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찾사는 현실을 아는데, 대통령께서는...
        2007년 08월 24일 11: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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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의 기호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 마케터, 광고기획자, 정치인, 그리고 대중예술인들이다. 연구자들이 통계와 이론틀을 통해 세계를 파악한다면 이들은 감각적으로 느낀다.

    물론 이들이 감각적으로 느끼는 세상이 언제나 본질과 가까운 것은 아니다. 모순의 본질은 감각 너머에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은 가장 1차적인 차원에서 동시대 대중의 공통된 감각을 간취한다.

    대중의 고통, 슬픔, 기쁨, 욕망 등을 간취해내지 못하면 이들은 즉각 도태된다. 학자들의 이론은 검증에 기나긴 세월이 걸리거나 혹은 영원히 검증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판매율, 점유율, 지지율, 시청율 등으로 순식간에 검증을 받는다.

    교육부가 어떤 입시안을 내놨을 때 교육부나 서울대의 주장보다 강남 사교육 관계자의 평가가 더 정확한 것은 그들이 시장에서 검증받는 마케터들이기 때문이다. 2008년 입시안을 내놓으면서 교육부는 사교육이 줄어들 거라고 주장했다. 사교육 관계자들은 사교육이 늘어날 거라고 했다. 후자가 맞았다.

    ‘웃찾사’는 당대 최고 인기의 대중오락물 중 하나다. 시장에서 대중이 선택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웃찾사를 만드는 대중예술인들이 대중의 감각을 간취하는데 성공했다는 의미가 된다. 한국인이 지금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공감하는지 그들은 알고 있다.

       
     ▲ SBS 개그프로그램 ‘웃찾사’ 코너 중 ‘회장님의 방침’의 한 장면(사진=SBS)
     

    웃찾사에는 ‘회장님의 방침’이라는 코너가 있다. 회사원들이 회장의 말도 안 되는 지시사항을 울며 겨자 먹기로 수행한다는 내용이다. 첫머리에 누군가가 상식적인 답을 하면 사장이 “나가!”라고 하며 비상식적인 답을 요구한다. 왜 그래야 하냐고 따지면 회장님의 방침이라며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난 이 코너에서 한국인의 공포심을 읽는다. 바로 소유권자들의 전횡, 그리고 노동유연성으로부터 비롯된 공포다. 1987년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소유권자들의 권력은 과거보다 오히려 더 커졌다.

    과거엔 소유권자들 위에 국가권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들을 견제하지 않는다. 또, 과거엔 일단 회사에 들어가면 큰 일이 없는 한 계속 다니는 걸 당연시했지만, 지금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에 떨어야 한다. 전횡과 고용불안, 이 두 가지가 시너지 효과를 낳아 한국인을 암흑의 공포 속에 빠뜨리고 있다.

    웃찾사 199회에서 사장은 “애기들 분유 값은 있으세요?”라고 다그친다. 협박이다. 한국이란 나라가 공보육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협박이다. 부모가 구조조정당하면 아이가 분유를 못 먹는 사회다. 이것은 원초적 공포를 유발한다.

    200회에선 “밀린 월세는 냈습니까?”라고 한다. 부동산 문제다. 먹는 것, 사는 곳, 기본적인 것들에서부터 공포는 시작된다.

    201회에선 “짤리면 갈 데는 있습니까?”라고 한다. 한국은 잘리면 갈 데가 없다. 그전보다 하위직으로 가거나, 자영업으로 가거나, 비정규직으로 가야 한다. 아니면 노숙자다. 서구 선진국 같은 국가 보장 이직(移職) 훈련 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207회에선 “회사 짤리면 나이 마흔에 알바할 겁니까?”라고 한다. 해고와 비정규직화를 동일시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 코너에선 한 명이 꼭 관중이 기분 나쁠 말을 하게 된다. 회장이 시켜서다. 그것이 203회에선 “제대하면 할 건 있냐?”였다. 실업이다. 우리는 실업과 고용불안에 떨며 아이 보육조차 안심할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그 공포심이 회장님의 방침에 맹종하는 사원들을 만든 것이다. 개그맨들이 이렇게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주고 있는데 대통령은 우리 경제 좋다며 이념의 세계에 빠져 있다. 그것도 공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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