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만원 세대' 바리케이드 치기 시작?
        2007년 09월 14일 11: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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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석훈, 박권일이 쓴『88만 원 세대』가 던진 세대 불균형에 대한 문제제기가 사회 각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아직 대대적인 논의가 전개될만한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이 큰 관심을 보였고, 『88만 원 세대』가 다루고 있는 10대와 20대들이 속한 고등학교와 대학교 현장에서도 이 책을 교육 자료로 채택하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88만 원 세대』가 나오자 일간지들은 더러는 짤막한 책소개로, 대부분은 많은 지면을 할애한 서평으로 이 책을 다루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제는 책에 관련된 지면 이외에도 몇몇 신문의 칼럼에서 서로 다른 주장의 논거로 인용된다.

    88만원 세대에게 비친 이명박의 747 공약

    가장 발빠르게 나선 <조선일보>는 「포스트 386의 봉기(8. 24)」라는 칼럼에서 ‘대선을 통해 88만 원 세대가 386세대를 응징하자’는 취지의 독특한 주장을 펼쳤다. 반면 <경향신문>은 88만 원 세대와 기성세대의 연대를 호소하는 「IMF 목격한 불행한 청년들 ‘88만원 세대’ 우리가 껴안자(8. 29)」를 싣는다.

    그리고 <중앙일보>는 「불황형 사업의 ‘불황’을 갈망한다(8. 30)」에서 “최근엔 20대 비정규직 월급 평균액에 빗댄 ‘88만원 세대’라는 서글픈 신조어가 나왔다”고 말한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88만 원 세대’를 들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요즘 내가 통독한 책에 『88만 원 세대』라는 게 있다. …누구나 비정규직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데 그런 선상에서의 젊은이들의 밑바닥 삶이다. ‘7%성장 – 4만 달러 국민소득 – 7대 강국’ 운운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절박한 문제에 그런 그림의 떡과 같이 보이는 슬로건만으로 대처할 수 없는 것이다.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가 물이 말라가서 죽게 되었다고 구명을 요청하는 판에, 개울에서 수로를 내어 물을 끌어다 주겠다고 할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라나. 88만원 세대 등에게는 ‘7.4.7 구상’이 그렇게만 비춰질 것이다. 이 후보가 보다 자상하게 개혁적이 되기를 기대한다.” – 「한나라당 대선후보 이명박 씨에게」, <프레시안>, 8. 30

    언론이 기사거리나 비평의 논거로 이 책을 이용하는데 비해, 학교 단체 노조의 반응은 더 직접적이다.

    연세대 사회학과는 이 책을 교양선택 과목의 교재로 채택했다. 부경대 경제학과와 계명대 역시 학생들의 교재로 이 책을 쓰고 있고, 성공회대는 채택 여부 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88만 원 세대』 특강을 요청했던 서울의 한 대학에서는 홍보 포스터까지 만들었다가 학장의 지시로 강의가 취소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연대, 부경대, 계명대 등 교재로…’그날이 오면’ 베스트셀러

    서울대학교 앞 사회과학 전문 서점인 ‘그날이 오면’에서는 이 책이 짧은 기간 동안 사회과학 서적 중 가장 많은 100여 부가 팔렸다. 서점 관계자는 “책 내용이 학생들에게 맞고 시사적이어서 학생들 스스로 세미나 자료로 쓰는 듯하다”고 전해준다.

    『88만 원 세대』가 다루는 세대에는 대학생 뿐 아니라 고등학생도 포함된다. 고교 교사들도 이 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0월 초에 저자인 우석훈 박사의 강의를 계획하고 있는 ‘전국사회교사모임’ 고등분과의 장정환 대표는 『88만 원 세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사모임에서 노동 문제를 공부하면서 ‘연대’가 가장 중요하다는 나름의 결론을 얻었다. 『88만 원 세대』 역시 연대를 말하고 있고, 학생들 가르치는 교사로서 세대 정의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 가르칠 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우석훈 박사로부터 직접 듣고 싶어 강의를 청하게 됐다.”

    전북 익산의 한 공업고등학교에서는 『88만 원 세대』를 구입하여 도서관에 비치할 예정이고, 여론에 빠르게 대처하는 사교육 시장에서도 주간지(주간 한국) 논술란에 ‘88만 원 세대’를 읽기 자료로 소개하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고교 교사 모임 저자 특강…공공노조 학습 계획

    ‘르뽀작가모임’은 우석훈의 강의를 계획하고 있고, ‘연구공간 수유 + 너머’에서는 『88만 원 세대』를 포함한 세 권의 책으로 ‘책읽기 운동’을 시작했다. ‘연구공간 수유 + 너머’가 선정한 나머지 두 권의 책은 KTX 여승원들의 『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갈무리)』와 르뽀문학교실의 인터뷰집 『부서진 미래(삶이보이는창)』다.

    노동조합도 『88만 원 세대』의 문제의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공공서비스노조는 조합원들에게 재판매하기 위해 노조 차원에서 구매한 20권이 다 나가 더 구매할 계획이라고 하며, 공공운수연맹 이근원 조직실장은 정치위원회 차원의 공동 학습과 강의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흐름은 일본 등 외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400만 부 가량이 발간되는 <마이니치(每日新聞)>에 다음 주 서평이 실릴 예정이고, ‘동방신기’가 검색어 1위인 일본의 한류 사이트(innolife.net)에서는 『88만 원 세대』를 2,600엔(약 20,000원)에 팔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의 우익이 집결한다는 한 사이트(TV11.2ch.net)에서 『88만 원 세대』의 주요 내용을 한국을 비방하는 논거로 이용하고 있는 사실이다. 한편, 『88만 원 세대』 일본어판 출간도 추진되고 있다.

    필자인 우석훈과 박권일의 입장에서든, 출판사인 <레디앙>의 입장에서든 책이 많이 팔리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책 팔리는 것보다 더 좋은 건 당연하게도 ‘88만원 세대’의 불행이 사라지는 것일텐데, 지금으로서는 그 전망이 밝은 편이 아니다.

    세대 간 연대로

    『88만 원 세대』가 한 달째 사화과학 베스트셀러 2위를 점하고 있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이 책 구매자 중 20대의 비율은 25%라고 한다. 인구 비례를 따지자면 적은 비율도 아니지만, 그들이 이 책을 읽기 바라는 마음에 비추어 보면 아직은 한참 모자란다. 인터넷에 ‘88만 원’을 치면 『88만 원 세대』와 함께 20대의 최고 소비품이라는 88만 원짜리 프라다폰이 뜨는 현실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88만 원 세대』가 아무리 “짱돌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치라”고 선동해도 자본주의 문물을 향해 벌려진 손이 짱돌을 움켜쥐려 앙다물어지기까지는 5월의 전남도청에서 6월 서울시청까지만큼의 시공간의 궤적이 가로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88만 원 세대』의 문제의식 중 하나인 세대 연대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겨울 대선에 나설 세대와 여전히 ‘88만 원 세대’를 가르치는 역할을 맡고 있는 386세대에게 함께 깨우침이라는 연대의 과제가 남겨져 있는 것이다. 대통령선거 연설에서, 교단에서 그리고 사회 곳곳 노동의 현장에서 그들은 ‘88만 원 세대’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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