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도화된 신정치 시대 열린다
        2007년 09월 03일 03: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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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대선은 구 정치리더십에 대한 최후 통첩

    수십 년 동안 한국정치를 규정해온 것은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갈등, 즉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저항적 리더십의 대결이었다. 지역주의와 이념으로 매개되기도 했던 이 대립구도는 두 리더십 간의 적대적 의존관계라는 토대 위에서 다양한 명분과 결합하여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재생산되었다.

    장기간 ‘호황’을 누려온 이 구도는 2007년 대선을 앞둔 지금 분명히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새로운 리더십의 도전에 의해 동시붕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즉, 2007년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이 이들 리더십에게는 최후통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이라는 외피와 민주화 세력의 아우성

    지난 지방선거에서 ‘불쑥’ 나타나 승리를 거머쥔 ‘오세훈’과 대선에서 승리할 것처럼 보이는 ‘이명박’은 과거 한국정치를 규정함으로써 선택의 유력한 기준이 되었던 ‘독재냐 민주냐’라는 이분법에서 확실하게-최소한 절반은- 벗어나 있다. 오세훈과 이명박을 ‘한나라당’이라는 외피로만 바라볼 경우 이번 대선에서의 선택지는 과거 수 차례 선거에서의 선택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들에게 열망하고 있는 유권자들과 같이 그 껍데기를 한 꺼풀 벗기고 보면 이들은 반공·반북·정치적 독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다. 오세훈은 다소 느끼한 구석이 있지만 말쑥하게 생긴 유능한 변호사이자 젊은 정치인이며, 이명박은 경박하지만 성공의 신화를 갖고 있는 기업인이자 정치인이다.

    즉, ‘한나라당’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차분히 바라보면 오세훈과 이명박에게 한나라당은 추우면 입고 더우면 벗는 가벼운 외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화 세력은 어떠한가? 정치적 카운터파트가 ‘독재’, ‘반공’이라는 외투를 입기만을 학수고대 하면서 ‘민주’라고 쓰여진 철지난 옷을 서로 입으려고 아우성치고 있다.

    민주화세력에 대한 실망과 일탈이 아닌 근본적 선호의 변화

    이번 대선에서는 이명박의 당락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양대 주류 리더십의 붕괴현상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유권자들의 대선후보나 정당에 대한 지지성향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민주화세력 또는 노무현 정권의 실패와 대안부재에 따른 일시적 선택으로서의 일탈, 또는 과거지향적인 현실도피가 아니라 근본적인 선호의 변화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는 ‘이명박 후보가 끝까지 낙마하지 않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가’, ‘수십 명의 여권 후보들 중 누가 이명박의 카운터파트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민주노동당 후보가 유의미한 득표율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호명 하에 기존의 정치리더십과 명확하게 구별되는, 그리고 향후 한국정치를 규정하게 될 새로운 리더십이 어떠한 강도와 속도로 등장하는가 하는 것이다.

    과거와의 단절과 새로운 주체에 의한 ‘신정치 시대’의 예고

    새롭게 선택받고 있는 정치리더십은 기성 정치리더십과 달리 ‘냉전·독재·보수’, ‘저항·민주화’라는 과거지향적 행위에서 정당성을 찾지 않는다. 오히려 냉전적 수구세력의 리더십과 저항적 민주세력의 리더십과 멀어지면 멀수록, 즉 과거에 기반을 둔 정당성에서 탈피해서 누가 과거와 단절하는가 하는 것이 주요한 선택기준이 된다.

    이것이 새로운 주체형성과 맞물려 진행될 경우 바야흐로 과거의 양자택일적 동원방식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다가치가 공존하는 새로운 정치의 시대, 인민의 일상생활과 분리되고 고도로 정치화된 ‘그들만의 리그’를 아래로부터 혁파하는 명실상부한 생활정치가 이루어지는 ‘신정치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탈냉전과 평화는 공통의 자산, 세계화는 공동의 과제

    이상과 같은 정치리더십의 패러다임적 변화는 한편으로는 냉전체제의 규정 요인이 극적으로 완화됨으로써 극좌·극우세력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공통적인 자산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에 근거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로 인한 개방의 확대와 경쟁의 격화에 따른 국민국가의 위기가 제 정치세력들에게 국민국가 사수와 재생산이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형성할 것이라는 점이다.

    평화와 통일, 안보와 세계화는 더 이상 어느 한쪽의 자산이거나 양자를 구분하는 개념으로서 ‘이념’이 아니라 어떠한 정치세력이든지 이해관계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실용’의 범주에 포함된다. 따라서 각 정치세력을 구분하는 균열과 유권자 편성은 새로운 가치와 기준에 의해 이루어진다.

    온건한 중도정당체제와 새로운 카르텔의 형성

    한반도 평화실현과 세계화에 대한 공통 이해관계 -통일에 대한 속도조절론과 세계화의 압박에 대한 탈출구로서 아제국주의화(subimperialism)에 대한 국민적 동의구조와 사회협약주의- 위에서 설계될 한국의 정당체제는 육탄전이 난무하는 과거의 ‘지배와 저항’체제가 아니라, 중도라는 좁은 거리에 함께 위치하지만 방향이 상이한 정당들 간의 온건한 정책 경쟁체제일 가능성이 높다.

    보다 자세히 말하면 새로운 정당체제는 성장과 분배를 둘러싼 유럽식의 온건한 경쟁체제이면서도 다양한 세력-자본 또는 특정산업에서 결탁된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가 강력하게 투영된 정당체제이다. 따라서 새로운 정당체제는 지역과 이념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중요한 대립지점을 형성한다.

    예를 들면 이명박과 문국현의 대립이라는 식의 ‘무식한(?) 자본가’과 ‘예의바른(?) 자본가’, 내수자본과 수출자본, 금융산업과 굴뚝산업의 이해관계 또는 산업과 관련된 지역주의가 중요한 균열지점이 된다. 이것은 두 가지 새로운 카르텔을 형성한다. 하나는 중도정당들 간의 카르텔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협약으로 불리우는 국가(정치)-자본-노동의 카르텔이다.

    혁명 가능성보다 높은 체제 조절능력과 보수정권의 개혁

    한반도 탈냉전과 세계화라는 거대한 변환 과정에서 열악한 복지 시스템에 따른 양극화의 확대로 인해 한국의 정당체제가 온건한 경쟁체제가 아니라 과격한 경쟁체제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남미에서와 같은 ‘혁명’을 꿈꾸는 것은 여전히 어설프다. 많은 이들에게 ‘혁명’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베네수엘라와 다르게 한국의 정치체제는 조절능력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정부에서의 개혁정책보다 무서운 것이 보수정권의 개혁정책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과거의 리더십과 다르게 새로운 리더십에서 ‘보수’는 신념이 아니라 하나의 외피에 불과하며, 우측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극우 보수세력들은 동원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근 이명박의 ‘친북좌파 대 보수우파의 대결’이라는 전근대적인 발언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선거과정에서 진보세력을 결집시키는 효과는 없지만, 박근혜의 실패로 낙심한 극우보수세력들을 달래면서 자신의 강력한 지지층으로 흡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극우보수세력은 선거과정에서의 동반자일 뿐 정권장악 후의 동반자는 아닌데, 이명박의 리더십은 이념에 기초한 지지층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보수정권에 의한 개혁은 개혁정권의 개혁보다 파격적인 형태로 진행되어 장기간의 집권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줄 ‘보수-중산층 연합’이라는 물적인 기반을 형성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적 이념정치의 조기 퇴조와 준비 안된 진보정당의 험난한 미래

    정치 리더십의 변화는 서서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현 정치질서를 변화시킬 것이다. 정당들의 단순한 위치이동이나 양적인 변화가 아니라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현 정치질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진보정당에게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냉전과 산업화, 민주화시대를 이끌었던 리더십의 현저한 약화와 실용노선을 매개로 한 중도영역의 확장 과정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시대를 잠시 풍미했던 이념적 정당체제는 오히려 왜소화 될 수도 있다.

    새로운 변수가 없다면 향후 한국의 정당체제는 두개의 주요 정당이 존재하지만 한 개의 정당이 우위를 점하는 ‘일당우위정당제’ 하에서 2~3개의 소수 정당이 존재하는 3.5당 체제(1.5+1+0.5+0.5)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념정당은 0.5 정당으로 중도정당의 하위파트너가 되거나 자족적 정치참여에 만족해야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진보정당이 그들의 미래에 관한 어떠한 전략과 비전도 갖고 있지 못한 채 과거와 그들만의 현실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이라 규정하고 있는 통일이나 평화, 평등은 점차 진보세력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중립적인 용어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평화체제 정착과 통일이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진보세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수세력을 위한 엄청난 선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구래의 냉전적 진보이념에 머물러 있는 진보세력은 그 과정에서 평화와 민족주의라는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극렬한 충돌로 많은 시간과 역량을 허비할 가능성마저 높다.

    당내용, 현상유지용 리더십이 아니라 10년 20년짜리 리더십을 구축해야

    정당체제의 개편, 헌법개정, 새로운 리더십에의 요구 분출 등은 2007년부터 수년 간 동안이 향후 수십 년을 좌우할 새로운 정치구조의 형성기임을 알리고 있다. 단기적으로 민주노동당은 물적인 토대와 성장전략 없이 구가치에 기반하고 있는 당내 주류세력의 재생산구조가 정당의 재생산구조와 연동되거나 우선함으로써 향후 수십 년을 좌우할 전환기에 현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전환의 실패의 대가는 극우정당과 같이 왼쪽 끄트머리도 밀려나 개혁적 정당의 하위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이후 줄곧 ‘준여당’ 상태를 유지해 왔다. 역량의 미비와 전략적 사고의 부재, 반보수전선이라는 미명 하에서 진행된 진보적 주체에 대한 무장해제가 민주노동당을 중도자유주의개혁정당의 하위파트너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새로운 리더십의 등장을 봉쇄해왔다.

    어쩌면 상이한 이념을 갖는 여당과 유사한 이념을 갖는 야당과 경쟁해야 하는 익숙치 못한 ‘야당생활’이 민주노동당에게는 반성과 전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정치적 전환기 진보정당의 미래는 ‘냉전과 산업화’에 기반하고 있는 ‘진보이념과 리더십’을 급진적이면서도 -과격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새로운 진보와 새로운 리더십으로 채워갈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래의 노동(조합)의존성·대표성이 아니라 보편으로서 -최소한 사회협약의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노동주도성·상징성을 확보해야 하며, 정당의 제도화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현실적으로 사회·정치적 영향력의 확대와 그에 상응하는 의석수의 확보 또는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을 선택·정착시킬 수 있는가의 여부가 첫 번째 관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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