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386 그리고 대통령 선거
    2007년 08월 29일 05: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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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 원 세대’란 우리나라 20대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이 88만 원이라는 계산을 토대로 한 포스트 386세대 명명법이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40~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세력이 20대를 착취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소수를 제외하고는 88만 원 이상의 소득을 현재 20대 세대가 얻을 수 없다는 얘기다.

…386은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변혁의 세대였지만 포스트 386의 눈에는 새로운 ‘꼰대’로 비치고 있다.

…현실 공간에서 386과 포스트 386은 경쟁사회의 원리에 따라 한판 승부를 벌일 때가 됐다. 정치사회적으로 기득권 세력이 된 386세대가 포스트 386세대를 위해서 한 일이 없다는 비판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나온다.

386과 포스트 386의 투쟁은 정치적 이념적 차원에서 이른바 ‘진보 정권 10년’에 대한 판정을 대행한다. …누가 용이고, 누가 이무기가 될 것인지는 올해 12월 19일 갈린다. 개봉박두.” – 박해현 문화부 차장, 「포스트 386의 봉기」, <조선일보>, 8. 24

“최근 한 경제학자와 신문기자는 현 시대의 20대들은 월 88만 원으로 일상을 꾸려가야 하는 세대라면서 그들의 곤궁한 삶에 대한 논의의 불을 지폈다. ‘너희는 고생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이들 ‘88만원 세대’는 어린 나이에 IMF 금융위기 급보를 접하고 일찍이 암울한 미래가 온다는 것을 감지한 ‘불안 세대’다.

…『88만 원 세대』의 저자들은 이들 ‘청년존재’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제기하면서, “20대를 위해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대통령이 바뀐다고 세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사자 젊은이들이 더 깊은 늪에 빠져들기 전에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하면 좋겠다. …이제 슬슬 방에서 나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불안은, 정말이지, 영혼을 잠식한다.” –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IMF 목격한 불행한 청년들 ‘88만원 세대’ 우리가 껴안자」, <경향신문>, 8. 29

   
 ▲ 서울 시청, 1987년 여름. 분노와 짱돌로 만들어낸 민주주의 그리고 죽음과 386의 등장.
 

<조선일보>의 박해현은 두 가지를 오독했다. 첫째, ‘기득권 세력이 된 386세대가 포스트 386세대를 위해서 한 일이 없다’는 진단은 정확하지만, 그것을 ‘진보 정권 10년’이라 명명하는 것은 왜곡을 넘어선 날조다.

그 ‘기득권 정권’이 젊은 세대와 비정규직에게 포용 정책을 썼다면, 88만 원 세대는 ‘200만 원 세대’쯤 됐을 것이고, 그렇다면 ‘진보 정권’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하지만 386 정권이 88만 원 세대에게 가한 것은 철저한 배제와 착취였고, 이것만 따져보자면 "박정희나 전두환 때보다 더 악랄하다"고 평하는 것이 옳다.

둘째, ‘386과 포스트 386의 한판 승부’ 역시 조한혜정의 글에 소개된 바와 같이 우석훈과 박권일의 주장이 아니다. 물론 박해현이 『88만 원 세대』의 내용과는 다른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주장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386과 포스트 386은 정치적으로든 이념적으로든 전혀 대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해현 자신이 은유적으로 선동하는 이명박에 대한 지지를 누가 만들었는가를 돌이켜 보면 된다. 이명박에 대한 최초의 지지층은 수도권의 386세대였으며,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에 대한 지지를 굳건히 견지한 세력 역시 386이었다.

이것은, 과거 전 사회적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 노력했던 386 집단이 지금에 와서는 그 노력을 가족의 경제적 이익으로 보상받기를 바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포스트 386은 이렇게 보수화된 386을 추종하고 있다.

<조선일보>, 예전에는 주장은 엉터리더라도 정치는 잘 읽었는데, 이제 그런 <조선일보>는 더 이상 없는 것 같다. 저희만 부자 되려는 386을 이렇게 준엄히 꾸짖다니 민주노동당 기관지라도 된 모양이다.

역사상의 언제 어디서든지 여러 정치경제적 대립은 세대 갈등의 형식을 빌려 나타나기도 하고, 급격한 변혁은 종종 세대 교체의 양상을 띤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88만 원 세대’ 문제를 세대 투쟁을 통해 해결하자고 주장하기는 조금 곤란하다.

박해현의 말마따나 386이 ‘꼰대’가 된 것도 맞고 ‘기득권’이 된 것도 맞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의 가장 커다란 변화 희구 세력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386의 이명박 지지 주도에도 기득권 확대 욕구, 정치적 보수화 같은 것과 함께 한국 정치 의제의 경제사회권화와 같이 긍정적 요소가 혼재해 있다.

   
  ▲ 서울 시청, 2002년 여름. 환호와 열광 그리고 일상의 고난과 88만원 세대의 탄생.
 

’88만 원 세대’가 386과 경합한다는 것도 아직은 중과부적이다. 386세대처럼 빨리 기득권화된 세대도 없지만, 그처럼 빠른 사회 진출과 장악이 그들의 조직화되고 효율적인 사회활동 덕분임도 분명하다. 이런 마당에 ‘경쟁사회의 원리에 따라 한판 승부’를 벌이라는 것은 동네 불량청소년더러 조폭에 대들다 죽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뛰어넘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그 세대가 공유하고 다른 세대가 공감하는 시대의식이 있어야 한다. ‘붉은 악마’ 셔츠를 입고 SKT 행사에 참가했던 경험과 짱돌을 들고 시청 광장을 점거했던 경험, 그에서 비롯되는 시대의식을 비교하기는 곤란하다.

조한혜정이 말하는 것처럼 88만 원 세대는 골방에서 나와 시대의식을 만들 집단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대학 교육과 취업 문제에서 한 목소리를 낼 때쯤에는 “타도 386”을 외치도록 부추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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