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 "국정운영 청사진 묻는데 철학만"
    권 "교과서적 정책 안돼, 철학이 중요"
        2007년 09월 13일 07:02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결선 투표 마감을 이틀 앞두고 심상정 후보와 권영길 후보가 맞붙었다.

    두 후보는 13일 오후 1시 30분부터 120분간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맞장 토론’에서 본선경쟁력, 당의 혁신 방안 등을 놓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권 후보가 공격적인 분위기를 주도했다. 작심하고 토론에 나선 듯했다. 에두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했다. ‘정파투표’나 ‘네거티브 선거’ 등을 말 할 때는 언성을 높이고 낯을 붉혔다.

    심 후보는 자세를 한껏 낮췄다. "당을 여기까지 발전시켜 온 권 후보의 지도력을 존중하고 존경한다"는 식의 표현을 여러 번 썼다.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예민한 주제를 토론의 수면 위로 끌어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권 "정책만으로는 불충분" vs 심 "집권정당의 능력 보여줘야"

    이번 대선의 구도와 관련, 두 후보는 ‘한나라당 대 범민주노당’, 혹은 ‘이명박 대 민주노동당 후보’의 대결이 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그러나 여기서 승리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시각차를 보였다.

    권 후보가 포문을 열었다. 권 후보는 "이명박 후보에 맞서 심 후보는 경제정책으로 가는 것 같다. 정책도 중요하지만 변화하는 서민들의 심정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고 했다.

    또 "서민들은 워낙 살기 어려우니까 이명박 후보가 잘 해내겠지 하고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다"면서 "심 후보는 여기에 교과서적 경제 정책으로 맞서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철학이 중요하다"고 했다.

    요컨데, 국민들의 이명박 후보에 대한 기대는 이 후보의 ‘경제정책’ 때문이 아니라, ‘경제’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 후보의 복합적 이미지에 따른 것인데, 심 후보는 이를 ‘정책’의 문제로만 좁혀 단선적으로 대응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심 후보는 ‘정책’은 곧 ‘대안’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정책’은 그저 개별 정책의 ‘더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집권정당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라는 얘기다.

    심 후보는 "국민은 민주노동당에게 ‘너희 주장도 옳고 너희가 깨끗한 것도 맞는데, 너희에게 국정 운영 능력이 있느냐, 경제를 아느냐’ 하는 것을 묻고 있다"면서 "(국민들은) 국정 운영의 청사진과 세부 프로그램을 묻고 있는데, (권 후보처럼) 철학을 답변하는 게 지금 민주노동당의 한계"라고 꼬집었다.

    권 "정책을 어떻게 알릴 거냐" vs 심 "어떤 정책과 비전이 있느냐"

    말할 것도 없이 이 논쟁은 당의 후보자로 누가 적임자냐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정책’에 대한 권 후보의 지적은, 오랜 경륜을 통해 정치적 무게와 대중적 이미지를 형성한 자신이야말로 이명박 후보의 맞상대로 적임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권 후보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좋은 정책을 가지고 어떻게 다가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또 "서민경제 좋다. 심 후보나 저나 말하는 게 대부분 같다. 그런데 이것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알릴 거냐, 쉽게 말할 거냐(가 중요하다). 선거운동 방식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권 후보는 자신이 갖는 ‘대중적 설득력’의 원천으로 신뢰와 안정감을 꼽았다. 권 후보는 "일반 국민들은 ‘민주노동당 가장 바른 말 한다. 서민 위해 싸우는 정당이다’고 한다. 그런데 대선에서는 표가 안 온다. 신뢰와 안정감(이 없기) 때문"이라며 "민주노동당은 과격하다는 인상이 있다. 누가 풀어야 하나. 권영길이다. 권영길은 당의 옳은 정책에 신뢰와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심 후보는 ‘정책’과 ‘대안’이 ‘있음’을 전제로, 그것의 대국민 설득 방안을 강조하는 권 후보의 논법에 동의하지 않았다. 심 후보는 권 후보의 정책에는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구체적 대안과 실천 프로그램이 생략되어 있다고 했다.

    심 후보는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에 요구하는 것은 기존의 철학을 실제 실현할 수 있는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프로그램과 능력을 갖춘 후보"라며 그 반증으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전문가들의 머리를 빌린’ 역대 대통령들의 경제 정책 실패 사례를 열거했다.

    심 후보는 "이명박, 문국현, 심상정 3자대결이 국민들이 원하는 대선의 구도"라며 "권 후보에게 송구스럽지만 심상정이 제기한 서민경제는 이명박 토목경제 재벌경제 맞수로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요컨데, 권 후보는 자신이 쌓은 정치적 자산이 ‘옳은 정책’을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봤다. 반면 심 후보는 이번에 ‘옳은 정책과 대안’을 내놓을 때 당의 정치적 자산을 비약적으로 키울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권 "길거리 시민 반응 보라" vs 심 "음지 지지율 기대면 필패"

    두 후보의 이런 인식차는 ‘본선경쟁력’의 기술적 근거를 둘러싼 공방으로 이어졌다. 권 후보는 현재의 국민적 인지도와 지지도를 ‘본선경쟁력’의 주요 근거로 내세웠다.

    권 후보는 "심 후보와 저, 둘이 시장통이나 길거리 나가서 시민들 반응 보면 알 수 있다. 심 후보가 (국민들의) 반응을 보면 안타깝고 마음이 쓰라릴 것이지만 ‘저런 게 본선경쟁력이구나’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여론조사 기관에서 여론조사 할 때 (조사 대상자를) 50명 넣는다. 심 후보는 (지지도가) 안 잡힌다. 그런데 권영길은 2% 정도다. 정동영 후보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 3자 가상대결에서 10% 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권영길은 이미 300만 표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심 후보는 "국민들이 주목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음지에서의 지지율은 오십 보 백 보이고, 이것으로 본선경쟁력을 가늠한다면 대선승리를 염원하는 당원들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라며 "음지가 아니라 양지로 나오는 전략을 택해 새롭게 주목받는 승부수를 택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심 후보는 자신의 특장으로 ‘경제에 강한 후보’, ‘당의 변화와 혁신을 상징하는 후보’, ‘여성후보’ 등을 내세우며 "권 후보보다 많이 부족하지만 당의 승리를 위한 전략적 승부수로서의 요소는 제가 더 많이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 "노 네거티브 사과 의향 있나?" vs 권 "어떻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나"

    당의 혁신에 관한 주제에서 토론은 뜨거워졌다. 이 주제에선 특히 권 후보가 낯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는 장면이 여러 차례 연출됐다.

    심 후보가 먼저 예민한 구석을 찔렀다. 심 후보는 1차 경선 당시 노회찬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문제 삼았다. 심 후보는 "경선 진행 과정에서 권 후보 캠프의 노 후보 진영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가 과도했다. 권 후보의 리더십 중에서 대표적인 게 통합력이고, 경선 이후 하나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과도한 네거티브 공세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자신을 노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의 배후로 지목하는 듯한 심 후보의 발언에 권 후보가 발끈했다. 권 후보는 "(노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는) 누가 했든지간에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중단하라고 했었다"면서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서 ‘권 지지층에서 (네거티브를) 했다고, 과도했으니 사과하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고 얼굴을 붉혔다.

    이에 심 후보가 "(권 후보께서) 굉장히 아프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하자, 권 후보가 "권영길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언성을 높이면서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그러자 심 후보는 "(권 후보의 발언이)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권 후보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권 후보에 대한 평소의 존경심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네거티브의 주체를 권 캠프가 아니라) ‘권 후보의 지지자로 예측되는’ 이라고 정정하겠다"고 발언의 톤을 낮췄다.

    그러면서도 "많은 당원들이 경선 과정에서 양 후보 진영간으로 예측되는 공방, 특히 동영상까지 동원된 네거티브 공세가 많은 상처를 주고 당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겠나 걱정하고 있다"면서 "권 후보의 리더십 가운데 중요한 것이 통합적 리더십이기 때문에 통합을 저해하는 이런 공세에 대한 입장을 물은 것"이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이에 권 후보는 "(1차 경선 당시) 저의 지시로 상임본부장이 (네거티브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면서 "왜 저 자리에서 지나간 것을 끄집어내고 환시시키려고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심 후보의 질문은) 향기롭지도 못하고 선거진행을 위해서도 슬기롭지 못하다"고 거듭 지적했다.

    권 "나를 지지한 50%는 꼭두각시인가" vs 심 "정파의 낡은 구도와 대세에 의존했다는 것"

    두 후보는 ‘정파투표’ 문제에서 재차 충돌했다.

    권 후보는 최근 심 후보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권 후보는 당 발전의 퇴행적인 정파 투표와 연계했다’고 비판한 것과 관련, "50%의 당원이 권영길을 지지했다. 이 50%가 정파적으로 투표했다고 폄하해선 안 된다. 차라리 권영길을 공격하고 비난하라. (심 후보의 비판은) 권영길을 지지한 사람들을 정파선거의 맹종주의자들이나 꼭두각시라고 하는 것 밖에 안 된다"고 비난했다.

    이에 심 후보는 "권 후보를 지지한 사람이 다 정파투표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상당수는 소신투표 했다고 본다"면서도 "제가 문제 삼는 것은 당 혁신 위해 극복해야 할 정파의 낡은 구도와 대세에 권 후보가 의존했다는 것이다. 통합력을 자랑하고 100% 당의 대표였는데, 특정 정파와 연계돼서 특정 정파의 대표로 통합력을 훼손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