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길인가, 문국현인가,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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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9월 17일 08: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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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난 대선에 노무현을 지지했다. 물론 호되게 당하고 쓰라린 교훈을 얻게 되었다. 애매하게 차선을 택한다고 하는 것이 결코 좋은 것도 아니고, 인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장기적으로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주노동당 경선은 권영길 대표의 승으로 끝이 났다. 보기에 따라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겠지만, 이건 현실이다. 현재로서 2007년 대선에 임하는 다른 진보정당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지금부터라도 다른 방식의 후보단일화 절차가 진행되는 것도 현실성이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 길이다.

    2007년 이후의 한국 정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고, 또 어떤 새로운 등장과 분화 그리고 통합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사람들 앞의 세 가지 길

    이를 기본 전제로 놓고 보면 현재 사람들 앞에 놓은 선택의 길은 세 가지다. 권영길 후보의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것인가, 문국현의 새로운 흐름을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사태의 흐름을 지켜볼 것인가.

    시민사회에 속한 많은 사람들과 비교적 중립적으로 사태를 관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선택 모두 쉽지 않은 길이고, 그 어느 것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선택이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어야 하듯이, 우리는 그 어느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 선택 중에서는 물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선택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로서는 어떤 판단도 내리기 쉽지 않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투표장에서의 선택을 결정하거나, 그 이전에 어떤 종류의 정치적 행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시간과 정보가 필요할 것 같다.

       
      ▲ 문국현 바람이 불어올 가능성이 높다. 진짜경제와 가짜경제론을 설명하는 문국현 대선 예비후보(사진=뉴시스)
     

    그러나 객관적인 정황들만을 모아볼 때에는 현재로서는 ‘문풍’이라고 불리는 문국현 지지 바람이 강하게 불 것이 당연해 보이고, 만약 그가 자신이 제시한 일종의 로드맵에 따라 새로운 신당 창당의 과정을 어떻게든 해결한다면 이 흐름은 태풍의 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인 국민의 눈으로 본다면, 문국현은 예전의 노무현 지지자들의 상당 부분을 흡수하며, 퇴행적으로 보이는 통합신당 그리고 정파 논란에 휩쌓인 것처럼 보이는 민주노동당에 비해서 ‘합리적인 대안 세력’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문국현 바람 태풍의 핵 가능성 높다

    우리나라 국민은 집권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세력에 대해서는 대단히 냉혹하며, 유럽식 다당제보다는 미국식 양당제에 더 익숙한 국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10월 말 혹은 11월에 문국현 바람이 강하게 분다고 가정할 때, 이런 흐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실상 현재로서는 민주노동당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통합신당의 경우, 문풍이라는 것은 결국 그들의 또 다른 도피처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자, 이 상황에서 어찌할 것인가? 물론 나는 정치동학에 익숙지 않고, 게다가 민주노동당 내부의 분파나 계파들의 갈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아무런 관심도 없다. 다만 2007 대선 이후에도 이 땅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므로, 좌파들의 정치 진영과 현실적 영향력이 근본부터 붕괴하지 않는 것에는 관심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는 그렇게 어려운 내용들은 아니다.

    1. 노회찬, 심상정 공약을 통합해야

    이건 당연한 일이고, 단순하며, 하나마나한 얘기 같아 보이지만, 생각보다는 어려운 일일 것 같다. 누가 선거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얘기를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노회찬이 가지고 있던 몇 개의 구체적인 공약과 심상정의 부분별 각론 중에서는 상당히 훌륭한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모아내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보다 넓게 보면, 한국 시민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자체 프로그램들 중 상당히 구체화되어 있는 것들도 많이 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공약체계에 대한 논쟁과 함께 통합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2. 공격적 의제 제시 필요

    문국현 진영은 아직까지 총론을 내세우는 것 이외에 구체적인 대안 프로그램을 사회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상태이다. 권영길 후보는 공약과 프로그램을 통해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아직 열려 있다. 이 공간에 후보 혹은 후보의 대변인 등을 폭넓게 활용해서 더 많은 토론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3. 보다 구체적인 단어, 정책들을 보다 많이 입에…

    권영길 후보의 담론은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지나치게 총론적이며, 원칙적인 내용이 많다. 그래서 그를 뒷받침하는 세력들이 대안 세력이며, 집권 능력을 그다지 갖추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4년 전의 권영길은 부유세와 무상의료와 같이, 원칙적이면서도 상당히 손에 잡히는 것들을 얘기하였다.

    이제 그 원론적인 담론들을 뛰어넘어 보다 손에 잡히는 얘기들을 보다 자주 입에 올리며, 지난 4년간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문국현 후보의 강점은 구체성이다. 이것을 추상으로 우회하려는 전법은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에서는 그렇게 효율적일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코리아연방’이라는 말로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1~2개월 내에 구체화될 문국현 후보 진영의 아주 구체화된 프로그램에 밀려서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4. 반이명박, 반문국현으로는 프레임을 못 넘는다

    이명박은 이미 떠올라 있는 대척점이고, 문국현은 이제 떠오르게 될 대척점이다. 대척점만을 직시하고, 대안세력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프레임을 넘어서기 어렵다.

    어차피 이번 선거는 모두가 반이명박, 반한나라당을 내세울 선거이다. 반이명박으로는 이명박 필승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반이명박의 흐름을 만들 문풍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간단한 게임 구조상, 그렇게 되어있는 셈이다.

    이명박, 문국현에 반대하는 것이 아닌, 권영길 후보와 그가 이제 대선에서 상징하는 진보라는 별도의 진영의 존재를 알리고 가능성을 보이는 프레임 싸움을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방법은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이명박에 반대하는 것만으로, 그리고 문국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문풍에 휩쓸리게 될 확률이 아주 높다. 이것은 객관적인 판단이다.

    내가 지금 권영길 후보에게 기대하는 것은, 한국 진보진영의 숙원들을, 예를 들면 생태주의자들의 새만금 물길내기, 혹은 농업진영에서의 유기농업으로의 전환 기반마련과 같은 몇 가지 점들을 최소한 대선이라는 공간에서 다시 국민적 이야기거리로 환기시키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막연한 문풍에 휩쓸리게 될 일반국민들이 진보적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이런 힘들이 결국 투표율로 모이게 되는 상황이다.

    권영길 후보의 당선을 축하드리고, 선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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