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 안하고 딴 생각 많은 이들 환영”
        2007년 08월 24일 04: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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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층 건물의 3층에 자리 잡은 ‘지행(知行) 네트워크’는 8월 불볕을 받아 그대로 찜질방이었다. 하지만 오창은(실천문학 편집위원), 이명원(민족문학연구소 연구원), 하승우(한양대 연구교수)의 면면을 보아하니 그 찜질방에서 몇 년은 족히 버틸 인사들이다. 지난 달 문을 연 연구공간 ‘지행 네트워크’의 세 사람을 만나봤다.

       
      ▲ 사진 왼쪽부터 하승우, 오창은, 이명원씨.
     

    도대체 뭐하는 뎁니까?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그건 오창은 대표가 말씀드릴게요. 대표, 오늘 정했어요.”

    “인터뷰용 ‘땜빵’ 대표죠?”
    “이럴 경우 대비해서, 돌아가면서 대표 역할이 필요한 거 같아서요.”

    “말 그대로 연구공간이죠. 물론 저희 다 에너지가 넘쳐서 그냥 연구공간에 머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저희들 모여서 공부하고, 세미나할 공간 필요한 사람들한테 빌려주고, 아직 강의할만한 정도는 안 되지만 나중에는 강의도 하려고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연계도 하려 해요. 일에 치이다 보니 자기개발 같은 걸 엄두도 못 내는데, 정책생산 능력이라든가 여러 자기개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활동가들과 함께 운영하고 싶어요.”

    오창은의 설명에 이명원이 덧붙인다.

    “지식인운동이 다시 필요한 시기라고 봐요. 시민운동은 현실을 추수하다 보니 즉자적일 수밖에 없고, 대학은 ‘학문’이라는 데 갇혀 있죠. 저희는 시민운동 현장과 대학 공간이라는 양자를 지양하는 지식 생산의 현장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대학 바깥에서 살아 생동하는 지식공간을 만들어 보려는 거예요.”

    대학 바깥에서 생동하는 지식 공간

    오창은과 이명원의 말에서 ‘시민운동’이라는 말이 몇 번인가 반복된다. 그렇다면 노동조합 운동이나 진보정당 운동과는 놀지 않겠다는 건가? 하승우가 ‘변명’한다.

    “참여연대, 경실련, 희망제작소 같은 데하고 그다지 친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런 단체들끼리도 서로 안 친하고. 같이 일하지 않으니까 친해질 일이 없는 거지요. ‘지행’이 이런 단체들끼리 회의도 같이 하고 소통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는 주로 시민단체들하고 교류가 있었지만, 노조나 민중운동 단체를 배제하려고 그랬던 건 아니예요. 지난 8일에는 이랜드 투쟁에도 참여했어요. 앞으로는 ‘몸으로 움직이는 분들’과 많은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비슷한 개념, 연구공간으로 ‘수유 +너머’ 같은 데가 있잖아요?”

    “‘지행’ 만들 때 ‘수유 + 너머’ 같은 곳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기존 연구집단들에 대해서는 조금 문제의식이 있기도 해요. 지식 생산에는 대단히 충실하지만, 대학과 무엇이 다른지, 변종 대학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는 거 같아요. 저희는 지적 결론과 행동의 일치를 지향하려 해서 ‘지행(知行)’이지요.”

    지행, 지적 결론과 행동의 일치 

    그렇다면 ‘지행’이 하려는 실천이나 행동은 무엇일까? 연구집단의 실천이나 행동이 무엇일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명원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제 시작인데, 구체적으로 무얼 실천할지를 예단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어떤 단체든, 조직이든 그 정체성은 구성돼가는 거잖아요. 우리도 이렇게 시작해서 점차 정체성이 구성되겠죠. ‘다시 지식인을 말한다’는 세미나를 내년 봄께까지 진행하려 해요.

    근대 전환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지식인, 현장 개입적 지식의 구성 방식과 존립 방식, 가치 지향점 같은 걸 공부할 것이고, 그 속에서 ‘지행’의 실천 과제나 방식도 나타날 테죠.”

    이명원은 쫓겨난 해직교수고, 오창은과 하승우는 날품팔이 교수다. 셋 모두 대학 강의를 병행하면서 ‘지행’ 일을 할 심산이지만, 대학에 대한 평가는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대학 일은 계속 해야죠. 대학을 논의로 하거나 절연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해요. 대학 안과 밖이 같이 변해야 올바른 학문을 성취할 수 있겠죠. 저는 대학 안에서 제자 키우는 것과 대학 밖에서 문학 평론하는 일을 병행할 계획이예요.

    제 인생에서도 좋은 선생님들 기억이 있어요. 선생은 학생들의 인생 전환점에서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고, 역할 모델이죠. 이런 좋은 선생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유로워지고 싶어 여기에 왔다

    이런 이명원의 생각에 오창은은 조금 다른 속내를 내비치고, 하승우는 더 과감한 말을 한다.

    “강의 하다 보면 대학이 정한 틀에 따라 재생산에 동원된다는 느낌이나 환멸이 들 때가 많아요. 처음에는 학생들과 함께 대학을 바꿔보겠다는 뜻을 품었었는데, 어렵더라고요.”

    “저는, 제가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지행’에 왔어요. 대학에 있으면 갇히는 거 같아요. 뭘 하려면 규격에 맞춘 논문 써야 하고, 맘에 안 맞는 학회에도 들어가야 하고, 이런 거에 갇히기 싫어요.

    예전에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 지금은 대개 직장에 다니잖아요. 대학에서는 직장인들을 못 만나요. ‘지행’이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무실이든 조직이든 뭘 만든다는 건, 돈이 든다는 말이고, 딱히 돈 나올 구멍이 없다면 제 살 깎아야 한다는 말이다. 아직은 처음이어서인지, 워낙 없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리 살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인지, 셋은 한목소리로 그런 걱정을 불식시킨다.

    “저희는 세미나 공간 사용료 같은 것 안 받을 겁니다. 수익사업이라는 것 때문에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조직운영비 벌려 불필요한 사업하는 경우도 많이 봤고. 그러지 말자고 결심하고 있습니다.

    자력갱생할 겁니다. 저희들이 대학, 사회단체, 기업, 교도소 같은 데서 강의하며 버는 돈 갹출하고, 시민 대상 강의 프로그램도 개설하려고요.”

    우리에게 중심은 없다

    한국에서 지식인이 있을 곳은 대학이나 정부와 기업의 연구소 뿐이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야 수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들의 앞에 놓인 운명은 세상과 세월에 풍화되는 것 뿐이다. 정상적으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라면 대학이나 연구소 말고도, 정당, 사회단체, 노동조합이 지식인을 끌어안고, 그런 싱크탱크에서 나오는 담론이 대학을 압도하는 경우도 간혹 보게 되겠지만, 한국에서 조만간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지행’ 같은 산장(山莊)에서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산장의 빨치산들은 언제나 정규군보다 사기가 높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행’에게 의기충천하다거나 하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단지 길을 찾고 싶고, 그래서 삐딱하게 비켜 서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중심이 없습니다. 조직 정체성이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그에 따라 흐르고 싶어요. 공부 안 하고 딴 생각 많은 사람들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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