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처럼 생각하는 노동자들
    2007년 09월 11일 02: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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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 열 명 중 다섯 명은 주식투자를 하고 있을 걸요. 두산중공업이나 두산인프라코어 주식을 많이 갖고 있어요. 요즘 잘 나가는 STX 주식도 있고. 보통 2∼3천만 원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지난 5일 창원에서 만난 한 두산중공업지회 간부가 전한 얘기다. 그도 두산중공업과 인프라코어 주식을 많이 갖고 있었고 돈을 좀 벌기도 했다.

최근 주식 열풍과 조선업종의 호황으로 경남지부 조합원들 사이에서 주식 얘기가 주요 화제다. 그는 얼마 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문제가 세계 증시를 강타하면서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지만 조합원들의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 종합주가지수가 2000 포인트를 넘어서자 환호하고 있는 사람들
 

 “주식 받으면 회사 손아귀에 잡힌다”

S&T중공업 조합원들은 지난 6월 4일부터 회사에서 배당받은 스톡옵션을 행사하게 됐다. 당시 액면가 2,500원짜리 주식을 5,100원에 2천주씩 받았기 때문에 1,000∼1,800만원 가량의 이익을 볼 수 있었다. 통일중공업을 인수한 최평규 회장은 2년 전 일방적인 인사명령과 순환휴업 등을 밀어붙이면서 스톡옵션 카드를 내밀었다.

S&T중공업지회 안동락 사무장은 “주식을 받으면 주식값을 올리기 위해 회사 이익을 남겨야 하고 결국 회사 손아귀에 잡히게 된다며 반대의견이 많았었다”고 말했다. 관리자들을 중심으로 스톡옵션을 신청했고 조합원들도 이에 따랐다. 그 때 통일중공업이 파업에 들어가자 지회 홈페이지에 주가가 떨어지니까 파업을 중단하라는 글이 많이 올라오기도 했다.

STX엔진은 두 차례에 걸쳐 유상증자를 해서 개인당 1∼3천만원까지 은행대출을 통해 자사주를 매입하도록 했다. 시가가 4,700원 시절에 처음 유상증자를 했고, 12,900원일 때 두 번째 유상증자를 했다. 현재 STX엔진의 주가가 6만원이니까 일부 조합원들은 큰 이익을 보기도 했다.

조합원들이 회사 주식을 보유하자 회사는 “파업을 하면 주가가 많이 떨어진다”며 현장에 유언비어를 흘리기도 했다. STX엔진지회 한 간부는 “파업과 주식은 아무 관계가 없고, 조직력으로 극복해나가면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경남지부 이창희 사무국장도 “조직력이 살아 있는 지회는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데, 통일이나 두산처럼 어려운 현장에서는 주식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지부 30주 합의

지난 4일 현대자동차지부는 회사로부터 1인당 30주의 주식을 무상으로 지급받는 합의안을 따냈다. 현대차지부는 교섭속보를 통해 “조합원의 요구가 높은 무상주를 회사는 끝까지 거부하였으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적극적인 의지로 최종 30주를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현재 주가가 71,000원 가량이니까 20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산별노조 시대에 기업별 종업원 의식을 강화하는 무상주 합의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도장공장 점거파업이 일주일째 진행되던 지난 8월 30일 도장공장 앞에는 300여명의 정규직 조반장 및 조합원들이 모여 파업 중단을 촉구했다. 그들은 해머 등을 들고 들어왔고, 유리창을 부수며 거칠게 항의했다. 그들은 “저들이 비정규직이냐? 협력업체 정규직이다” “협력업체 직원 몇 백명이 우리 일터를 짓밟아도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 간부들이 “이번 주까지 농성이 끝내도록 하겠다”는 설득으로 이들은 저녁 나절이 다 되어서야 물러갔다. 이를 지켜보던 한 정규직 활동가는 “저들 중에 기아차에 주식투자를 많이 했는데 주가가 떨어지니까 항의하러 온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주가 하락에 열받아 비정규직 파업에 항의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 현장에서 일하는 금속노조 조합원 모습(사진 금속노조)
 

주식투자 열풍과 개인투자자

‘막차’ 타고 망연자실…개미들의 비애, 오! 株여 등록금 날리고 대출금 날리고…개미들의 비명, 폭락장 개미들 “속이 새까맣게 탄다”, 끝없는 ‘뒷북’… 슬픈 개미들, 증시 대폭락 개미‘곡소리’, 상투잡은 ‘빚쟁이 개미들’ 패닉 상태…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증시가 폭락해 ‘검은 목요일’이라고 불렸던 지난 8월 26일 이후 언론에 보도된 기사 제목들이다. 증권 관련 연구소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과 기관 투자자들은 주식 열풍에 떼돈을 벌어들인 반면 개인투자자들만 큰 손실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주식투자의 현실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도 증권사로 향한 발길은 끊이질 않고 있다. 애사심을 부추기기 위해 스톡옵션과 무상증자, 우리사주 등으로 노동자들을 유혹하는 자본과 주식투자를 조장하는 언론 등 투기공화국으로 변해버린 사회에서 금속노동자들마저 맹목적으로 ‘투기의 그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무너져 가는 노동자 의식

1997년 부도로 주식이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으로 변한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기아자동차 조합원들은 다른 조합원들과 달리 주식 열풍에 휩싸여있지는 않은 듯했다.

그러나 일부 조합원들은 수도권의 부동산 열풍에 동참해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기 전까지 부동산 투기에 나섰다. 최근 ‘어쩌구 펀드’ 하는 주식 간접투자가 급증하면서 조합원들이 월급 통장을 증권 통장으로 바꾸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경남지부 한 간부는 “창원에 경륜장이 들어서면서 많은 조합원들이 한탕을 노리며 주말과 휴일마다 경륜장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투기 열풍’은 노동자의 정신마저도 갉아먹게 만들고 있다. 땀흘려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들과 연대해왔던 과거 노동자들의 연대정신이 갈수록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치관이 자본과 같아지고 있고 배부른 노예로 변해가고 있다”며 “상시적인 고용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은 비정규직과 연대하는 것인데 이런 가치들을 다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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