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위에서 비정규직 눈물을 보다
        2007년 09월 14일 11: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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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땡볕더위는 가라앉았지만 한낮의 기온은 30도를 육박했다. 추석 명절을 코앞에 두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차량의 매연으로 금세 목이 답답해졌다. 이날 아침 GM대우 부평공장을 출발한 노동자들이 하필이면 차가 가장 많다는 경인국도 길로 걸어오고 있었다. 13일 오후 2시 서울 구로동 롯데마트 앞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비정규직 철폐’라고 씌여진 노란 몸벽보를 앞뒤로 차고 한 손에는 경찰 후레쉬봉을 든 노동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서쌍용(37), 아산공장 해고자 김준규(33) 조합원이 구김살 없는 환한 미소로 반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었다. 비정규직 연대투쟁으로 해고된 GM대우 김학철 전 창원지부장과 엄상진 조직실장이 이날까지 8일을 함께 걸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장에 언제나 함께 하는 연정 르뽀 기자도 3일째란다. 앞에서 연신 카메라를 눌러댄다.

    울산에서 서울까지 1,500리를 걷다

       
      ▲ 지난 8월 27일 울산을 출발해 13일 서울에 도착한 ‘비정규직 철폐’ 도보투쟁단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현대-기아차 본사가 있는 양재동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사진=연정 르뽀기자)
     

    지난 8월 27일 울산공장을 출발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창원, 광주, 전주, 아산, 화성, 안산, 인천을 거쳐 18일만에 마침내 서울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얼굴은 구리 빛으로 검게 그을렸지만 표정만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았다.

    이들은 아침 7시부터 밤 7시까지 하루 12시간씩 걸었다. 집회나 선전전 등으로 조금 늦어진 날은 야간 행군을 하기도 했다. 적을 때는 하루 35Km 정도 걸었고 속도를 바짝 낼 때는 50Km가까이 걷기도 했다.

    "다들 발목과 무릎이 성치 않아요. 하지만 시작한 건데 끝을 봐야죠. 견딜만 합니다. 근데 김학철 동지가 발목과 무릎이 많이 부어 걱정이에요." 무릎보호대까지 착용하고도 말없이 걷기만 하고 있던 김학철 전 지부장에게 몸 상태를 물으니 웃음을 지어 보이며 괜찮다고 말한다.

    구로한의원에서 무료 진료를 받다

    고려대 구로병원 앞을 지나고 있었다.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현장을 방문해 진료를 하고 무료로 한약을 지어주는 등 인술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한 구로한의원 방향이었다. 그냥 가겠다는 이들을 잡아끌고 한의원으로 들어섰다.

    병원에 들어서자 권태식 원장과 간호사들이 환하게 맞는다. 병실이 꽉 차 권 원장은 소파로 나와 김학철 전 지부장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진료를 했다. 김학철 전 지부장은 무릎과 발목에 봉침을 맞았다.

    진료비를 내겠다고 하니 웃으며 말린다. 도보투쟁단의 걱정에 진료는 20분만에 끝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졌던 가리봉 5거리를 지나자 온통 중국어 간판이다. 한 할머니가 이쑤시개, 빨래집게 등을 펼쳐놓고 졸고 계시다. 하루 온종일 있어도 1만원 어치도 팔리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국의 거리를 걸으며 이렇게 가난한 노동자들, 가난한 민중들의 모습을 온 몸으로 체감했다. 매일 매일 전국의 거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보았다. 비정규직보다 더 열악한 노동자들의 삶을 느꼈다.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보다

    "공장에서 쫓겨나 처절하게 투쟁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중소공장 노동자들을 만나고, 길거리에서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김준규 조합원은 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길이 이들에게 향한다. ‘비정규직 철폐 불법파견 정규직화 해고노동자 원직복직’ 울산의 공단에서부터 서울 거리까지 수만, 수십만의 시민들이 이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음료수를 건네기도 했고, 열심히 하라며 격려하기도 했다. 그 힘으로 18일을 견뎌온 것이다.

    5시 봉천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금속노조 현대차전주비정규직 김형우 지회장과 아산사내하청지회 문귀환 비대위원장이 달려와 얼싸안는다. 마지막 1박2일을 같이 하기 위해 이날 낮부터 이 자리에서 기다렸단다.

    8명으로 늘어난 도보행진단은 6시 40분 경 사당역에 도착했다. 하루의 힘겨운 노동을 마치고 귀가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노동자들의 줄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숫자를 세어보니 수원역 방향 버스에 140명이 줄을 서 있었다.

    "시골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네요. 서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더 힘들고 불쌍한 것 같아요." 김형우 지회장의 얘기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 서울 구로한의원 권태식 원장이 김학철 전 지부장을 치료하고 있는 모습
     

    밤 8시가 되어서야 도보행진은 끝나고

    사당역을 지나 최종 도착 장소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를 향해 3km 가량 더 걸은 후 이들은 숙소를 잡은 사당역으로 돌아왔다. 밤 8시였다.

    6시간밖에 걷지 않았는데 다리는 후들거리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파왔다. 등줄기는 온통 땀으로 범벅이었다. 식은땀까지 흐르는 것 같았다. "동지들이 이렇게 고생하는 줄 몰랐네요. 내가 걸어보니까 정말 고생스럽네요. 진짜 대단합니다."

    김형우 지회장의 말에 서쌍용 조합원은 "첫날과 둘쨋날이 제일 힘들더라구요. 셋쨋날부터는 좀 괜찮아져요."라며 웃는다.

    마침 서쌍용 조합원이 아내와 통화를 한다. 그는 2003년 울산공장에서 해고돼 지금까지 복직되지 못했다. 노동단체에서 일하는 아내의 작은 수입과 노가다로 초등학교 5학년 아이와 함께 근근이 버텨왔다.

    홀로 버는 아내와 아이에 대한 해고자의 미안함

    "아내가 고생 많았다며 마무리 잘 하고 울산에서 보자고 얘기했어요. 많이 미안하죠. 울산 가서 빨리 노가다 해서 생계를 유지해야죠." 그의 표정에 홀로 벌어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아내와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저녁 술자리에 손님이 늘었다.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김종암 부지회장, 금속노조 오승재 비정규사업부장이 연락을 받고 찾아왔다. "비정규직 철폐와 해고자 복직을 위하여"라는 우렁찬 외침과 함께 소주를 연거푸 들이키자 아픈 다리가 씻은 듯이 나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죽을 것처럼 힘들다가 이렇게 저녁에 좋은 동지들과 진하게 술 한잔 하면 피로가 싹 사라져요. 이 맛 때문에 지금까지 버텨온 게 아닌가 싶은데요." 엄상진 전 조직실장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동지와 소주라는 마약으로 18일을 버텨온 것이었다.

    동지와 소주라는 마약으로 버티다

    "전국을 돌면서 보니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상당히 심했어요. 정규직 활동가들의 연대로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한 이 동지들은 비정규직과 연대투쟁하다가 해고된 정규직 동지들이에요. 우리 운동의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쌍용 조합원이 정규직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14일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을 끝으로 19일 간의 도보대행진은 끝이 났다. 1,500리 600km에 이르는 대장정이 이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대공장을 거치고 오는 과정에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냉소적인 모습을 보면서 정말 우리 운동에 희망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함께하는 걸 만들었다는 것, 지역마다 우리와 함께 했던 수많은 동지들이 있었다는 것, 막걸리라도 대접하며 함께 했던 동지들을 보면서 희망을 보게 됐죠.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게 됐습니다."(김학철 지부장)

    울산에서 서울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흘린 눈물을 온 몸으로 느끼며 한 걸음씩 걸어왔던 노동자들은 이제 울산과 아산, 창원으로 돌아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기 위해 또 한 걸음씩 걸어갈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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