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의 자기혁신 '겨울'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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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9월 18일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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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심상정은 승리자

    물론 가장 좋은 경우는 대선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었다. 그랬다면 당과 심의원 개인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주노동당은 굴러들어온 복을 내차버렸다. 누구의 탓을 떠나 그것이 당의 객관적 수준이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내적 관성과 ‘시대적,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전자가 승리한 것이다. 차이는 근소했지만 말이다.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리다?

    여론이 심상정을 반겼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여론은 ‘심바람’에서 참여정부의 파산과 민주노동당의 정체 속에서 공백으로 남은 빈칸을 채우는 ‘왼쪽으로부터의 응답’을 들었다. (‘오른쪽의 응답’은 바로 문국현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민주노동당 밖에서 정치인 심상정을 주목했던 첫번째 집단은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과 전문가 그룹이었다. 흔히 말해 ‘오피니언 리더’ 그룹이다. 이는, 한때 말했지만, 권영길, 노회찬의 ‘장작더미’ 인지도와 대비되는 심상정의 ‘도화선’ 같은 인지망이었다. 심상정이 결선에 올라서자마자 신드롬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심을 위해 말해줄 사람들”이 이미 당 밖에 많았기 때문이다.

    비록 대선후보는 되지 못했지만, 심상정 의원은 일부 언론이 ‘심상정 현상’이라 부를 만큼, 이번 당내 경선을 통해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분명하게 만들 수 있었다. 당과 함께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반쪽의 성공이지만 말이다.

    분명 이번 후보경선 이후 심상정은 ‘사람은 좋은데 당이 별로다’는 이야기를 듣는 정치인이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은 별로’라고 해도 사람이라도 보고 당에 대해 지지를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니, 장기적으로 보아 당에게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심의 ‘개인기’에 의해 당이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심바람’은 지속 중이다.

       
      ▲ 1차 경선 마지막 날 잠실 역도경기장.(사진=진보정치)
     

    2. 심상정 지지자들-본전 그 이상을 얻다

    심상정 후보가 심-노-권 3자 구도에서 결선 진출자가 된 것, 권영길과 결선에서 예상보다 근소한 차이로 권을 압박한 것,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에 해당한다.

    비록 ‘평당원 혁명’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것은 노회찬 선본이었지만, 실제로 그 이름에 합당한 것은 내가 보기에는 심상정 캠프이다.

    심상정 캠프는 ‘정파 대 정파’의 구도 ‘반 자민통의 구도’가 자신들이나 당이나 별 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고 때문에 구도를 ‘자주파 대 평등파’ 혹은 ‘반 NL’로 가져가지 않고 ‘정파선거’에 대한 원칙적 비판의 수준에서 말을 아낀 편이다.

    자생적 심상정 지지 그룹의 성격

    그러나 사실 당내의 심상정 지지그룹은 현재 민주노동당의 정파구도 속에서 그다지 기존 ‘정파’의 계선을 타고 형성된 것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민주노동당 당내에서 평당원 레벨에서 자생적 심상정 지지그룹이라 할 사람들이 형성된 것은 대충 2006년의 지방선거 직후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의 대체적인 공통분모는 원내 입성 이후 민주노동당의 정체와 위기를 이끌어온 내용적 빈곤, 컨텐츠와 비전의 부족, 그리고 그것을 채우기에는 너무도 퇴행적인 주도 정파들에 대한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번 경선 동안 심상정 캠프가 가동한 당내 조직자원은 세력으로 따져보면 20% 안쪽의 것이다. 민주노총 ‘중앙파’와 의원실이 조직된 역량의 핵심이었고, 나머지 당내 정치력 여백은 ‘의용군’으로 메워졌다. 실제로 당 조직에서 활동하는 ‘당내 평등파’ 계열 당직자나 활동가들은 노회찬 지지였거나 노-심 사이의 관망세인 경우가 더 많았다.

    게다가 심 캠프는 ‘대안성, 컨텐츠’를 부각하기 위해 그나마 ‘민주노총 중앙파’의 현장 조직세에 대해서는 선거전략상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당내의 심상정 지지자들은 개별적 참여의 형태로 각개전투를 벌인 것에 가깝다. 뒤집어 말한다면 심상정 캠프는 당원들의 자발성에 적잖은 덕을 보며 선거를 치른 셈이다.

    그러나 심상정 캠프가 자발적 지지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은 것은 아니다. 각개전투, 혹은 의용군처럼 심상정을 지지했던 당원들은 이번 대선후보 경선에서 바로 심상정을 통해 자신들이 단지 한 명의 당원으로서 주장하기에 벅찼던 여러 논점들에 대한 반향을 얻었기 때문이다.

    진지한 일선 당원들의 오랜 바람, 심상정 입으로 대신 말하다

    심상정 캠프가 이번 경선을 치르며 민주노동당에 던진 화두들 – 진보적 사회경제대안 수립, 비정규노동자들과의 결연의 강화, 당의 정치적 컨텐츠의 강화 등등… 그것은 지난 수년간 민주노동당 안에서 ‘당 걱정이 많은 진지한 일선당원들’사이에서 떠돌던 바로 그 고민들이었다. 그리고 이번 경선 과정에서 그 문제제기들은 ‘심바람’을 타고 일정 부분 의제화 되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고민들은 민주노동당 내부의 지분투쟁에 대한 논점이 아니라, 진보정당, 노동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의 ‘대사회적 유효성’에 대한 고민이었기 때문에, 당 밖의 우호적 비판들과 동연을 이루는 것이다. 즉, ‘심바람’을 통해 민주노동당은 일부나마 객관적 시선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얻었다.

    심바람이 민주노동당에 대해 던진 화두를 거칠게 정리한다면, 나는 ‘수권대안세력으로서 질적 혁신’과 ‘비정규정당’이라고 생각한다. 경선은 끝났지만 이 두개의 화두는 민주노동당의 발전에 대한 기본축으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미래에 대한 대안을 지닌 진보정당, 비정규노동자의 당, 컨텐츠를 통해 스스로를 입증하는 올바른 정파… 그동안 적잖은 당원들이 고민하던 당 혁신의 주된 화두들은 이번 경선 동안 심바람을 통해 이제 공적인 것으로 자리매김 할 기회를 얻었다.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심상정을 지지한 이들은 본전 그 이상을 얻은 셈이다.

    3. 민주노동당의 대선. 위기를 맞다

    그렇다. 심상정이 후보로 선출될 수 없었다는 게 이유이다. 당연한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후보를 민주노동당은 선택할 수 없었다.

    누구나 알듯, 여론이 심상정을 좋아한 것은 심상정이 ‘온건’해서가 절대 아니다. 도리어 경선기간 내내 ‘민주노동당이 과격하다는 세간의 평을 누그러뜨릴 온화함’을 주장한 것은 권영길 후보였다. 흔히 언론사의 재단으로 따져도 심상정은 노동운동 시절부터 ‘온건파’로 분류된 적도 없었고, FTA 문제와 관련해서 심상정은 골수 노무현 지지세력들에게는 전여옥과 급수가 비슷하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실력 없다는 평판은 민주노동당과 참여정부가 공유하는 악평이었다. 정태인 전 청와대 수석이 누차 언급한 것처럼, 전문관료세력을 전혀 통제할 수 없게 만든 사회적 기반과 정책적 식견의 부족, 아니 정확히 말해 그것을 문제로 느끼지도 못한 ‘권력화 된 386’의 저열함이 ‘자갈치 아지매’를 팔며 시작한 참여정부를 ‘FTA돌격대’로 만들었다.

    ‘뉴 불판론’의 부상

    앞서도 지적했지만, ‘87년 이후 20년’ 그리고 ‘민주정부 10년’이 민생파탄과 정치적 회의로 끝장나게 된 사태 속에서 사람들은 대안을 갈망했고, 그것이 ‘좌심우문’의 신드롬으로 현상한 것이다. 그것은 냉전보수와 맹목적 시장숭배자들, 대안이 없는 진보의 교착을 다시 한번 갈아야 한다, 합리적 자본가와 대안을 지닌 노동세력의 구도로 재편하자는 ‘뉴 불판론’의 부상에 다름아니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서 그것은 당내 자주파/NL-민주노총 국민파가 연합한 ‘세의 정치’를 뛰어넘지 못했다. 내부정치가 사회적, 객관적 요구에 대한 적응을 막은 명시적 사례를 남긴 셈이다.

    단순한 선거공학으로만 따져도,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 경선 동안 세간의 눈을 끈 변수는 ‘심바람’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결과가 ‘권영길의 조직세에 의한 신승’으로 기록된 이번 대선후보 경선의 결과는 심각한 것이다. 당연히 다시 당의 대선행보가 ‘무관심의 행진’ 속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명하다. 나아가 상황은 그 이하가 될 수 있다.

    바람은 기압의 차이가 만드는 현상이다. 심상정의 결선진출이 당내의 기압을 높혀 밖으로 바람을 불어 내 보냈다면, ‘도로 권영길’의 저기압이 결과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민주노동당의 대선을 책임진 사람들은 밖에서도 불기 시작했던 심바람의 ‘역풍’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심바람’은 민주노동당으로 여론의 시선을 끌어왔다. 당연히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치 또한 높여놓았다. 그러나 결과는 ‘혹시나-역시나’의 함정에 빠져버린 꼴이 되었다.

    민주노동당이 이 꼬여버린 대선행보를 두 달 이내에 수습할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때문에 권영길 당선자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논공행상’이 아니라 경선 기간 내내 당 안팎에서 항상 낮은 평가를 받아온 정책, 공약을 총체적으로 재검토하고 경선 기간 동안 제시된 당 혁신 구상들의 핵심을 받아 앉는 것인데, 어디에서나 그렇듯, 쉬운 일은 아니다.

    여론 지지율과 투표 지지율

    권영길 후보 진영은 이제 당내 경선도 끝난 만큼, 냉정하고 솔직하게 짚어봐야 한다. 여론지지율은 투표지지율로 절대로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더욱 그렇다. 안정성도 없이 널뛰듯 나오는 ‘최대 10%의 여론지지율’이 당장은 당선가능성이 없는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그대로 온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이다.

    해법은 가치와 비전으로 승부를 거는 것인데, 이번 대선정국에서 민주노동당이 시대에 걸맞게 발전된 가치와 비전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보인 것은 유감스럽게도 권 후보가 아니었다. 만일 권영길 후보 진영이 경선의 정리를 ‘대외용 상투적 화합론’과 ‘공신들의 논공행상’ 중심으로 진행한다면 당의 대선은 무관심의 계곡을 걷는 고난의 행군이 될 수 있다.

    4. 이번 선거는 ‘당내 좌파/평등파’의 패배이다

    일단 ‘용어정리’부터. 여기서 ‘당내 좌파/평등파’는 편의상 주로 도시지역의 지역조직과 중앙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좌파성향의 당직자, 당 활동가들, ‘전진’과 ‘혁신’으로 대표되는 당내 좌파 정파그룹의 영향권에 있는 이들을 지칭하기로 하겠다.

    노회찬 선본의 주류는 ‘혁신네트워크’(구 진정추계)였을 것이다.(설마 경선이 다 끝난 마당에도 계속 ‘평당원 혁명’을 주장할 것 같지는 않다.) 뿐만 아니라, ‘전진’ 계열 활동가들도 주요 당직자 대부분은 노회찬 진영에 가담해 있었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인가? ‘당내 좌파’의 주류는 이번 경선에서 노회찬 진영을 지지하거나 심, 노 두 후보사이에서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다. 물론 심상정 후보도 분류상, ‘좌파/평등파’ 계열의 정치인이다. 그러나 실제로 심상정 진영의 조직적 중추는 의원실과 노동운동 중앙파였고, 당내의 운동원이나 지지자 그룹은 ‘의용군’에 가까웠다.

    ‘트라우마의 정치’를 넘어서야

    인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여러 모로 노회찬 캠프는 기존 당내 좌파의 ‘주류적’ 프레임이 그대로 삼투된 선거운동을 벌였다. ‘운동권 정당대 대중과 소통하는 당’을 기저에 깔았을 ‘소통력’ 프레임, 권영길 진영의 자주파-국민파 연합 조직세와 맞부딪히자 ‘반 자민통’으로 대응한 것 등등…

    그러나 그 결과는 충격적인 결선 탈락이었다.

    그 결과가 충격적인 이유는, 사실 노회찬 후보는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번 민주노동당 대선 주자 1순위’의 정치인이었다는 점이다. 고백한다면 2006년 여름까지는 나 역시 2007년 대선은 노회찬을 내보내 치른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해두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후의 시간을 노회찬 후보가 잘못 보냈다는 것이다. 선거운동용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말해서 2007년 대선을 목표로 본선용 준비물을 들고 당 경선에 참여한 것은 심상정 캠프밖에 없었다. 심상정은 ‘당내 평등파’의 프레임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정파를 떠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를 들고 경선에 나섰다.

    상심이 클 분들에게 미안한 이야기가 될 것이므로, 더 길게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분명 이번 대선후보 경선은 ‘당내 좌파/평등파’의 패배이다. 그 핵심을 나는 ‘당내 좌파’의 컨센서스가 자주파/NL계열의 당 잠식에 대한 ‘트라우마의 정치학’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에서 찾고 싶다. 분명 그 과정은 조직내 민주주의 원칙을 적잖이 손상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당다운 당, 합리성과 상식이 통하는 당’에 대한 요구는 당연한 것이다.

    좌파는 얼마나 발전했나

    그러나, 민주노동당 좌파는 스스로에게 가만히 자문해 볼 때가 되었다. 귀찮은 NL/자주파들만 없으면 민주노동당이 오늘이라도 욱일승천 할 수 있다고 정말로 생각하는지. 하지만, ‘그때 그 NL’에 맞서며 자꾸 ‘도로 PD’가 되어버리는 민주노동당 좌파는 자신들조차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외치던 시절보다 얼마나 발전했는지 찬찬히 되짚어 봐야 할 때가 되었다.

    민주노동당이 얻은 2004년의 영광은 ‘진보세력 정치세력화’ 시대의 종결을 의미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당내 좌파/평등파들은 포스트-‘87체제, 포스트-2004년의 지형에서 당이 나아갈 문제에 대해 얼마나 무엇을 생각하고 또 공급했는가. 어떤 화두를 들고 있는가? 스스로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조직세에서 밀리는 입장에서 확고한 의제 선점도 없다면, 주도권 탈환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므로.

    자주파/NL를 비난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주도권을 쥐고 싶다면 그 이상을 해야 한다. 자주파/NL의 ‘패거리 정치’를 비난한다면 스스로부터 ‘컨텐츠 공급능력으로 의제를 주도하는 긍정적 정파’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증거를 만들어야 한다. 현실적이지 않은 것은 좌파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민주노동당의 좌파/평등파에게 이 겨울이 자기혁신의 겨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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