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강도 탈레반, 찢긴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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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9월 03일 12: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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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미국의 지원을 받은 탈레반 세력이 소비에트군을 축출한 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원리주의에 기초한 이슬람국가를 건설하고 나서였다.

아프간에서 소비에트의 패배는 소비에트 전체를 붕괴시킨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유명한 오사마 빈 라덴도 이 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돈과 무기, 군사훈련 등으로 소비에트와 대리전을 펼치면서 인근 지역으로 군사력을 확대시켜나갔다.

미국에 토사구팽 당한 후 뼛속까지 사무친 원한

결국 소련과의 아프간전은 탈레반의 승리로 끝났다. 아프간에서 소비에트가 축출되고 소비에트가 붕괴하자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탈레반 세력의 이용가치가 없어졌다. 과격한 군사주의를 우선으로 내세우면서 이슬람원리주의를 따르는 아랍지역 전역에서 몰려온 거친 지하드 용사들의 결집체로 국제적으로는 악의 세력으로 낙인찍힌 탈레반을 계속 은밀하게 지원할 수 없었다.

미국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소비에트의 붕괴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물질적인 원조조차 끊어버렸다. 탈레반이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로 변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이 이용만 해먹고 버렸다는 뼛속까지 사무친 원한이다.

탈레반의 원한을 잘 알고 있던 미국은 2001년 9.11사태가 벌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프간을 침공했다. 물론 군사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던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고 지하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탈레반 세력이 영원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탈레반 세력은 산악지역에 터를 잡고 게릴라 활동을 벌이면서 미국을 비롯한 나토군을 상대로 지금까지 전투를 벌이고 있다.

현재 탈레반 세력이 전쟁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주로 아편 재배와 밀수를 통해서다. 이와 더불어 민간인 납치를 통해 꽤 만만찮은 수입도 올리고 있다. 지난 해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헬만드 지역의 이편 생산량은 전년도에 비해 34%나 증가했다는 유엔의 보고서가 발표된 바 있다.

세계 아편 생산량의 93%를 차지하는 나라

세계 아편 생산량의 93%를 아프가니스탄이 차지하고 있고, 2천3백만 인구 중 아편산업-재배에서 밀수까지-에 종사하는 인구는 3백3십만에 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가족까지 합친다면 인구의 반이 아편산업에 종사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 아편을 선호하는 논리는 경작지에 곡식을 심으면 1에이커당 5천 달러의 수입이 생기지만, 보리나 밀을 심으면 겨우 120불의 수입만 생긴다는 이유로 들고 있다. 이들이 아편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한 해에 약 75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고 있을 당시에는 농민들의 아편 재배를 금지시키기도 했지만 지금은 농민들의 아편재배를 강력하게 부추기고 있다.

   
  ▲ 탈레반 한국인 집단 납치 사건을 보도한 ‘알자지라’ 인터넷판.
 

한국인 인질 사태로 인해 유명해진 민간인 납치 전술은 나토군의 전투력에서 밀리는 탈레반의 주요 전술로 채택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 23명을 납치한 사례에서 보듯이 이들은 납치된 인질들을 석방하는 대가로 거금과 아프간 정부에 구속된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한다.

민간인 납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야 애초부터 무시해온 터여서 탈레반 집단에 통하는 것은 오직 실속인 돈밖에 남는 게 없다. 과거에 정권을 잡아 국가까지 운영했다는 세력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탈레반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도 제대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만한 이성적인 행위를 한 적도 거의 없다. 이 그 일례를 든다면 미국의 아프간 침공 전에 유네스코가 유물로 지정해놓은 거대한 부다상을 폭탄으로 파괴하기까지 했다. 문화유산까지도 이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했을 뿐이다.

탈레반의 범죄행위 모든 명분 상쇄

아편 밀수나 비무장 민간인을 납치하고 살해해 수입을 올리는 행위를 주로 하는 집단이 제국주의 군대에 맞서 싸운다는 것도 모순이다. 사실 이들이 내세우는 거대한 명분 뒤에서 행해지는 범죄행위는 모든 명분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이는 탈레반의 형성 과정에서부터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정보부(CIA)의 후원을 받아 소비에트와의 전쟁을 위해 조직됐고, 정권을 잡은 뒤에는 학살과 고문, 투옥 등과 여성들에 대한 반인권적인 공포정치로만 일관했다.

정권을 잃은 지금도 여전히 전쟁 중이다. 전쟁의 명분은 미제국주의 군대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지만 아편 밀수나 비무장 민간인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범죄행위는 대의명분과 모순된 타락한 일개 무장강도 집단의 행위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을 풀어준 뒤 탈레반은 뻔뻔스럽게도 한국인들을 인질로 잡은 이유를 한국군의 주둔과 기독교 선교로 들었다. 사실 탈레반은 비겁하게도 가장 주둔군대 국가 중에서도 가장 약하고 어리숙하게 보이는 한국인들을 인질로 택했다.

전투는 미국 군대와 나토군과 벌이면서 구호활동을 위해 형식적으로 파견된 달랑 2백명 밖에 되지 않는 한국군의 주둔을 빌미로 삼았고, 가난한 아프간 지역에 병원을 짓고 가난한 아프간 사람들을 돌봐주기 위해 온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목표로 삼았다.

비겁한 탈레반과 어리숙해 보이는 한국

그리고 언론을 통해 한국 정부로부터 2천만 달러를 받았다고 흘리면서 마치 대단한 전과를 올린 양 선전한 바 있다. 이는 스스로 이슬람 혁명군도 지하드 용사도 아닌 단지 무장강도 집단임을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다. 더구나 여성인질에 대한 성적 학대가 외신에 흘러나오고 있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더 이상 내려갈 곳 없이 타락한 범죄집단일 수 밖 수밖에 없다.

탈레반 세력에 납치된 21명의 교회 소속 한국인들이 6주간 갇혀 있다 모두 석방됐다. 납치 기간 중 한국사회는 교회의 선교방식에 대한 비난과 납치된 사람들에 대한 비난으로 인터넷이 거의 도배되다시피 했다. 이번 납치사건을 통해 한국사회의 갈기갈기 찢긴 분열상을 가감없이 잘 보여줬다.

같은 국민이 인질로 잡혀 목숨을 구걸하는 마당에도 "기독교인이니 순교해서 천국갔는데 가족들은 왜 슬퍼하냐"는 등의 냉혈적이고 반인륜적인 댓글이 수두룩했다. 비무장 민간인인질들을 살해한 탈리반을 비판하거나 증오하기보다는 살해당한 같은 국민들을 더 증오하는 섬뜩한 글들이 많이 보인다.

   
 ▲ 인질 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증오심과 찢겨진 여론.(사진=뉴시스)
 

양극화라는 경제적 분열보다 이기주의로 철저히 파편화된 한국사회의 단면이다.

경제적 분열이야 정책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지만 머리 속에 들어있는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심은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약한 모습을 보이면 공격받는다”는 정글의 법칙이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법칙이 된 것 같다.

납치돼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인질들에게 동정과 걱정을 보내면서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게 인간성의 당연한 발로일 것이다.

찢긴 한국, 단기선교팀의 잘못

하지만 두 명의 인질이 살해된 뒤에도 네티즌들의 악플은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납치돼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인질들을 저주하고 비난하는 것도 모자라 무고한 한국인들을 납치하고 살해한 탈레반을 찬양하기까지 했다.

이들에게 비무장의 인질들을 납치해 살해한 야만성을 보인 탈레반 세력은 너무 강해 보였던 것 같다. 일본에서 벌어지는 이지메가 한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 정도였다. 일본 이지메의 사회심리적 특징은 강자는 언제나 정당하고 아름다워 보이며 약자는 추하고 단죄돼야 할 대상이 된다.

한국의 네티즌들은 강자인 탈레반의 편에 서서 약자인 한국인 인질들을 최악의 언어로 저주하고 공격하는 비도덕적이고 야만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터넷 여론에 대한 회의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한국교회에서 단기선교를 위해 간 선교팀의 잘못을 덮어두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일차적인 책임은 이 사건을 일으킨 선교팀과 교회에 있다. 전쟁 중인 아프간에서 보인 이들의 부주의한 행동과 나아가 전쟁 중인 이슬람원리주의가 가장 극성을 부리는 곳을 선교지역으로 택했다는 점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이번 인질 사태에서 비판받아야 할 또 다른 실체는 노무현 정부다. 제국주의 전쟁에 동참해 군인들을 파병한 정부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전쟁 중인 아프간에 선교하러 간 이유도 따지고 보면 한국군이 먼저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국주의적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

다시 말하면,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을 든든한 빽으로 믿고서 갔다는 얘기다. 한국군이 아프간에 아예 없었다고 가정하면 한국교회는 아프간에 아예 발을 들여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신앙심이 투철하고 용감한 선교사들이라도 자국의 군대나 대사관이 없는 오지나 전쟁터로 선교하러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도 인간인지라 최소한의 보호막을 필요로 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종교단체의 선교는 제국주의적일 수밖에 없고 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사실 제국주의군대가 가는 곳 어디에나 구호단체나 종교단체가 뒤따라간다. 구호단체도 대부분은 종교단체가 조직한 것이다. 그 동안 제국주의 국가들은 전쟁을 통해 파괴하고 살해한 곳에 구호단체나 종교단체를 보내 뒤처리를 시켜왔다.

이들 단체들을 통해 전쟁 뒤에 오는 가난과 파괴의 상처를 씻어주고 망각시키는 일이다. 나아가 이 과정은 전후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해나가는 전쟁 프로그램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됐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제국주의적인 반열에 올랐다는 증거를 이번의 한국 교회가 보여준 셈이다.

내 개인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한국 사람들은 결코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다. 각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민족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온순하고 겁 많은 민족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교회에서 단기간 지원활동을 위해 갔던, 그것도 여성들이 대부분인 선교팀에서야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의 존재를 얼마나 든든하게 믿었겠는가.

이번 인질 사태를 통해 정부는 모든 비판을 피해가면서 도리어 많은 것을 얻었다. 미성숙한 해외선교의 주체인 기독교와 교회로 비판의 화살이 날아들면서 근본원인을 제공했던 정부는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사실은 아프간 파병을 주도했던 노정부가 비판의 주대상이 됐어야 함에도 지난 번 김선일 사태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는지 일찌감치 여론의 표적을 기독교와 교회로 돌리는 능수능란함을 보여줬다. 인질석방을 위해 노력한다는 모습과, ‘돈을 주고 인질을 빼왔던 간에’, 어쨌든 인질을 빼내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중적 인기까지 올리는 수확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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