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업하며 배운 연대 독립언론으로 보여줄 터"
        2007년 08월 24일 03: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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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한 선배가 한번 읽어보라며 <시사저널> 한 권을 내밀었다. 원전도 아니고, 운동권 팜플렛도 아닌 시사잡지를 왜 읽으라고 하는지 의아해하며 책장을 넘겼다. 현실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과 과격한 선언에 익숙하던 시절, <시사저널>에는 깊이 있는 취재와 분석이 담겨있었다.

    <시사저널>의 관점에 모두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 뒤로 이 주간지가 발행되는 수요일에는 어김없이 전철역 가판대에서 이 잡지를 집어들곤 했고 오랫동안 전철 여행의 동반자가 됐다. 그리고 이 잡지는 ‘정통시사주간지’라는 별칭으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6년 6월 27일 "이학수 부회장 권력, 너무 비대해졌다"는 제목의 3쪽 짜리 삼성 비판 기사가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진 후 자본으로부터 편집권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기자들은 결국 자본을 꺾지 못했다. 그러나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시사저널>을 나와 소액주주들과 독자들의 후원으로 9월 15일 <시사IN>이라는 독립언론을 창간한다.

    자랑스레 놓여진 ‘자유언론상’ 상패

       
     ▲ 문정우 <시사IN> 초대 편집국장
     

    22일 서울 독립문에 위치한 <시사IN> 사무실을 찾았다. 20명 남짓한 기자들은 창간호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양심과 정의에 바탕을 둔 귀하들의 편집권 수호 투쟁이 좋은 결실을 거두기를 기원하면서 그 높은 뜻을 기려 이 상을 드립니다." 사무실 한켠에 ‘자유언론상’ 상패가 자랑스럽게 놓여있었다.

    문정우 초대 편집국장(48)은 "어떤 돈 많은 자본의 힘을 입어서 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분들이 모아준 돈과 정성으로 만드는 신문이라 걱정이 많다"며 창간호에 대한 부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시간이 너무 없어서 걱정이에요. 기자들이 20일부터 현장에 투입했고, 오늘 첫 기획회의를 했거든요. 9월 15일 창간하겠다고 공언을 해서 후배들이 불평이 많아요. 창간호에 대한 기대가 큰 데 잘 만들지 못하면 ‘저렇게 요란을 떨더니 내놓는 건 별 거 없구나’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있잖아요. 큰일났어요."

    그러나 그의 표정은 ‘걱정 반 자신감 반’이다. 진품 <시사저널>을 만들던 기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시사IN>에 함께 했고, 막내 기자의 경력이 7년일만큼 경력이 풍부한 기자들이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홍보지로 전락한 언론

    "언론사들이 100% 개인 기업인데 겉으로는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렇지만 내용적으로는 거의 사주의 이해와 사주의 세계관을 관철하는 도구가 되어 있습니다. 큰 신문사지만 주주 누구 하나 이이를 제기하지 않아요. 시사저널 사태를 겪으면서 정말로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언론사는 지배구조가 건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그와 기자들은 대충 봉합하고 다시 <시사저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저쪽과 봉합을 하고 가더라도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합리적 토론이 가능한 지배구조가 건전한 회사를 만들자고 다짐하게 된 거죠."

    자본이 삼켜버린 한국 언론의 현실을 그는 신랄하게 비판했다. "구독료 수입이 60%는 되어야 광고주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데 우리 언론들은 모든 비용과 인건비가 대기업 광고주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요. 결국 대기업과 사주의 이해만 충족될 수밖에 없는 거죠."

    진품 <시사저널>은 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었다. 정기독자 수입이 보통 70%였고, 많을 때는 80%에 이르렀다. "시사저널에 광고를 실으려면 4개월을 기다리곤 했었어요. 광고주의 압력은 꿈도 꾸기 힘들었죠. 시사저널이라는 매체 기자들이 대기업에 대해 자유롭게 기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용감하거나 자유로워서가 아니라 그런 수입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신문사들은 힘들더라도 그걸 지향해야 합니다."

    "이런 미친 짓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정기독자 확보다. "연내에 2만 부만 확보하면 천하무적입니다. 어떤 언론사도 쓸 수 없는 것들을 마음껏 쓸 수 있어요. 언론이 거의 무가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그런 운동을 펼친다는 것 자체도 미친 짓일지 모르겠는데, 책도 보기도 전에 신청을 해준 분들이 한 달만에 3천명을 넘었어요. 어쩌면 이런 미친 짓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돈은 얼마나 모였을까? 1∼2년 하다가 돈이 없어 쓰러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은 기우가 될 것 같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시사IN>을 후원하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왔었다.

    이렇게 소액주주들이 모아 준 금액이 4억, 벌써 예약을 끝낸 정기독자 구독료 4억 5천만원 등 이들은 현금만 15억을 모았다. 현재 2억 이상을 후원하겠다는 대주주들과 협상을 하고 있는데 9월 초에는 자본금이 40억 정도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경영자가 누군지 노동자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노동자가 움직이는 회사를 만들었어요. 대주주와 협상하면서 저렇게 하면서 왜 돈을 대나 할 정도로 가혹할만한 조건을 달았고, 그걸 받아들인 쪽하고만 협상을 하고 있어요. 굉장히 흥미로운 지배구조를 가진 언론사를 보게 될 겁니다."

    "레바논 소녀의 목소리를 알려야죠"

    그는 돈이 점령한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화제를 옮겼다. "우리 사회가 너무 돈으로 짓눌려왔어요. 송도 청약한다고 수천명이 텐트를 치고, 돈 가진 사람들은 ‘펀드, 펀드’ 하고 있고, 출판도 재테크 책이 아니면 팔리지 않고, 돈에 짓눌려 숨을 쉬지 못하고 있어요."

    "이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현상이기도 하고, 전지구적 현상이기도 해요. 박노해 시인이 레바논에 대한 책을 보내왔는데 미국이 수 천명의 어린이들과 민간인들을 무참하게 죽였는데 우리 언론에서는 그걸 본 적이 없어요. 그런 실상이 보도되지도 않아요. 이게 옳다 그르다가 아니고 이런 일이 있다는 게 보도되어야 하는데."

    그의 얘기는 계속됐다. "레바논 소녀가 박노해와 통화하면서 ‘세상에는 우리 밖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해요. 아무리 인터넷과 통신이 발달해도 세상은 자기들밖에 안 사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거죠."

    그는 숨막히는 세상에 ‘진실’을 밝히는 힘은 여전히 언론에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독립언론을 꿈꾸고, 독립언론의 국제연대를 만들어 ‘레바논 소녀’의 목소리와 소수자의 아픔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다짐한다.

    노동조합과 파업에서 느낀 연대의 소중함

    <시사저널> 전 기자들은 삼성비판기사 삭제에 맞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징계, 고소고발, 직장폐쇄 등 가혹한 탄압이었다. 사측이 고발한 5건의 법적 제소에서도 모두 승소했지만 사용자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많은 노동자들이 오늘 이 시간에도 겪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들 처지는 법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판단을 공적인 사법부가 내렸는데도 사용자가 버티면 노동자는 보호받을 도리가 없었어요. 정부든 국회 차원이든 노동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면 국가라는 게 소용이 없잖아요. 돈이 최고지."

    "기자들이 파업하고 난 후부터 달라졌어요.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라는 걸 실감했죠. 예전에 기자들은 저 혼자 잘란 줄 알고 살아왔는데, 서로 나누는 연대의 중요성을 많이 깨달았어요. 그런 것들이 기사에 많이 반영될 겁니다."

    그는 삼성에 대해서는 "복수극 하듯이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저하게 뉴스 가치를 보면서 해야죠. 삼성이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배치를 할 것이고, 기사 거리가 될 만하면 할 겁니다. 특별히 삼성을 표적 삼아 할 생각은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되죠."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그의 말에 <시사저널>에서 ‘짤린’ 삼성 기사가 <시사IN>에서 어떻게 부활할지 궁금해졌다.

    독립문과 독립언론 그리고 <시사IN>

    그는 ‘실력’으로 승부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속도나 발랄함, 순발력보다는 깊이를 보여줄 겁니다. 깊이가 진실을 드러내죠. 뉴스팀과 탐사팀으로 나눠놓은 것도 그런 배경입니다. 탐사팀은 물리적인 시간을 갖고 너무 빨리 돌아가서 간과하기 쉬운 걸 잡아서 시간과 물량을 투입해보겠다는 겁니다."

    7시가 다 된 시간인데도 기자들은 퇴근하지 않고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독립언론에 대한 꿈과 열정 때문인지 ‘자발적인 야근’에 들어간 기자들의 표정은 밝고 환했다. 그들이 사무실을 ‘독립문’에 잡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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