표 정당인가, 저항 단체인가

    이때 꼭 말해둘 게 있다. 민노당이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냐, 또는 집권 여부에 관계없이 신념을 위해 순교하려는 저항단체냐 하는 것이다. 저항단체라면 항미나 반미를 하든 탈미를 하든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특히 부시 정권의 일방주의적 독선은 정말 역겹다. 최근에 미국의 경제대통령이라 불리던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그린스펀마저도 미국이 석유확보를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고 회고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집권을 생각하는 정당으로서는 그렇게 나이브하게 나갈 수는 없다. 국제정치의 ABC를 따라야 한다.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 하는데도 비슷하게 현실주의적일 필요가 있다. 반자본주의, 반신자유주의만으로 일관할 수 있을까.

    쉽게 한마디로 말하여 그런 것들을 일단 받아들이며 거기에 올라타고 그 시정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국제경제에 긴밀히 짜여 들어가고 있어 우리만의 것에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다. 모든 일을 국제적 맥락에서 생각해야지 외딴 섬의 일로 처리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사마귀가 수레를 막으려하는 격이라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말이 있다.

    <제3의 길>로 유명한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가 고든 브라운 수상의 노동당 정부에 조언을 하는 책을 냈다. 기든스 이론에 대한 찬반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영국 노동당을 위한 이론이지 한국의 현실에 관한 것은 아니다. 다만 기든스식의 현실성, 유연성, 지혜 등을 크게 참고로 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민노당의 고민을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오랫동안 젊음과 정열을 바쳐 이상으로 삼아왔던 전통적인 사회주의의 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고, 한국에 맞는 길을 찾는다는 것은 전인미답의 신개척지로 암중모색하듯 해야 하리라고 본다. 실은 민노당이 지금 땀 흘리고 싸우고 타협하며 그 작업을 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랜드 사태를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도 그렇다.

    권영길 모델은 무엇인가?

    최근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정치학자들 모임에 가보았더니 이명박 모델 대비 문국현 모델의 이야기가 꽤 흥미를 끌고 있었다. 단순화해서 보면 건설ㆍ대기업ㆍ성장위주 대비 지식ㆍ중소기업ㆍ고용위주의 도식인 것 같다.

    이명박 씨는 후보가 되었으니 그렇고 문국현 씨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런 데에 관계없이 이런 이명박 모델 대비 문국현 모델은 앞으로 논의가 구체화될 것이고 또한 발전시켜보아야 마땅하리라고 본다.

    그렇게 이야기하니 혹자는 두 모델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모두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위"처럼 신자유주의를 바탕에 두고서의 이야기가 아니냐고 한다. 글쎄, 세상이 온통 그렇게 흐르고 있으니 일단은 그 흐름에 타면서 발버둥칠 수밖에 없지 않는가.

    민노당은, 권 후보는, 이런 이명박 모델 대비 문국현 모델이 왜 관심을 끌고 있는지 골똘히 연구하기 바란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일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전기ㆍ수도까지의 민영화를 주장하는 측이 있는데 거기에 반대하는 것은 몰라도 재국유화를 운운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으로는 좋지만 아직은 실현이 요원하기만한 무상교육ㆍ무상의료 등을 내세워서는 현실적 적합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권 후보는 대선 경선 때부터 100만 민중총궐기대회를 중요 아이템으로 내세워 왔었다. 후보가 확정되고도 강조하고 있는데 세부계획을 듣기 전에는 무어라 말하기가 어렵겠다. 다만 지난날 동학이 충북 보은에서 교주신원을 위한 신도대회를 연 일이 있다는 전례가 떠오르고, 또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로 미국에서 우드스톡 음악 페스티벌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열려 청년문화의 극점을 보였던 일이 상기된다.

    성공만 한다면 비록 인터넷의 시대라 해도 충격파가 클 것으로 본다. 인터넷의 가상공간과 피부를 맞대는 현실세계는 아주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농민, 실업자, 비정규직 등 세력의 일대항의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옛 전쟁이야기에 몇십만을 ‘호왈(號曰) 100만’ 하는 식으로 묘사하는 방식의 100만이라면 몰라도 그만한 동원이 그리 쉽겠는가 싶다.

    민노당 권 후보의 선전(善戰)은 우리 정치의 진일보와 발전을 위하여 순기능을 한다. 앞으로 전개될 정책대결에서 좋은 정책을 제시하면 이명박 후보를 포함하는 다른 후보에게도 성찰적(省察的) 기회를 주게 될 것이며 국민의 계몽ㆍ교육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언론의 같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보았고, 그 후로도 지켜본 권 후보의 역량에 기대를 걸며 구각의 탈피와 한 차원 높은 단계로의 성장을 기대한다.

    궁하면 통한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는 원리이다.

    * 이 글은 월간 <헌정>에 동시 게재됩니다. 필자와 <헌정>의 동의를 얻어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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