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간노동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2007년 09월 11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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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에서 그랜드카니발을 조립하는 노동자 윤모(36)씨는 11일 아침 9시 야간 노동에 지친 몸으로 퇴근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갔다. 샤워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신문을 뒤적거리다 자리에 누웠지만 좀체 잠이 오지 않는다.

    전날에도 그는 아침 11시가 넘어 잠이 들었는데도 4시도 되지 않아 깼다. 환한 대낮에 억지로 잠을 청해보지만 1∼2시간마다 깨기 일쑤다. 몇 번을 뒤척이다 이불 속을 빠져나와 아내와 이른 저녁을 먹고 6시 30분쯤 집을 나서 회사로 향한다.

    그는 밤 8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식사시간을 빼고 8시간 근무에 잔업 2시간을 더해 하루 10시간, 주 50시간을 근무한다. 특근을 할 때는 주 60시간이다.

    월급날인 10일 그의 통장에는 250만원이 찍혔다. 지난 달 노사 합의로 임금이 인상돼 급여임금 인상분(27만원), 상여임금 인상분(25만원), 추석선물비(10만원)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보통은 180만원 가량 받는다. 그래도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에 비하면 그는 ‘귀족노동자’다.

    장시간 야간노동 ‘나쁜 아빠’

    야간노동을 하는 주간이 돌아오면 그는 아이들과 헤어진다. 퇴근하면 아이들은 모두 등교해 있고, 그가 출근한 후에야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주말이 아니면 아이들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기러기 아빠’인 셈이다. 야간노동과 장시간 노동이 그를 ‘나쁜 아빠’로 만든 것이다.

    윤 조합원은 "주간조로 바뀌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아빠랑 놀고 싶어서 밤 11시가 넘도록 아빠 곁에 있곤 한다"며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도 야간노동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2007년 6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주당 근로시간이 54시간 이상인 취업자가 838만3천명으로 전체의 3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5∼53시간인 취업자도 642만2천명으로 전체 27%를 차지한다.

    경제협력기구(OECD)가 지난 4월에 발간한 자료서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2,354시간(2005년 기준)으로 전년도에 이어 1위를 차지했다.

    장기간노동은 개인과 가정,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통계청이 10일 발표한 ‘2007 대한민국 행복테크’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하루 10분 이상 자기 계발을 하는 사람은 5%에 불과했다. 또 지난 1년 동안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14.3%에 그쳤다. 장시간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이 자기계발과 봉사활동을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또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주부의 가사노동은 하루 3시간28분으로 맞벌이 남편(32분)의 6.5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세 이상 국민은 평일 여가생활로 TV시청에 2시간6분, 컴퓨터 이용에 28분을 보내지만 교제활동은 49분으로 기계와 마주하는 시간이 사람과 교제하는 시간의 3배로 나타났다.

    이런 자료를 근거로 통계청은 ‘대한민국의 행복을 저해하는 5대 결핍 요소’로 ▲남편 역할의 부족 ▲가정 생활의 부족 ▲자기 계발의 부족 ▲대화의 부족 ▲기부·봉사의 부족을 꼽았다.

    심야노동 없애 엄마·아빠를 가정으로

    양성평등 의식이나 봉사활동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료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5대 결핍요소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장시간 노동이고, 특히 야간노동이다. 장시간 야간노동을 없애 노동자를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행복지수’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지난 4일 임단협을 타결하면서 내년 10월부터 전주공장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범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주간연속 2교대제는 주간조는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야간조는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는 방법이다. 심야노동을 없애자는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가 실현 단계에 이른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사의 이번 합의가 전체 노동자로 확산돼 야간노동이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가정으로 돌아갈 때 대한민국 행복지수는 높아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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