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국현 '노풍' 재연인가, '허풍'인가
        2007년 08월 29일 04: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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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이 뜨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띄워지고’ 있다. 지난 23일 대선출마 선언 이후 문 전 사장은 이른바 ‘개혁’ 언론의 주요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문국현 띄우기

    특히 <오마이뉴스>는 23일 오연호 대표의 ‘오연호 리포트: 선택 2007 대선-제2 유시민? 제2 김행? 김헌태의 도박/여론조사 1인자, 1%의 문국현에 올인’ 기사를 내보낸 이후 각종 기획 및 인터뷰, 토론, 좌담, 기고 등을 통해 문 전 사장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문국현에 올인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주류 언론 가운데선 ‘중앙일보’가 도올 김용옥의 문 전 사장 인터뷰 기사를 한 면 통으로 내보냈다.

    언론의 높은 관심에 힘 입어 문 전 사장은 28일 KBS의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8%의 지지율로 이명박, 손학규, 정동영 후보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실장은 "지지율 조사 대상에 처음 포함되어 거둔 성적치고는 높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범여권 대선 후보로서 문 전 사장의 강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왜 문국현인가?

    먼저 먹고 사는 문제가 화두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대선에서 범여권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경제인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는 유한킴벌리의 4조2교대제와 직장 내 평생학습체제 구축을 뼈대로 하는 뉴패러다임을 입안하고 실천한 경영자다. 경제 분야에서 실적에 기반한 컨텐츠를 갖고 있다는 평가다. 한귀영 실장은 "역대 범여권 후보 가운데 컨텐츠가 경쟁력의 바탕을 이루는 유일한 후보"라고 평했다.

       
      ▲ 대선출마를 공식선 언한 문국현 대선예비후보(왼쪽)가 지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수다공방을 방문,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박사를 만나고 있다.(사진=뉴시스)
     

    또 상대적으로 개혁적 색채가 강하다. 문 전 사장은 주로 진보 진영의 의제였던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양극화 해소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손학규 후보나 실용적 이미지가 강한 정동영 후보,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공유하고 있는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후보와는 문제를 보는 각도가 조금 달라 보인다. 이는 이른바 ‘진보개혁’ 성향의 유권자층을 끌어모으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끝으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선명하게 각이 선다. 이는 그의 출마선언문에 잘 나와 있다.

    그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인 ‘재벌과 건설 중심의 가짜경제’와 ‘중소기업과 사람 중심의 진짜경제’ 간의 대결, 그리고 ’20세기 낡은 경제’와 ’21세기 새로운 경제’ 사이에서의 선택"이라며 "한나라당 후보를 비롯한 우리 사회 지도층이 저와 함께 경제성장 모델에 대한 정식 논쟁을 벌여보자"고 했다.

    이런 요인들이 문 전 사장의 대선 경쟁력을 구성한다. 지리멸렬한 범여권에서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진보개혁’ 진영 일각이 문 전 사장을 눈여겨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 문국현이 아닌가?

    그러나 문 전 사장의 ‘경쟁력’에 대한 다른 평가도 있다.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문 전 사장은 이명박 후보에 비견될 정도의 경제전문가로 비춰지지 않으며, 실제 그런 평가를 받을 만큼 실적을 보여준 것도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는 "실적 면에서 보면 문 전 사장은 정운찬 전 총장보다도 내세울 게 없다"고 혹평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도 "문 전 사장은 실적으로 내세울만한 게 없다. 유한킴벌리의 뉴패러다임도 아는 사람들만 아는 얘기"라면서 "노무현 대통령만 해도 십 수 년의 정치를 통해 형성된 카리스마와 실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경제 문제를 중심에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면서도 "사람들은 문국현을 시민운동가로 생각하지 경제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는 다소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이명박이 문제가 많은 사람인데도 높은 지지를 받는 이유 가운데는 신화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이 있다"면서 "우리 국민들은 신화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박정희의 개발신화, 노무현의 개혁신화, 이명박의 성공신화 등. 그런데 문국현에겐 그런 게 없다"고 했다.

    2002년 ‘노풍’은 재현될 것인가

    문 전 사장의 경쟁력에 대한 평가에 따라 그의 대선 행보를 점치는 시각도 갈린다. 한귀영 실장은 문 전 사장의 지지율이 상승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고 봤다.

    한 실장은 "일부 언론이 문국현에 올인하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람을 일으키려면 매니아층이 있어야 한다. 먼저 매니아층이 형성되고 그를 기반으로 세력이 확대되는 게 일반적"이라며 "문 전 사장에 대한 일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과 해당 기사의 댓글들에서 매니아층이 형성되는 것은 의미있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한 실장의 분석에는 기존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는 문 전 사장의 행보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게재되어 있다. 실제 "국민을 믿고 가겠다", "신당을 만들 수도 있다"는 발언에서 보여지듯 대국민 정치를 통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후 이를 발판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범여권을 재편하려는 게 문 전 사장 측 구상으로 보인다.

    이는 2002년 노풍의 점화 경로와 닮은 꼴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선본의 문명학 기조실장은 이를 두고 "결국 노사모를 다시 모으겠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대선을 불과 넉 달 조금 넘게 남겨둔 지금, 독자적인 세력이 없는 문 전 시장이 범여권과 계속 거리를 둘 지는 미지수다. 실제 범여권 주변에서는 예비 경선 이후 합류하는 문제를 놓고 문 전 사장 측과 민주신당이 물밑 교섭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문국현, 독자세력 구축 힘들 것"

    ‘이윈컴’ 김능구 대표는 지금 문 전 사장이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정도의 자기 세력을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후보가 빠른 시일 내에 독자적인 세를 구축할 수 있었던 건 월드컵이라는 특수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대선 출마선언 이후 며칠 지나면서 문 전 시장이 여론의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면서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큰 원칙을 공유한다면 민주신당에 가급적 빨리 합류해야 한다. 민주신당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일단 합류한 후 내부를 변화시키는 정면돌파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 전 사장의 ‘독자정당론’이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포석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그는 "대선에서 패하면 전체 범여권은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총선을 맞게 될 것"이라며 "(내년 총선을 위해서라도 문 전 사장은) 대선에 올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노당에 영향 없을 것" VS "민노당 쉽지 않을 것"

    문 전 사장에 대해 이른바 ‘진보개혁’ 유권자층의 일각이 호응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 대선에서 잠재적 지지층의 일부를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이 커질 경우 ‘비판적 지지’의 흐름이 당 안팎에서 표면화될 수도 있다. 요 며칠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는 이를 우려하는 당원들이 글이 제법 올라와 있다.

    ‘문국현 효과’과 민주노동당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망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노회찬 선본의 이준협 보좌관은 "문 전 사장은 범여권의 단일후보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고, 독자 후보로 나설 경우 범여권의 표를 가져갈 것"이라며 "민주노동당에 미칠 영향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봤다.

    권영길 선본의 문명학 실장은 "민주노동당은 지지층을 확대하기 위해 중원 싸움을 해야 한다"면서 "중도의 왼 편에 있는 문 후보건 오른 편에 있는 손학규, 정동영 후보건 중원에서 맞붙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반면 심상정 선본의 손낙구 상황실장은 "민주노동당은 경제에 대한 주장은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있는 세력으로는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명박과 문국현이 경제 문제를 놓고 대립 구도를 형성할 경우 우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국현은 양날의 칼?

    김능구 대표는 "문 전 사장은 비정규직, 양극화 해소 등 민주노동당의 의제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면서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의 활동과 주장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문 전 사장이 이들 의제를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귀영 실장은 "문 전 사장은 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다"면서 ‘문국현 효과’가 민주노동당에 미칠 영향은 대선과 총선에 달리 나타날 것이라고 점쳤다.

    즉 단기적으로는 문 전 사장이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표를 잠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동시에 비정규직, 사회양극화 등 진보적 의제를 여론의 중심으로 불러내는 효과도 예상되는데, 이는 총선 국면에서 민주노동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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