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태지의 진정한 후계자는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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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9월 13일 10: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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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경이던가? 나는 집에서 고추나 만져가며 뒹굴거리다 TV를 켰다. 그저 그런 평범한 주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특별한 주말이었겠지만.

    "아 C발" 누군가의 특별한 주말 때매 평범했어야 할 나의 주말이 방해받게 됐다는 걸 알게되었다. 서태지 컴백 스페셜이라니?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주말을 느긋하게 보내려는 나의 계획은 서태지 컴백 스페셜로 인해 망가져버렸다.

    난 정말 서태지가 정말 싫었다

    싫어해 마지 않는 서태지 때매.. 주말을 망치다니ㅠㅠ 축구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월드컵 개막 몇주 전부터 틀어대는 각종 특집 프로그램 때매 TV에서 볼 것을 빼앗겨 버린 기분이랄까? 다른 사람은 이해 못하겠지만,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대 이탈리아전을 할 때, 기록적으로 96%인가 시청률을 기록했을 때, 꿋꿋이 EBS교육방송을 보던 5%의 마음을 나는 일백 푸로 이해한다.

       
      ▲ 서태지의 공연모습.(사진=뉴시스)
     

    나 정말 서태지 싫어했다.
    당시 나의 우상은 신해철이었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당시 신해철은 대마초 때매 감옥살이를 하고 있을 땐가 그랬는데, 여튼 오매불망 신해철이 출소하여 새 앨범을 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허나… 신해철은 음반낼 생각을 않고…

    그러던 와중에, 중학교 2학년이던 92년 갔던 봄소풍을 난 아직 기억한다. 당시의 기본 패션이던 배바지에 단추남방을 입고 등에는 엄마가 싸준 김밥을 매고 갔던 봄소풍. 허나… 돼먹지 않은 학교에서 논다 하는 놈들은 온통 헐렁한 티셔츠에 헐렁한 신발 헐렁한 모자를 쓰고는 그것도 상표도 안 떼고…장기자랑을 시키니 다들 서태지의 춤을 추고.

    사춘기의 예민한 소년답게… 그 꼴이 싫었다. 저질 댄스음악이나 듣는 막돼먹은 놈이 싫었다. 되도 않는 유치한 가사 –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 로 애들이나 홀리는 서태지가 싫었다. 근본도 없이 벼락 성공을 한 서태지가 싫었다. 생각없는 애들이야 어찌됐든 해철님만을 생각하며 꿋꿋이 나만의 노선을 걷고 있었다.

    여튼..그렇다고 달리 볼 TV도 없고(동물의 왕국을 볼 수는 없잖는가?), 나가 놀자니 놀만한 놈들은 다들 서태지 컴백쇼에 코를 박고 있을지라 결국 눈물을 머금고 서태지 컴백쇼를 봐야만 했다.

    난 전율했다

    ‘얼마나 잘 하는지 지켜보자. 니들이 한번은 얼레벌레 성공했겠지만, 두 번은 힘들 것이다. 깔깔깔’ 어둠의 악역이 된 기분으로 TV를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태지 1집 활동 결산. 아으~ 어해 마지않는 유치한 가사에 쟁쟁거리는 얇은 사운드에, 찡찡 거리는 서태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여차저차 시간이 지나가고. 드디어 2집 타이틀 곡 ‘하여가’의 뮤직비디오 공개.

    전율했다.

    발톱을 숨기고 있는 맹수에서 깝죽거리다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강력한 기타 리프, 두터운 사운드, 탁월한 리듬감,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댄스, 그때까지 나왔던 모든 한국 대중음악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 그동안 한국가요에서 비슷한 노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형식의 멜로디 라인. 난생처음 보는 이주노의 레게파마(결국.. .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도 이 머리를 하고 있다)

    놀고있는 동생을 닦달해서, 얼릉가서 서태지 2집을 사오라 시켰다.

    10분
    20분
    30분
    ….
    한 시간만에 동생이 나갔던 현관문이 다시 열리고, 동생이 스르륵 들어왔다.

    “이게!! 심부름을 시켰는데 어디갔다 왔어!!!!!!!!!" 부아가 치밀었다. “테이프 어딨어?!!!!!!!!!!”
    “…없어…”

    어이가 없었다. 말이 되나? 허나, 사실이었다. 서태지 2집은 발매 당일 동이 났고, 동생은 무서운 오빠 등쌀에 노원역 일대 음반 가게란 음반 가게는 다 돌아다니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여차저차해서 나도 서태지의 팬이 되었고. ‘말 많은’ 신해철은 그대로 잊어버렸다.(신해철씨 죄송해요ㅠㅠ)

    그 이후로도 서태지는 음반 새로 낼 때마다 TV채널 전체를 전세낸 것 마냥, 1시간 짜리 특집쇼를 통해 컴백했고, 그렇게 훌쩍 은퇴해 버렸다.

    누가 서태지의 후계자가 될 것인가? 평단, 팬, 산업의 지지를 두루 받는 모두가 인정하는 황제가 다시 나타날 것인가? 서태지 은퇴 후 기사거리 없는 기자들은 이 주제를 갖고 한참을 울궈먹었다. 이적? HOT? 신화? 보아? 비? 롤러코스터?(미안ㅠㅠ 롤러코스터는 순전히 개인적 취향이다)

    서태지 후계자는 누구인가?

    나는 SM(가수 이수만이 세운 연예기획사 SM 엔터테인먼트-편집자)이라 생각한다. 서태지의 적자는 SM이다. 지금와서 들어봐도, 서태지가 2집을 내면서 들고 나온 하여가는 너무나도 혁신적이다. 10여년 전이 아닌 지금 들고 나와도 한반도를 들썩이게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허나, 그게 다가 아니다. 서태지는 한국 연예산업의 ‘Jesus Christ Superstar!’라고 칭할만 하다. 서력이 예수를 기준으로 기원전과 기원후가 나뉘듯, 한국 연예산업도 서태지 등장 전과 등장 후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다시, 서태지가 2집을 들고 컴백했던 1993년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왜 원하지도 않던 서태지 컴백쇼를 멍하니 봤었어야만 하는 걸까?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자기 맘대로 컴백 날짜를 정하고, 거기에 맞춰 방송국에서는 특집방송을 대령할 정도의 위상을 가진 뮤지션이 서태지 전에는 과연 있었는가?

    가왕(歌王)이라 불리던 조용필, 나훈아, 이미자… 그 누구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였다. 서태지는 이들과는 급이 다른 천재이기 때문에? 건 아닌 듯 하다. 그럼 뭐때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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