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가 폭락과 영화 '화려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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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8월 27일 07: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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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주가 대폭락사태 때 주변에서 곡소리 꽤나 났다. 하루만에 한달치 월급을 날렸다는 놈. 전세빼서 좀 더 작은 집으로 이사가야 한다는 놈. 부업거리를 찾기시작한 놈. 주가떨어졌으니 술 한잔 사라는 놈.

       
      ▲ 지난 16일 주가폭락으로 주식 프로그램 매매가 중단되는 사이드카가 발효됐다.(사진=뉴시스)
     

    주가 올랐다고 술 사준 놈은 없었는데, 주가 떨어졌다고 술 사란 놈은 많은 이 상황은 도대체 뭔가? 돈은 도대체 누가 벌어가길래 주변엔 온통 주식해서 번 놈은 없고 잃은 놈만 있단 말인가? 과연 누가 주식으로 돈을 버는가?-_-;

    1. 개미투자자의 길

    나야 7년 전쯤 모 투자회사에 다닐 때 주식투자 좀 했지만, 그 이후론 누가 "좋은 정보 있다"고 해도 절대 주식에 손을 대지 않는다. 내 나이 아직 서른. 기대수익이 불분명한 주식에 시간을 바치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한다든가, 아님 친구들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는 게 돈 버는 길이다.

    게다가, 주식 하면 삶의 질이 엄청나게 망가진다. 근무시간에 일에 집중 못하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주식시장 폐장 이 후에도 공부네 뭐네 미국 증시 상황체크네 뭐네 해서 사람이 영 재미 없어진다.

    사회 생활이라는 게 끊임없는 협업의 과정이고, 그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인데 맨날 주식에 쩔어 있는 사람이랑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겠느냔 말이다.

    2. 정보투자의 길

    회사를 다니던 그 무렵에 젤 많이 듣던 말 중 하나가 "넌 투자회사에 다니니, 쓸 만한 주식정보 있으면 좀 알려달라"였다. 요즘 주변을 봐도, ‘친한 친구가 직장 상사에게 들은 내부 정보’가 있으니 주식을 사라고 권하는 놈들이 주변에 있다.

    아이쿠. 나 다니던 회사는 투자회사는 투자회사였지만, 직접적인 주식거래와는 좀 거리가 있던 회사라 이렇다 할 주식 관련 정보가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투자회사니 보통사람들 보다는 주식정보를 좀 더 빠르고 가깝게 알지 않겠느냐고?

    그렇긴 한데. 정보라는 거 – 특히 주식정보 -는 얼마나 빠르고 가깝게 아느냐 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더라. 회사동료 중에선 이렇게 ‘가깝게’ 들은 정보로 실제로 주식투자에 뛰어든 사람이 꽤 있었는데 하나같이 수익률이 별로였다. 그럼 누가 돈을 버냐고?

    돈 버는 사람은 정보를 빨리 아는 사람이 아는게 아니라, 정보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정보를 빨리 알았다고 좋아할 거 한 개도 없더라 – 당신으로 하여금 정보를 빨리 알게 할지 늦게 알게 할지 결정하는 것도 대부분 정보를 만드는 사람이었으니깐.

    3. 그리고 이상한 길

    주변 개인투자자들도 영 성적이 신통찮고, 꽤 정보 접근성이 좋다던 회사동료들도 돈을 못 벌던 주식. 결산하자면, 주변에 주식투자하는 사람들은 모두 돈을 잃거나 ‘똔똔’하거나, 아님 은행 이자율을 겨우 상회하는 정도였다.

    허나, 단 한 명 손대던 주식마다 대박을 치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 절대 고수는 바로 전 직장이었던 그 투자회사 사장님 되시겠다. 3개월 동안 세곱 가까운 수익률 올린 것만해도 2~3번은 봤으니 (주식투자하는 사람을 알겠지만) 이건 사람이 아니라 거의 신의 경지이다.

    외국계 증권회사 있다 스카웃 되온 양반인데, 이 양반이 주식에 대해 가르쳐 준 건 딱 3가지였다. ▲지금은 대세가 되어버린 가치투자(그 양반은 오뚜기, 롯데칠성, 엔씨소프트 등에 손을 댔었다) ▲무조건 업계의 대장주를 사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

    4. 신문기사 읽는 법

    "주식은 언제 사고 팔아야 할까요?"
    "아주 간단하지. 신문만 보고 있으면 돼"

    실제로 주식을 사놓고 그 양반은 절대 일반 직장인이 하는 것 처럼 평소에 주식창을 들여다 본다거나 하는 짓을 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맨날 주식창을 들여다 보면서 팔아야 할 타이밍을 찾는데, 이양반은 반대로 팔아야할 타이밍이 왔다 싶을 때 그때서야 주식창을 좀 소상히 들여다 보곤 했다.

    "그럼 신문에서 팔라고 할때 팔면 되는겁니까?"
    "으이구 이 바보야"

    아니! 어릴 때 부터 똘똘하다는 소문이 동네에 자자했던 나더러 바보라고 하더니, 정작 그가 한 얘기는 더 바보같은 소리였다.

    "신문에서 전문가란 사람이 나와서 이구동성으로 앞으로 장세가 전망이 밝고 계속 오를거라 그러면 팔고, 전망이 계속 어둡고 주가가 안 오를거라고 하면 사."

    얼마 안 있다가 회사를 그만두게 됬고, 그 이후로 주식투자를 안해서 제대로 검증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 바보같은 얘기가 진짜인지 아닌지가 궁금해서 신문경제란에 나오는 전문가들의 증시 예상은 꼼꼼히 챙겨보곤 했는데… 사장님의 얘기는 대충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왤까? 그 양반이 당시 밝힌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의지가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주가가 오를 만큼 올랐다고 생각해서 보유한 주식을 다 팔아버리고 손털고 나가고 싶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고 주식 사라고 부추기는 경우이거나 2)혹은 모두가 현재를 예찬하고 미래를 장미빛으로 보는 순간이 바로 거품이 끼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화려한 휴가’의 흥행 성공과 어느 투자회사 사장

    그 양반이 떠오른 건, 엊그제 주식폭락 사태 때가 아니었다. 실은 그 보다 며칠 전, 영화 <화려한 휴가>가 관객 500만 동원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였다.

       
      ▲ 영화 ‘화려한 휴가’ 포스터. 흥행 대박이 광주 가치의 폭락을 가져오지 않을까?
     

    광주청문회를 하고, 제2민항으로 아시아나 항공이 선정되고, DJ가 대통령이 되고, 광주항쟁이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관련자들이 보상을 받고, 광주가 키워낸 세대인 386세대가 대거 정치판에 들어가서 한 자리를 하고, 전두환이 우리나라 국민이 젤 싫어하는 사람 1~2위 자리를 다투고, 광주 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가 500만 관객을 동원하고…

    물론 합천 일해공원처럼 ‘똘아이’ 같은 시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제는 모두들 입을모아 광주항쟁의 가치를 인정하는 시대가 대충은 온 듯 하다.

    근데 좀 불편하다. <화려한 휴가>가 관객 500만을 동원한 순간 정치적 심장으로서의 광주항쟁은 그 가치가 이미 폭락했거나, 곧 폭락할 거란 예감이 들었다.

    80년 5월. 78년생인 나는 한국 나이로 3살에 불과했다. 하지만 88년인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집에 놀러갔다 광주 사진집을 보고는 굉장히 속상했었다.

    그 뿐인가? 고등학생이던 95년쯤 ‘항장불살(降將不殺. 항복한 장수는 죽이지 않는다-편집자)’ 운운하며 검찰이 불기소했을 때 굉장히 화가 났었다.

    영화 대박과 가치 폭락

    그 후 전국적인 투쟁의 불길이 일어 전노와 그 일당들이 전격 기소됐을 때 드디어 정의가 바로 섰다 좋아했었고, 97년 대통령 당선자 신분인 DJ가 사면을 ‘건의’했을 때 DJ가 과연 무슨 자격으로 용서를 하네마네 하는가 하고 화가 났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후배가 들어오면 미국의 죄과를 논하는 가장 좋은 고리가 바로 광주항쟁이었다. 단, 99년까지. 2000년 이후에 들어온 후배들은, 내 열정이 식어서인지 말솜씨가 줄어서인지 몰라도 광주항쟁에 대해 시큰둥한 느낌이었다.

    마치 4.19세대를 자처하는 노 정치인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419 시절의 얘기를 늘어놓는 그런 기분이었다. 학생운동의 쇠퇴의 원인으로 많은 이유가 거론됐는데, 젊은 세대에게 더 이상 광주항쟁이 자기 세대의 과업이 아닌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한다.

    안그래도 시간이 80년에서 점점 멀어짐에 따라 희미해지는 광주의 기억이 각종 ‘뻘타’ 정치인의 광주정신 타령, 영화화 등으로 점점 화석화되고 있는 듯하다. 영화 자체야 광주를 잊지말자는 좋은 뜻으로 만들어졌겠지만 주변에서 실제 영화를 봤던 많은 어린 후배들이 영화 속 장면들을 실제 존재했던 일이라기 보다는 영화를 위해 각색된 것으로 믿고 있었다.

    얼마 전, 탈레반 피랍자의 가족들이 미대사관 앞에서 “미국이 21명의 무고한 생명을 구해주기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기를 미대통령과 미국민에게 눈물로 호소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보자니, 광주관련 사진 중 가장 가슴아팠던 사진 한장이 떠올랐다.

    자세히 기억 안나지만 아마도 ‘미 항공모함이 광주시민을 구해주기 위해 부산항에 떠있다’는 내용의 대자보 사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그 항모는 광주시민을 위한 것이 아닌 학살자 전노를 지원하기 위해서 온 항모였다.

    후배들이…아직 광주를 잊을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잊지 않아야 할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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